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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미 Sep 18. 2023

나의 은퇴일기

은퇴 후 남편과 잘 지내기 

남편은 나보다 2년 반 전에 먼저 은퇴를 했다. 남편도 학교생활을 했다. 남편이 은퇴를 할 당시 사람들이 나에게 은퇴 기념식을 해주었느냐고 물었다. 그때는 내가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라 남편의 은퇴가 그리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런 기념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내가 은퇴를 하고 보니 그때 남편의 은퇴를 그냥 지나친 게 좀 섭섭할 수도 있었겠다 싶다. 은퇴 후 연금생활자가 된 남편은 아침에 출근하는 나를 보고 돈을 많이 벌어 오라거나 이제는 자기에게 용돈을 줘야 한다고 농담처럼 말했었다. 그리고 자기가 이제부터 시간이 많으니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저녁식사를 준비해 놓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런데 내가 은퇴하기 전까지 딱 한 번 식사를 준비한 적이 있다. 그것도 내가 반복해서 "왜 나한데 저녁 차려준다면서?"라고 은근히 압력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준비하는 것은 고사하고 내가 퇴근하면 남편은 "나 오늘 하루 종일 바나나 밖에 안 먹었다" 등등의 말로 나에게 자신의 안녕하지 못함을 시위하듯이 말했다. 그래서 나는 "뭐 어쩌라고, 내가 놀다 왔나" 하는 심경이었다. 안 그래도 학교 갔다 와서 피곤한데 식사를 차려 놓기는커녕 자신이 밥을 못 먹은 것이 내 탓인 것처럼 불평하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한국 동네의 특성상 밖에 조금만 나가면 손쉽게 갈 수 있는 식당들이 많고 남편은 혼자서도 잘 가는 스타일이었기에 그런 말들이 더 짜증이 났다. 


생각해 보니 같이 교직생활을 할 때도 아이들 건사하기, 식사, 집안일은 대체적으로 내 차지였다. 한창 바쁠 때는 가사 도우미 분의 힘을 빌리기도 했지만 몇 년 전부터 가사 도우미도 쓰지 않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가사노동을 내가 거의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렇게 된 것은 남편과 분담을 제안하고 관철시키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다). 남편이 하는 일은 주로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다. 남편은 분리수거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을 한다. 같이 은퇴하여 생활하는 지금도 여전히 식사, 빨래, 청소 (남편은 마당을 청소한다)는 내 차지이다. 시키면 남편도 잘할 테지만 나도 모르게 가사노동을 내 일로 생각하고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가끔은 화가 난다. 


남편과 나는 38년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만 식성이 서로 너무 다르다. 남편은 매콤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나는 국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먹더라도 젓가락으로 국 속의 건더기만 건져 먹는 스타일이다. 남편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한식을 더 좋아하고 나는 아직도 파스타나 샌드위치, 샐러드 등 서양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남편이 약속이 있어 밖에 나가는 날은 내가 먹고 싶은 요리를 하기도 한다. 남편이 같이 있는 날은 대개는 까다로운 남편의 식성에 맞춰서 먹게 된다. 남편은 자기 식성이 까다롭지 않다고 항변하면서 자기는 입맛에 맞는 김치와 국만 있어도 밥을 잘 먹는다고 주장한다. 그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서울에서 자란 나는 남편 입맛에 맞게 경상도식 반찬을 잘할 줄 모른다. 내가 남편 식성이 까다롭다고 우리 엄마에게 흉을 봤더니 엄마는 딸인 나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발언을 하신다. "네가 하는 반찬이 맛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야?"라고. 아니 엄마는 대체 누구의 편이신가 모르겠다. 남들은 내가 하는 음식이 맛있다던데 그게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었나? 


예전에 우리 아버지는 음식에 대해서 한 번도 타박이나 불평을 하신 것을 본 적이 없어서 나는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음식에 대해서 무심한 줄 알았다. 나는 돌도 밥이라고 주면 군소리 없이 먹는 남편을 원한다. 그러나 남편은 미식가라서 음식재료의 신선도에 엄청 예민하고 항상 질 좋은 재료가 아니면 차라리 안 먹는 것을 택하는 얄미운 존재다. 나는 주부가 된 이후에 싱크대 밑에 설치되어 있던  Garbage disposal이 된 느낌이 들곤 했다. 남편이 이런저런 이유로 거들 떠 보지 않는 과일이나 반찬 등을 그냥 버릴 수 없어서 마지못해 처리하는 심정으로 먹곤 하기 때문이다. 나도 남편처럼 그냥 다 갖다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으나 음식을 버리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 생각해 보니 식생활을 책임지는 주부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다. 나도 미혼 때는 내가 먹기 싫은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남기기도 했었다. 그때는 엄마가 혼자서 다 처리하셨다는 것도 잘 몰랐다 (엄마 미안합니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그 입장이 되어 봐야 고충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식성 말고도 다른 점들이 너무나 많다. 그렇게 다른 사람 둘이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놀라울 정도다. 나는 장녀이고 어릴 때부터 굉장히 독립적이었다. 세 살 반 정도 되었을 때 집 근처의 교회에 혼자서 유치부 예배에 갔다고 엄마가 말씀해 주셨다. 그것도 혼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혹여 엄마가 뒤따라 올까 봐 연신 뒤를 돌아보면서 갔다고. 그리고 나는 장녀라서 그런지 책임감이 강하다. 그래서 내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들을 하지 않고 지나친 적이 없다. 그런 반면 남편은 6남매 중 5번째로 막내인 자기 동생보다 더 막내 같은 기질을 타고났다. 남편은 남에게 부탁을 잘하고 남의 부탁도 잘 들어준다. 나는 정반대다. 남에게 부탁을 하지도 않고 남이 부탁하는 것도 싫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남편이 항상 자기가 할 일을 나에게 시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쁠 때가 있다. 그럴 때 남에게 봉사도 하는데 남편에게 봉사했다 치자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곤 한다. 


남편은 집에 있으면 항상 나에게 스포츠 결과나 뉴스 등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관심사가 다른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남편에게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남편이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별로 관심이 없는 분야일 때가 많고 다소 장황하여 듣다가 곧잘 말의 흐름을 잃어버리곤 한다. 나는 비단 남편뿐만 아니라 주변에 말이 많거나 장황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끔찍하게 생각한다. 생각해 보니 나는 별로 좋은 청자는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 내가 남을 불편하게 하는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다. 남편은 굉장히 타자지향적인 성격이라 많은 것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데 나는 별로 그럴 필요를 못 느끼고 혼자서도 잘 지낸다. 아니 혼자 있으면 더 잘 지내는 편이다. 그건 우리 형제들의 공통된 특성이기도 하다. 가끔 그래서 무뚝뚝하고 혼자만의 세계를 좋아하는 나 같은 여자를 만나서 푸대접을 받는 남편이 불쌍하기도 하다. 자기에게 정답게 맞장구 쳐주는 여자랑 결혼했다면 알콩달콩 더 재미있게 살지 않았을까 싶다. 근데 남편은 애교 많고 자기 곁에  항상 있어달라고 조르는 여자보다는 나같이 남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여자가 더 좋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자기 눈을 자기가 찌른 것인지 자기 눈에 콩깍지가 씐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성격이 급하다. 아니 급해졌다. 내가 미혼 때는 성격이 급하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느린 성격도 아니었다. 결혼하고 나서부터 나는 성격이 엄청 급해진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공부를 하고 직장생활을 했기에 단위 시간당 생산성이 높지 않으면 그 모든 일들을 다 해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내 성격은 남편에게 뭘 시키거나 부탁을 하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내가 해야 직성이 풀렸다. 최근에도 나 혼자 무거운 책상자를 옮긴 것을 본 남편이 왜 그런 것을 자기한테 시키지 혼자서 했냐고 뭐라고 했다. 남편이 일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알고 보면 내 잘못도 꽤 있는 것 같다. 남편에게 할 기회를 주지 않고 내가 먼저 하기 때문이다. 남에게 시키지 않고 나 스스로 많은 것들을 하다 보니 하녀나 무수리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도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나도 이제부터 "난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하고 연기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편과 나, 둘 다 은퇴자가 되어서 집에서 많이 부딪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생활리듬도 많이 달라서 남편은 일찍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고 나는 남편보다는 늦게 자고 아침 6시 정도에 일어난다.  남편이 자러 간 이후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다. 남편은 아침 6시 반쯤에 수영을 하러 가는데 나는 남편이 돌아오기 전까지 요가를 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우리는 아침 일찍 출근하는 습관이 있어서 아침식사는 각자 알아서 하는 편이었다. 요즘도 아침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먹는 편이다. 나는 요가를 마치면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피트니스 센터에 간다. 집에는 12시쯤 돌아오는데 남편은 자신의 취미인 목공을 하거나 수도쿠를 풀고 있는 날이 많다. 점심은 간단하게 먹을 때도 있고 나중에 동네 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을 때가 종종 있다. 남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굳이 집밥에 연연하지 않는다.  


24시간 중에 생각보다 남편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각자의 공간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가끔 거실에서 차를 마시거나 과일을 먹거나 하는 시간 이외에는 부딪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리고 서로 상대가 하는 일에 대해서 큰 간섭을 안 하니 상대의 존재가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적당한 거리 두기가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요하다고 하는데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차피 부부라는 것이 평소에 거리 두기를 한다고 해도 여러 가지 문제로 필연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는 운명공동체가 아니던가? 평소에는 티격태격해도 남편이나 나나 운명공동체의 일원으로 서로를 지지해 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은 있는 것 같다.  


남편과 같이 늙어가면서 서로를 측은하게 바라다보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내가 처음 만났던 호기롭던 청년은 온데간데없고 탈모와 근손실을 걱정하는 중늙은이가 옆에 있다. 남편의 눈에 비친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둘 중에 하나 건강을 잃는다면 그래도 옆에 있어 줄 사람은 배우자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전에 영화제에서 미하일 하네케 감독의 영화 "아무르" (요즘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를 같이 본 적이 있다. 남편은 그 영화가 너무 인상적이었는지 요즘도 가끔 이야기를 한다. 영화는 피아니스트였던 부인이 치매를 앓게 되자 남편이 부인의 존엄을 위해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내용이었다. 남편은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무척 안타까워하면서 영화 속 남편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랑 나랑 오래오래 같이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건 살아있는 많은 사람들의 희망사항일 것이다. 우리는 둘 중에서 먼저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뒤에 남겨진 사람은 여러 가지 뒤처리도 해야 하고 또 혼자된 외로움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또 자기가 죽을 때는 슬퍼해줄 배우자도 없지 않은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남편과 살아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서로에게 믿음직한 버팀목이 되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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