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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Jun 28. 2022

나의 첫 응급실 방문기.

보호자로만 따라다니던 응급실에 환자가 되었다.

새벽이었다.

느낌상 세시쯤 인 듯했는데 어지럽기 시작했다. 가끔 어지러웠으니 아침에 일어나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잠을 청했지만 수면은 실패했다. 억지로 눈을 감고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일어날 엄두가 안 났다.

아이들 학교 갈 시간이 되니 증상은 더 심해졌다. 일어날 수도 누울 수도 없었고, 어지럼증은 더 심해졌고, 구토가 시작됐다. 어지러움과 구토가 한꺼번에 온건 처음이었다. 조금 무섭기 시작했다.

빈속에 수십 번 구토를 하고 남편의 도움으로 아이들 둘을 겨우 학교에 보내고 응급실로 향했다.


남편이 응급실 앞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남편의 주차를 기다리는 동안 계속 구토를 했다. 집에서 챙겨간 지퍼팩을 문신처럼 달고 다녔다. 겨우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 응급의학과 선생님을 대략 3분 정도 만났고, 대기하라고 했다. 휠체어에 앉아서 거짓말 조금 보태면 팔뚝만 한 바늘이 있는 주사기로 피를 뽑고, 심전도 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머리 CT를 찍었다. 정말 세상이 돌고 돌고 구토는 계속되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따듯한 응급실의 기운은 일도 느끼지 못했다. 너무 추웠고, 차가운 간호사들, 지속되는 기다림이 힘들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1시간이 넘는 기다림 끝에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아침 9시면 외래를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너무 견디기 힘들어 응급실왔는데 와서 침대에 눕는 시간이 1시간 넘게 걸리다니... 그것도 남편이 계속 간호사에게  요청을 해서 겨우 얻어낸 침대였다. 대기되어 있던 침대에 누워 응급실 침대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많아서 침대를 늦게 배정받았나 생각했었는데 응급실 안은 텅텅 비어있었고 누워서 한 십 분쯤 지나니 의사는 사진상으로 이상 없고 이비인후과 문제 같다며,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귀 검사를 위해 외래를 잡아주겠다고 했다. 남편은 이유를 모르면 검사를 더 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물었지만, 의사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제 구토와 어지럼이 가라앉았으니 집에 가자고 남편을 다독이며 집으로 왔다. 다행히 구토방지 주사 효과로 어지럼과 구토는 줄어들었고, 이틀 뒤 외래를 다녀왔다. 의사는 이석증 같다며 일주일 후 검사를 잡았다. 무척이나 고통스럽다는 이석증에 걸린 걸까?


이석증 검사는 신세계였다. 비디오 안진 검사였는데 고글 같은걸 쓰고 어둠 속에서 빨간 불빛을 보며 눈동자를 움직여 본다. 침대에 누운 상태로 귀에 차가운 바람, 뜨거운 바람을 넣고 일부러 어지럼증을 유발해 눈동자를 보는 검사였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보기도 하며 기존의 검사들과 느낌이 조금 다른 색다른 검사였다. 검사용 고글을 너무 꼭 씌어줘 탓에 이마에 한일자로 선이 선명히 남았다. 모자도 안 가져왔는데 무척 난감했다. 나이가 드니 피부 탄력이 떨어져 자국이 나면 쉬이 지워지질 않는데 말이다. 많이 창피하긴 했다. 너무 잘 보이는 이마 정 가운데였으니까... 비디오 안진 검사 이후 청력검사가 이어졌고 검사 결과는 이석증이 아니었다.

메니에르라는 생소한 질환으로 판명이 났다. 메니에르는 내이에 발생하는 질환으로, 난청, 어지럼증, 이명, 이충만감의 4대 증상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이다. 증세가 시작하면 검사해서 약을 먹고 하는 방법뿐이 없다고 했다. 물론 잘 먹고 잘 자고, 커피, 카페인, 술, 염분 섭취를 제한하라고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받지 말아야 한다고. 이병도 또 공주병이구나 싶었다. 잘 쉬어야 낫는 공주병-메니에르라는 병이 생소한데 그보다  아! 이 여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지 말라고? 거기에 초콜릿 같은 카페인도 줄이라니! 청천 병력 같은 소리를 의사 선생님은 너무 쉽게 이야기하신다. 그 이야기를 하실 때 의사 선생님 자리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놓여 있었다. 눈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다 마실 요량으로 내 시선은 거기에 고정되었다. 사실 선생님 이야기 반은 흘려들은 듯하다.


 달치 약을 받고 집으로 향했다. 진료 전에 커피를 한잔 마셨는데  마신 커피가 절로 생각났다. 커피는 하루에 한잔, 그것도 디카페인으로만 마시는데  조차 먹지 말라는  너무 가혹한  아닌가? 남편에게 결과를 말하면서 내내 커피  마신다는 푸념만 늘여 놓았다.


최근 병을 키운 일이 많았다. 계속 불면증이 지속됐고, 피곤했고, 스트레스가 많았다. 며느리 해방 일지에서 언급했지만 시어머님의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서 신경 쓸 일이 많았다. 거기에 육체적 피로까지 겹치면서 몸은 계속 나빠졌다. 결국, 질환이 한 개 더 추가되었다. 안 그래도 가지고 있는 지병이 있는데 큰 병원에 갈 때마다 질환이 한 개씩 더 늘어 난다. 다행히 약의 효과인지 어지럼증과 구토는 중단되었지만 커피를 못 마시는 금단증상이 지속되는 중이다.


매번 따라만 다니던 응급실에 환자가 되어 가보니 두 번은 가기 싫은 곳이 되었다. 환자에 대한 대우보다는 병원의 일처리에 따라 환자를 대우하는 병원의 시스템이 진짜 별로구나 싶었고, 재발 확률이 높은 이 병을 가지게 된 것도 유감이다. 어쩌면 이제 좀 쉬라고, 몸을 챙기라는 시그널일 수고 있겠다. 당분간 몸을 돌보고 사랑하는 시간을 가져 봐야겠다. 한달 후 재검사때는 좋은 결과로 커피를 마시고 말테다.


며칠 동안 커피 생각이 났다. 그래서 오늘은 디카페인으로 제일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셨다. 커피 수혈을 했으니 당분간 또 참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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