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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lly Jan 06. 2021

《중용》을 읽고

: 중용은 행복의 조건에 맞닿아 있는가?

들어가는 말     


  겨울은 항상 춥지만, 이번 겨울은 다른 여느 해 보다 더욱 춥게 느껴진다. 코로나가 창궐한 지 벌써 1년, 많은 이들이 아파하고 있고 이 역병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구하라, 설리 등 대중과 세상으로부터 상처 받은 여자 연예인들이 자살을 했고, 많은 여성들과의 성관계를 몰래 촬영하여 성적 수치심을 깊게 느끼게 한 정준영, 최종훈 등의 남자 연예인들은 각각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욕망과 외로움이 범람하는 시대이다. 친한 친구 한 명이 혈액 암 판정을 받아서 나와 같은 젊은 나이에 투병생활을 하고 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이번 겨울 내내 건강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 최근 들어 “사는 게 뭐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뉴스 기사에 나오는 그들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좋은 삶, 행복한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 더욱 절실하게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조금 비겁해지면 조금 더 편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비겁하게 사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데 약간 비겁하게 편하게 사는 것도 하나의 인생이고, 약간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자기 나름의 소신을 지키는 것도 하나의 인생이다. 각자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 질문을 떨쳐내려야 떨쳐낼 수가 없다.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중용》 에서는 치우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강조한다. 또한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듯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 또한 연습하고 노력하며 실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 자신만의 중심이 서지 않으면 들려오는 다른 목소리에 끊임없이 흔들리고 갈등하게 된다. 하지만 평균대 위에 서서 걷는 것도 연습을 하면 어느새 잘하게 되는 것처럼 생각과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도 스스로 연습해야 한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고 이런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사실 한번 고쳐야겠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바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욕망에 휘둘리거나 흔들리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중심을 잡으려 꾸준히 훈련을 해야 한다. 최근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과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중용》을 읽으면서 “사는 게 뭘까?, 행복한 삶은 어떤 것일까?”에 대한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중용》은 이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해답을 줄 것 같았다. 《중용》의 내용을 잘 읽고 우리가 《중용》에서 강조하는 내용들을 잘 지키고 산다면, “스스로 행복의 기준을 더 자신의 개성에 맞게 세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좋지 않은 선택을 한 연예인들이 《중용》을 읽지 않았더라도, 만약 《중용》의 도와 덕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런 선택들을 했었을지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중용》에서 강조하는 내용들은 행복의 조건과 맞닿아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을 크게 3가지로 정해서 《중용》을 보고 연관시켜 보았다.     


1. 인간관계는 행복의 기준이 되는가? 특히 가족애(家族愛)는 우리에게 필요한가?


  우리는 자신이 각각 속한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인정받으려고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려고 한다. 그 집단 내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노력해도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무시받고 소외되는 느낌을 받는다. 집단 속에서의 자아실현은 인간의 행복감을 높일지 떨어뜨릴지 결정하는 인생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내가 사랑받지 못할 때, 친구들과 있을 때, 나의 자존감이 약하고 자존심만 강하다면 자신에게 매우 큰 고민으로 다가온다.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자신에게 더욱 큰 불행으로 다가올 것이다. 집단 따돌림과 같은 안 좋은 현상도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겨서 나타난다.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나 자신과 때려야 땔 수 없는 피붙이 관계이지만, 어긋나는 순간 그 때려야 땔 수 없는 관계 때문에 가끔은 원수만큼 지긋지긋한 것이 가족이 될 때도 있다.      


  “살면서 어떤 게 가장 중요한가?” 나의 삼촌은 독일에서 뇌 과학 분야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지도 교수님께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살면서 어떤 게 가장 중요한가? 삼촌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가 떠올랐다고 한다. 자기실현과 가족의 건강이었다. 그러나 둘 다 가질 수는 없었다. 하나는 찢어버려야 했다. 삼촌의 아내는 타지에서 삼촌을 뒷바라지하면서 외로움과 향수병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때 당시 삼촌은 공부에 매진하느라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굉장히 뒤늦게 그것을 깨달았다. 삼촌은 결국 굉장히 힘든 결정으로 자아실현을 찢어버렸다. 그때의 삼촌은 자아실현을 가족의 행복과 평안에서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자아실현은 외부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촌이 오직 자신의 가족만을 놓고 다시 생각해봤을 때, 가족이 정말 평안하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나의 가족이 행복해지는 방향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찾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일에서 공부를 잠시 멈추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새롭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자아실현과 가족의 행복을 어느 정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만약 삼촌이 정말로 삼촌 스스로의 자아실현을 버리는 선택을 했다면 삼촌의 가족도 진심으로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우리 삼촌이 자신의 자아실현과 가족 사이에서 내린 결정이 중용의 덕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중용의 관점에서 봤을 때, 가정에서부터 실천한 좋은 타협점을 통해서 아주 좋은 가족과의 관계 즉, 인간관계를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인간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중용의 덕이 필요하다. 특히 나의 삼촌 같은 경우를 보면서 우리 삶에서 인간관계의 시작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중용》에서의 가르침을 공감한다. 《중용》은 인간관계의 시작이 가정이라는 것을 아주 잘 가르쳐준다. 중용의 12장 3절을 보면 “군자의 도는 부부에게서 실마리가 시작되니,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천지에 드러난다.” “부부의 관계에서 아버지는 양(陽)이 되고, 어머니는 음(陰)이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을 하고 음양의 교역이 이루어지면 새로운 생명과 한 가정이 시작된다. 그러한 가족이 모인 것이 사회를 형성하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이것은 《중용》 제1장의 “도라는 것은 잠시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천지 사방에 도가 펼쳐져 있지만 멀리 있으면 나에게 떨어져 있는 것이다. 가족은 잠시라도 나와는 떨어져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몸이 멀리 있더라도 의식을 하든 무의식 중이든 간에 마음만은 항상 가족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인간 본연의 마음이다. “공자가 말했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으니, 사람이 도를 하면서 사람을 멀리한다면 도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도는 인간관계를 떠나 거창하고 신비스러운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실천해야 하는 기본적인 일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가족들 사이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도인데, 그것마저 할 수 없다면 나머지 인간관계에서도 결코 도를 실천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삼촌은 아내인 숙모를 위해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공부를 이어가는 선택을 했고 이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아실현과 가족의 행복 사이에서 어느 정도 타협점을 잘 찾아내었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가장 가까운 아내에게서부터 도를 실천하여 자신이 독일에서 형성한 여러 인간관계에 도를 실천했다고 생각한다. 가정의 도를 소홀히 하면서 큰일에 도를 행하려고 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삼촌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 《시경》에서도 볼 수 있다. ‘도끼자루을 벌목함이여 도끼자루감을 벌목함이여! 그 법이 멀리 있지 않다.’고 했으니, “도끼자루를 잡고 도끼자루감을 벌목하면서도 흘겨보면서 오히려 도끼자루가 되려면 멀었다고 여긴다. 이 내용에서 보면 자신이 잡고 있는 도끼자루가 자신이 나무를 벌목해 만들려고 하는 도끼자루인데, 그렇게 가까운 곳에 표준이 있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벌목한 나무토막의 크기와 모양을 보면, 자신의 도끼자루 같이 되려면 멀었다고 중간에 그치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끝까지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사람도 인간관계에서 가까이 있는 가족에서 도를 시작해 다른 사람들에게 파급될 때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의 삼촌 이야기는 비록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가족에서부터 시작되는 원만한 인간관계가 자신의 행복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고 있고 중용의 관점으로 봤을 때도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좋은 관계가 행복의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2. 중용의 관점에서 개인적인 성취는 행복의 조건에 해당될까?(기본적인 능력을 갖추고 지위에 오르는 것이 행복과 관련이 있는가?)     


  《중용》 제28장 1절 “어리석으면서 스스로 쓰이는 것을 좋아하고, 천하면서 스스로 마음대로 하기를 좋아하고, 지금 세상에 태어나서 옛 도를 어기려 하면, 이와 같은 사람은 재앙이 그 몸에 미친다.”     


  PRODUCE 101, PRODUCE 48 등을 기획한 Mnet '프로듀스' 시리즈의 제작을 총괄한 김용범 CP와 안준용 PD는 지난 2017년 방송된 '프로듀스' 시즌2의 온라인 및 생방송 문자투표 결과에 나온 A 연습생의 득표수를 조작한 혐의가 입증되었고, 매 시리즈마다 투표 조작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프로듀스’ 시리즈로 인해서 IOI, Wanna ONE, Eyes One과 같은 사랑받는 아이돌들을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반영한 투표를 통해서 선발했지만, 투표에 공정성과 투명성이 없었으며 모두 조작되었다는 사실은 대중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투표 조작으로 뽑힌 해당 아이돌 그룹은 누가 그 해당 멤버인지 대중들의 무분별한 추측과 악플로 그룹의 멤버들 전체가 의혹을 받게 되었다. 


  “《중용》 제28장 1절을 보면 “어리석으면서 스스로 쓰이는 것을 좋아하고, 천하면서 스스로 마음대로 하기를 좋아하고, 지금 세상에 태어나서 옛 도를 어기려 하면, 이와 같은 사람은 재앙이 그 몸에 미친다.”는 의미는 자신이 능력이 없으면 초조해지고 현재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까지 동원하는 사람을 말한다. 공자는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능력이 없음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지위를 얻게 되면 결국 명예롭지 못하게 지위에서 쫓겨나게 되어 있다.”

 

  언론고시를 합격하여 방송국에 입사해서 PD가 되는 좋은 능력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그에 맞는 합당한 지위에 올랐어도, 선을 행하지 않고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대중을 기만했다. 개인적 성취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용범 CP는 분명히 힘들게 노력하여 언론고시에 합격했을 것이고 방송국에 입사하여 PD가 되는 과정도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험난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얻어 개인적인 성취를 해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였을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자신의 역량이 감당할 수 없는 지위에 집착함으로써 중용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행복은 원래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프로듀스’ 시리즈 투표 조작 사건은 《중용》 제28장과 매우 맞닿아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의 분수와 능력을 생각하지 않고 자리에 연연한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고 인도(人道)를 어기는 행위다. 이러한 사람들은 상생의 원리를 망각하고, 자신들의 자리보전에만 힘쓴다. 자신의 역량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직위나 직분에 욕심을 부리고, 자신이 그 지위에 있지 않음에도 함부로 월권을 하는 행위들이 모두 그러한 것이다. 이는 인간이 의리(義理)와 이익이 있으면 이익을 쫓아가는 본능 때문이다. 그러나 증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생각이 자신의 현재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 말은 자신의 직위와 직분에 맞게 중용의 자세로 임하는 정명(正名)을 의미한다. 또한 천도를 알고 인도를 알아 중용을 배운 사람은 의리와 이익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자신의 역량을 키워 나가는 선을 행한다.” 그것이 진정한 개인적인 성취에 필요한 요인인 듯하다. 


  중용의 관점에서 봤을 때, 개인적 성취는 외면과 내면이 끝까지 잘 조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언론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던 외적인 노력과 의리와 이익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는 내적인 노력처럼 말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성취가 행복으로 이어지려면 자신이 이루어낸 것을 끝까지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 성취의 끝이 개인의 쾌락으로 이어진다면 행복의 기준에 충족되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개인적인 성취는 오직 기본적으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정명을 실천하는 조건을 가지고 있을 때,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나서는 것은 행복의 기준에 매우 맞닿아 있다.  

   

  “뺨을 맞고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을 내가 지금 하고 있구나” ‘허성태’라는 배우가 한 인터뷰에서 한 대답이다. 그는 넉넉한 연봉과 안정적인 노후가 보장된 국내의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에서 9년 차까지 다니다가 2011년 35살의 늦은 나이에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 영화 ‘밀정’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게 된 배우 허성태는 자신이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고 말한다. 그가 퇴사를 결심하고 배우의 길을 도전할 그때 당시 그는 결혼 6개월 차의 신혼이었다. 9년가량 계속되는 회사생활에서 윗사람들 눈치 보랴 동료직원들에게 이미지 관리하랴 회사생활이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어린 시절에 꿈꾸던 배우를 하고 싶다고 자신의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와 상의 후 그는 “기적의 오디션”이라는 연기 오디션에 참가했고, 5위라는 좋은 성적을 얻어서 단역부터 시작하였다. 나중에 영화 “밀정”에 캐스팅되어 배우 송강호에게 뺨을 맞는 신을 찍으면서 그는 느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일을 하면 뺨을 맞고도 행복할 수 있지?”     


  배우 허성태의 이야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잘 반영된 이야기 같아 보인다. 허성태의 이야기는 《중용》의 여러 구절에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대표적으로 “《중용》 제1장 2절을 보면 도 (道)라는 것은 잠시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보이지 않는 바에 계신(戒愼)하고, 듣지 않는 바에 공구(恐懼)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도는 항상 주변에 존재하며 늘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와 잠시라도 자신의 몸에서 도가 떠나는 것을 걱정하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환경이나 대상들은 도를 실천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허성태의 이야기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중학생 시절부터 마음속으로 꿈꿨던 것을 뒤늦게나마 실천하였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실천한 것이다. 자신이 아는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도(道)이다. 사실 배우 허성태가 내린 결정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라 생각한다. 그 어떤 한 집안의 가장이 안정적인 수입을 뒤로한 채 자신의 꿈을 위해서 가족들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고 말하지만, 자신을 위한 선택은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다. “도(道)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도의 실천이다.” 배우 허성태가 행한 이런 도(道)를 실천하는 것이 행복의 기준에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맺음말     


   《중용》은 잠시 동안 방황하던 내 나름의 행복에 대한 물음을 4가지로 정의할 수 있게끔 도와준 것 같다. 인간은 단순한 이기적 동물도 아니고, 완전히 이타적으로만 살 수 있는 동물도 아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잘하고 그리고 자기가 진짜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놀이도 즐기고, 누군가와 사랑하고 사랑받고 살아가면서 타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서 공감하고 교류하고 연대하는 것, 이 네 가지를 다 잘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일, 놀이, 사랑, 연대. 이 네 가지의 내용이 사람마다 다 개성에 따라 다르다. 이 네 가지를 어떤 비율로 어떻게 결합하느냐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것이 어떤 식으로 결합이 되든 남이 강제해서 한다면 좋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스스로 한다면 좋은 것이다. 인생은 자신을 표현하는 긴 여정인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지치면 안 된다. 내가 가진 본성을 잘 표현하면서 사는 것이 좋은 삶인 것 같다. 인간으로서 가진 종으로서의 본성과 사람마다 각자 조금씩 다른 개성을 가지고 내가 한 삶의 주체로써 가진 나의 개성을 적절히 잘 표현하면서 살면 그것이 행복한 삶인 것 같다. 사실 위에서 열거한 것 들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중용의 도와 덕에 맞게 실천한다면 내 개성에 맞는 인생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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