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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미 Sep 14. 2023

나의 은퇴일기

은퇴 후의 취미생활 

많은 은퇴자들이 은퇴를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는 시간이 많아져서 평소에 하지 못했던 취미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나도 은퇴하기 전부터 관심이 가던 몇 가지를 취미로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예전에 도자기를 잠깐 배운 적이 있고 또 물레를 돌리면서 무아지경에 빠진 경험도 있어서 은퇴를 하면 도자기를 본격적으로 배워보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도자기를 취미로 하겠다는 생각은 동생의 말을 듣고 나서 접기로 했다. 도자기를 10년 넘게 하고 있는 동생 말이 부산물이 나오는 취미활동은 가급적이면 하지 말라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주변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 말도 맞다 싶었다. 그리고 이런 부산물이 나오는 취미 생활의 문제점은 부산물들이 대책 없이 쌓여가고 남에게 주거나 판매하기에도 애매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동생은 머그잔을 만들어서 직장동료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다고 했다. 물론 받을 때는 모두 호들갑을 떨면서 잘 만들었다, 어쨌다 하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지만 정작 그걸 쓰는 사람은 몇 명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동생은 결혼한 자기 아들 집에 갔다가 자기가 만들어 준 머그잔이 식기장 구석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씁쓸했다고 했다. 자기 아들도 안 쓰는데 하물며 남들은 어떻겠냐고 한다. 그래서 도자기를 취미로 하겠다는 생각은 접었다. 뭐 어찌 생각하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꼴인 것 같기도 하지만 동생 말도 나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두 번째 취미 후보는 민화 그리기였다. 유화에 비해서 좀 쉬울 것 같기도 해서 도전해 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선도 똑바로 못 긋는 내가 과연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민화도 도자기만큼 부산물이 많이 나오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고 했다. 남들이 멋지게 채색한 민화를 보면 나도 그렇게 따라 하고 싶지만 그런 경지에 오르려면 몇 년을 배워야 할지 요원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민화를 배운다는 생각도 일단은 좀 접었다. 대신 태블릿 PC나 휴대폰의 그림판을 이용해서 채색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보는 것을 먼저 시도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하나둘씩 취미 후보군을 접다 보니 이런 이야기도 생각났다. 어떤 사람이 이것저것 많이 배우고 있는데 꼭 만족할만한 수준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배우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둔다고 한 말이었다. 그 말도 맞는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너무 몸을 사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는 태도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이것저것 해보다가 정말 자기 마음에 드는 취미가 생긴다면 그때 올인해도 될 것이다. 


세 번째 취미 후보는 뜨개질이다. 과거에 나는 뜨개질을 전혀 하지 못했다. 중학교에 다닐 때 뜨개질이나 바느질 숙제가 있었는데 엄마 한데 맡겼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뜨개질과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런데 한 십 년 전쯤인가 유니세프에서 아프리카 유아들에게 줄 모자 뜨기 상품을 팔았다. 뜨개질을 할 줄도 모르면서 덜컥 사서 설명서를 보고 하다 보니 사각형의 모자가 떠졌다. 그래서 그때 늘이거나 줄이는 기교가 필요가 없는 목도리를 몇 개 떠봤다. 그때 나도 마음만 먹으면 뜨개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라피아 실을 사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코바늘로 여름 가방을 몇 개 떠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누어줬다. 물론 완성도는 형편없었지만 그런 것을 개의치 않고 핸드메이드라는 것에 의미를 두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요즘은 유튜브에도 뜨개질에 관한 동영상이 많아서 그걸 찬찬히 보면서 뜨다 보면 뭔가가 완성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자꾸 하다 보니 난이도가 높은 가방이나 옷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데 뜨개질을 하면서 느낀 점은 아무리 내가 잘 떠도 역시 아마추어가 만든 티가 나고 만만치 않은 실 값에 비해 그만한 값어치가 느껴지는 결과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노력과 돈을 들여 만든 것보다 훨씬 더 완성도가 있고 값도 싼 가방이 지천에 널려 있다는 것이다.  뭔가를 뜨는 재미로 하긴 하지만 나의 솜씨와는 비교가 안되면서 값까지 싼 기성품을 볼 때는 좀 허탈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시즌별로 뜨개질은 꾸준히 시도해 볼 것 같기는 하다. 겨울에는 털실 뜨기, 여름에는 라피아실이나 린넨실로 뜨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 보니 도자기도 그렇고 뜨개질도 그렇고 나는 뭔가 형태가 없던 것에서 형태를 만들어 가는 작업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번째 취미 후보는 피아노 배우기이다. 이것은 부산물도 나오지 않고 악기만 한 번 사면 된다. 예전에 아이들이 치던 피아노를 없앴기에 이번에는 가격대가 큰 부담이 없는 전자 피아노를 살 예정이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우리에게 피아노를 배워주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도 가끔 엄마에게 왜 우리에게 피아노를 안 가르쳤냐고 농담처럼 물으면 엄마는 그때는 살기가 힘들어서 그랬다고 하신다. 그런데 나는 안다. 내가 국민학교 6학년쯤에는 피아노를 가르칠 형편이 됐었다는 것을.  아마 엄마는 그 당시의 많은 엄마들처럼 과외활동에 별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하여간 나는 계속 피아노를 못 배운 게 좀 그랬다. 한까지는 아니지만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시간이 되면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예전에 내가 동료교수한데 화가 나면 베토벤의 템페스트를 치면 화가 가라앉을 거라고 했더니 그 교수가 그 경지에까지 가려면 없던 화도 생길 거라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 <피아노> 속의 아다처럼 피아노를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되려면 피아노를 열심히 배워서 자기의 분신처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건반 두드릴 힘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하면 어느 정도는 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다섯 번째 취미 후보는 글쓰기이다. 이것도 부산물이 나오지 않는 취미를 권장한 동생이 제안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 글쓰기는 돈도 안 들고 부산물도 안 나온다는 점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취미인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가 취미라는 말 자체가 좀 이상하긴 하다. 글쓰기가 취미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글쓰기는 취미라기보다는 행위인 것 같다. 글쓰기는 쓰지 않고 못 배기거나 또 써야 할 일이 생기거나 아님 쓰다 보면 글이 글을 낳거나 하는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글쓰기를 취미 카테고리에 넣고 싶지는 않지만 은퇴 후 할 일 또는 하고 싶은 일을 나열하다 보니 글쓰기가 포함되었다.  글을 쓰려면 소재가 있어야 하는데 뭘 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처럼 몇 가지 생각나는 것들을 쓰면서 정리를 하다 보면 좀 더 쓰고 싶은 주제나 분야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도 피아노처럼 많은 훈련을 거쳐야 읽어줄 만한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지금은 처음 도레미를 치는 것처럼 서툴지만 자꾸 쓰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래서 매일 쓰는 습관을 들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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