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핏줄이다.
죽어서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같은 유전자를 가진 육체와 정신의 공혈(供血) 집단.
부모의 묘를 명당자리에 쓰기 위해 풍수사를 수소문하는 것도, 원인 모를 병에 시달리는 갓난 자식을 살리기 위해 무당을 부르는 것도, 닥칠 재앙을 예감하면서도 딸의 결혼 자금을 위해 위험한 일을 수락하는 것도, 모두 핏줄 때문이다.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며 남은 유품인 틀니를 가족 몰래 숨기거나, 늦은 나이에 겨우 얻은 자식의 죽음을 막기 위해 조상의 묘까지 파헤쳐 불태우려 하거나, 어떤 죽음을 둘러싸고 온갖 감정과 결정들이 오가는 이유도 모두 그가 '나'의 핏줄인 탓이다. 김상덕(최민식)의 저 말처럼 "죽어서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핏줄은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간이자 죽음조차도 끊어낼 수 없는 질긴 인연이다.
그러나 궁극에는 흙으로 돌아간다. 부자건 가난뱅이건, 독립운동가건 친일파건, 이 핏줄이건 저 핏줄이건 활동을 끝낸 육신은 흙이 되고 땅이 되어 다른 생으로 돌고 돈다. 영화 <파묘>는 핏줄에서 출발해 핏줄과 상관없이 모인 네 인물―무당 이화림(김고은), 지관 김상덕, 장의사 고영근(유해진), 법사 윤봉길(이도현)―이 핏줄을 넘어선 관계로 나아가고 이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화림, 상덕, 영근, 봉길은 박지용(김재철) 집안의 묫바람을 계기로 재회한다. 염을 하거나 관이 놓일 자리를 봐주거나 귀신을 위해 굿을 하는 등, 죽음을 둘러싼 개개의 이면에서 활동하며 살아가는 네 사람은 늘 그렇듯 각자의 이익, 곧 돈을 위해 모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박지용의 할아버지 박근현의 묘가 첩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 아래에서 알 수 없는 거대한 관이 나오면서 각자 지키고 있던 위치에서 어쩔 수 없이 벗어나게 된다. 제삼자의 위치에서 돈을 받고 의뢰인의 사건을 해결해 주는 역할에서 빗겨 나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의 당사자가 된 것이다.
일본의 도깨비불인 오니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재앙의 발원지에 설 수밖에 없게 된 네 사람을 연결하는 것은 핏줄이 아닌 흙이다. 우리 모두가 발 딛고 사는 땅, 조상이 살았고 앞으로의 후세가 살아갈 땅, 철혈단이 위험을 무릅쓰고 한반도 전역을 돌며 쇠말뚝을 뽑게 했던 그것. 우리를 '동지'로 잇는 우리의 '땅'. 이 땅을 매개로 네 사람은 대가를 따지지 않고 혹시 모를 1%의 확률에 동요하며 어둠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간다.
어쩌면 핏줄이라는 건 그냥 땅으로부터 비롯된 하나의 줄기일 따름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모든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또 다른 몸을 먹여 살리며 끊임없이 이어진다. 핏줄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흙에 기대야만 한다. 흙에 발 딛지 않거나 육신이 흙으로 흩어져 돌아가지 않는 인간은 없다. 모든 핏줄은 땅 위에서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땅을 파고[破墓] 드러나는 것은 모든 핏줄을 연결하는 것이 곧 흙 자체라는 사실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