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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각자의 역할이 있는
마을을 꿈꿉니다

목포 달성커피 문솔님

“제 이야기로 책을 낸다고 하면 제목은 [내가 만난 사람들]로 하고 싶어요. 외부인이 마을 안의 사람이 되기까지, 힘든 일도 상처도 많이 있었어요. 근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신기하게 내가 만난 고마운 사람들만 떠오르더라고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고 싶어요.


목포 유달산은 많은 목포 시민들에게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 유달산을 둘러싼 마을 골목 어귀에서 조그맣고 따듯한 공간, 커피향이 그윽한 “달성커피"를 운영하고 있는 문솔님을 만났다. 장마가 지나고 파란 하늘이 보이던 8월 중순 여름날, 한 쪽으로 난 큰 창에 들어온 유달산을 보며, 달성커피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달성커피 창 밖으로 보이는 유달산과 케이블카




“안녕하세요. 저는 목포에서 에스프레스 전문 커피숍 ‘달성커피'를 운영하는 문솔입니다. 선한 영향력을 가지는 사람으로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요즘 들어서는 나 혼자 그렇게 살 수는 없고 나 혼자 그렇게 살아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마을에서 이웃들과 같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함께 해보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목포시 달성동에서 달성커피를 운영하고 있는 문솔님


나이 마흔, 20대를 보냈던 목포로 돌아왔다


저는 목포 옆 신안군의 작은 섬 자은도에서 태어났어요. 중학교까지 자은에서 다니고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목포로 유학을 와서 다녔습니다. 그리고 목포에서 대학을 다니던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였어요. 저는 학업을 마치고 서울로 취업을 하였고, 항해사였던 남편과는 원거리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하고 함께 서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연고지도 없는 서울에서 맞벌이로 아이를 키우며 사는 것은 힘들었어요. 그 와중에 저는 아이와 연결된 동네 엄마들과 친구가 되고, 작은 관계들을 넓혀갔지만 남편은 그게 아니었나봐요. ‘힘들다, 지방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계속하였어요. 처음엔 저는 일도 육아도 자리잡아가는 중이라 내려가는 것에 대해 반대를 했는데, 남편이 계속 힘들어하는 것을 보며 ‘그래 한번 지방으로 가서 살아보자’ 생각하였어요. 


그 정착지가 목포로 정해진 된 것은 자연스러웠어요. 우리 부부가 대학을 다녔던 곳이고, 형제들도 이곳에 살고 있고, 남편 회사에서 발령이 날 수 있는 지역이었으니까요. 마침 그 시기는 제가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 중이였는데 사실 퇴사하지 않고 휴직인 채로 내려왔습니다. 여차하면 다시 서울로 갈 생각을 했었거든요 ㅎㅎ


프로젝트 올라운드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문솔님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보내고 만들게 된 동네카페


서울에서는 간호사로 일했어요.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쳇바퀴 돌듯 일상이 돌아갔고요. 사실 그 일상에서 뛰쳐나올 생각도 못했죠. 근데 첫째를 낳고 육아휴직 중에 그 쳇바퀴를 벗어나는 경험을 하게 된 거에요. 제가 아기를 키우면서도 하루에 1번씩은 작은 커피숍들을 찾아가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힘든 육아생활의 쉼표를 가졌었거든요. 복직을 해서도 커피는 저에게 위안을 주었어요. 


둘째를 등에 업고 커피 바리스타 시험을 보고, 커피 동호회를 만들고, 단골 커피가게에서 제일 존경하는 선생님께 취미과정, 전문가 과정까지 배우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알게 되었죠. 

“아 커피가 나를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1층에 달성커피가 위치한 문솔님의 집 전경


목포에 내려와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했어요. 병원은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하루 일과가 서울에서의 생활과 똑같아질 거니까요. 이전처럼 맞벌이를 하느라 남에게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는 상황을 재연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러면서 막연하게 '나의 공간을 운영하고 싶다'는 바람과 '배우고 익힌 커피에 대한 기술'을 생각하며 카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아이들의 육아와 병행을 잘 하려면 집과 공간이 분리되면 안되겠다 생각해서 집의 일부를 카페로 사용하자고 생각하였고요. 그렇게 카페를 포함한 지금 이 집을 구상하고 짓게 되면서 목포에서의 정착을 마음먹었습니다. 


달성커피의 COFFEE BAR, 커피와 다양한 음료들이 만들어지는 곳 


가치를 담은 공간, 달성커피


카페를 구상하면서 서울에서 보았던 공간들을 떠올렸어요. 남산 밑의 갈월동, 후암동 등에서 서울 생활을 10년 했거든요. 사실 그런 동네의 분위기를 생각하며 이 곳에 집을 짓게된 것도 있지요. 이 동네에서 보는 유달산의 느낌은 후암동에서 보던 남산의 느낌과 닮았거든요. 


카페 들어가는 문 앞에서 볼 수 있는 달성커피의 소개문


동네 단골카페였던  ‘문화카페 길'의 커피동호회를 통해 동네 커뮤니티에 스며드는 경험을 처음 했었고, 이후 공동육아의 경험까지 더해져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카페를 운영해야겠다”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목포에 와서 천천히 서울에서의 경험을 뒤돌아 보면서, 나 자신이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찾아가는 그런 성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커뮤니티'라는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고요. 


‘친환경'이라는 가치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와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것이 있었어요. 내가 뭔가 환경을 위해 큰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일회용품을 증량시키고 생산하는 업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앞장 서지는 못할지라도, 해가 되지는 말자는 생각이었지요. 


카페 한편에 쌓여져 있는 대여용 텀블러. 테이크아웃 하는 손님들께 빌려드리는 용도라고 한다.


그리고 서울 후암동에서 공동육아, 작은 도서관 등을 통해, 목포에서도 공동육아를 하며 부모교육을 받는데요. 그 내용이 환경, 평등, 평화 등에 관련된 것이에요. 제 아이가 그런 가치에 기반한 교육을 받는데 엄마인 제가 이에 무지하거나 실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거니까요. 공동육아를 통해 이런 가치를 함께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선배, 동료들이 있는 것도 힘이 되고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달성커피


사실 저희 집의 입지를 정할 때 비즈니스로서 성업하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어요. 동네에 있는 말그대로 ‘동네 카페’니까요. 다만 저는 이 공간을 잘 쓰는 사람들이 모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현재는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를 대관 시간으로 하고 있어요. 공동육아 강좌를 하기도 하고, 뜨개질 강좌를 하기도 하고 여러 모임들이 진행이 되고 있고, 이곳을 경험한 모임들이 자신들의 네트워크들을 통해 가지치기를 하면서 더 많은 곳들로 확장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언제든 마을 주민들과 인사나누고, 유달산을 바라볼 수 있는 달성커피 한쪽의 커다란 창


우리 동네에 청춘게스트하우스, 문화공간 화가의집 등 많지는 않지만 몇몇 지역 공간들이 있는데요. 어느날 그곳 사장님들과 마을 일에 관심있는 분들이 마을 축제를 준비하는데 같이 해보겠냐는 제안을 주셔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동네에서 함께 모여 천연염색을 하는 모임을 진행하게 되었고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같이 마을에서 어울리는 분들이 50-60대 분들이 되었지요. 


서울 후암동에서도 도시재생과 마을 활동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기회들이 있었는데, 그 때는 약간 막연했지만, 지금은 이 마을의 진정성 있는 선배 이웃들을 만나게 되면서 실제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지금 그 염색모임은 저희 카페와 동네에서 진행하고 있고요. 


기본에 충실한 정직한 커피, 달성커피


커뮤니티 공간을 지향하고 있지만, 제일 중요한 모토는 정직하고 기본에 충실한 커피에요. 정말 제가 커피를 좋아하기에 시작한 일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커피가 좋아서, 커피맛이 좋다고 찾아오는 이들이 참 반갑고 좋아요. 

제일 아끼는 커피머신 앞에서 커피를 내고 있는 문솔님


그리고 이 동네 특징이 예전에 살았던 분, 이전에 이 마을에 대해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이 마을을 찾을 때, 저희 집에 들러서 자신들의 마을에 대한 추억들을 꺼내시기도 하고 저에게 지금 마을의 이것저것을 물으시곤 해요. 뭔가 우리 카페가 가진 끌림 같은 것이 보일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참 좋아요. 그리고 이런 콘텐츠들을 서로 엮어주고 싶은 바람도 생기고요. 


이웃들과 함께 마을을 만들어 나가는 경험


사실 마을 외부의 전문 단체들이 이 지역에서 축제 등을 만들어보겠다고 기획해서 진행하는 경우들이 있는데요. 그런 경우에는 행사 치뤄내기 식으로 진행되고 정작 동네 사람들에게는 득이 되지 않는 모습들을 보아왔어요. 


저는 마을공동체와 아이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여러 모임들이 달성커피에서 진행되고 저도 참여하게 되니 좋더라고요. 이렇게 동네 사람들이 당장 완벽한 모습을 만들어내는 최고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우리끼리 하나하나 풀어내며 뭔가를 만들어가는 실마리와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요즘은 이 골목길에서 우리 염색 활동 작품 전시도 하고, 근처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그린 골목 풍경 엽서도 제작하고, 옆에 살고 계신 할머니들이 만든 제품도 팔고 하는 작은 프리마켓을 계획하고 있어요.


문솔님이 직접 담근 다양한 청과 소스들


이렇게 모임들이 활성화되고, 온 마을이 각종 협동조합으로 활발하고 활성화된 동네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모든 마을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이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마을에서 오래도록 지속되는 공간을 꿈꾸다 


제가 집에 보니 참 요리책이 많더라고요. 달성커피 소개에도 ‘소셜다이닝'이라는 문구를 적기는 했지만, 제대로 진행해 본 경험은 1번 밖에 없어요. 뭔가 건강한 요리 메뉴들을 월요일(카페 휴무일)마다 시도를 해본다던지 하면서 소셜다이닝으로 연결하고 싶어요. 


그와 연계해서 저는 동네에 살고 계신 많은 어르신들 보며 막연하게 할머니들의 일거리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제가 서울 살면서 고향의 어르신들이 만드신 각종 장류, 양념 등을 받아 먹었는데, 부모님이 나이가 점점 드시니  ‘이러다가  어느 순간 그 음식들을 못 먹는 날이 생기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각 집의 할머니, 어머니들의 시그니처 레시피를 전수 받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가정식 전수의 느낌으로 소셜다이닝 연계해서요. 


오래동안 지속되는 공간 달성커피이고 싶네요. 이 가치를 그대로 딸이나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문솔님의 취향과 손길이 닿아있는 달성커피 내부의 다양한 소품들


꼭 지켜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는 거예요'


동네 안에서 카페가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이웃의 이야기가 많이 오가게 되는 공간이에요. 이 공간을 운영하는 이웃으로서 그러한 이야기나 말들이 혹여나 가볍게 옮겨지지 않도록 노력해요. 또한 모르고 무지한 채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더 많이 듣고 잘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어디서든지 내가 배우고 들어야 할 선배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마을에서 진심으로 사귀는 사람이 되고자 해요. “나 자신이 좋은 이웃이 되어야겠다. 나이를 뛰어 넘어 친구같은 이웃이  되어야겠다” 이런 다짐을 계속합니다. 마을에 자리잡기까지 내게 힘들게 마음 열어주신 이웃들에게 가까운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 목포, 달성동이라는 지역의 특징이 도시 같으면서도 시골 같은 감성이 중첩되어 있어서  저 또한 아직도 이곳에서 받아들여지는 중이거든요. 


로컬과 마을 살이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올라운드의 질문에 문솔님은 정성스럽게 답변해주셨다


로컬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일단 살아보세요!'


생각만 하는 것 보다는 실천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나와 저질러야 시작할 수 있고, 겪어봐야 알 수 있어요. 


그러고선 주민으로서 긴 기간을 살고자 결심했다면 자기만 잘 살 생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원주민들에게 이웃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노력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쉽게 성패를 판단하지 말고  계속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저 내 꿈을 키우면 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돼”라는 생각으로 시작하면 아무도 환대하는 사람이 없을거에요. 어떤 면에서 서울은 여러 사람들이 다양하게 모이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서 편한 면도 있어요. 그러나 지방에서는 그 지역에서 오래 살았던 분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참 어려워요.  


이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주려는 마음을 지키는 것,  마을 주민들과 진정성 있게 관계 맺는 것, 원주민의 경계를 허무는 데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요.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힘들지만 도움을 필요로 할때 도움 주는 분들이 짠 하고 나타나기도 해요. 그렇게 서로 이웃이 되어가는 거죠. 





문솔님이 내려주신 에스프레소 한 잔 


긴 인터뷰를 마치고 문솔님은 올라운드 팀원들에게 에스프레소 한 잔씩을 내려주셨다. 더운 날씨탓에 늘 아아만 마셨었는데 진한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살짝 넣어 먹은 그 맛은 진심 혀끝을 황홀하게 했다. 


문솔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달성커피를 기반으로 실들이 엮어지고, 사람들이 엮어지는 골목길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멋드러지지 않을 수 있지만 ‘정직하고 기본에 충실하게'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재미난 모습을 기대하게 되었다. 이게 바로 동네 카페의 역할이지 않을까 싶었다. 



정리 by 생강
사진 by 올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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