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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흘살기 전문가 May 19. 2024

7. 싱가포르에서 좋았던 것들

Singapore_익숙해서 놓치기엔 아까운 이야기


매번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이 여행지에선 무엇을 봐야지 무엇을 해야지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지만 무엇을 먹고 무엇을 느낄지는 각자에 달려있다.


실제 눈으로 본 싱가포르는 같이 뭉뚱그려 동남아라고 부르기엔 너무 커버린 유럽의 한 나라 같았다. GDP 기준의 선진국 개념에서도 한국보다 상위에 있고 쾌적하게 살기 좋은 나라, 살고 싶은 나라의 순위마저 이미 선두에 있는 싱가포르.


수많은 동남아시아에서도 작은 섬나라 중에 하나일 뿐인데 금융의 중심지로 우뚝 서있고 현대적인 건축물들과 더불어 경제적인 번영까지 어떻게 다 이루었을까 신기함마저 들었다.

역사적으로 파고들면 어두운 면도 많이 나오지만 나는 단순하게 여행 가서 의외로 좋았던 것들만 나열하고 싶다.


중국의 영향력 안에 들어간 나라를 가면 머리가 지끈 거리는 경험을 하곤 했다. 하지만 국가 시스템의 기본인 기초질서가 확고하게 잡힌 싱가포르는 달라도 참 달랐다. 홍콩과 뼈대는 비슷하면서 깨끗하고 쾌적하고 현대적이고 모던하고 장점만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이다. 유일하게 동남아 국가 중 살아보고 싶고 아이들 교육시키기도 좋은 나라여서 여행 간 김에 학교랑 주거 등등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물가, 학비, 주거 비용이 한국보다 몇 배는 들어서 상상으로만 간직하기로 했다.



기름진 음식을 먹다 한국음식이 그리워질 때쯤 갔던 '송파 바쿠테'. 어느 지점이나 대기가 많아 테이블을 받기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음식이 나오고 조심스럽게 국물을 떠서 입에 가져가본 큰아이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띠었다. 둘째는 "크~ 이 맛이야" 하며 무언가 인정할 때 생기는 눈썹 주름이 나왔다.


"엄마 그냥 한국 갈비탕이야 너무 맛있어! 근데 양이 적네. 빨리 한 그릇 더 주세요!"


흡사 재료만 바뀌었지 푹 끓여진 삼계탕 같기도 하다. 통마늘과 돼지갈비를 넣고 오랫동안 우려낸 국물이니 말해 뭐 할까. 한국은 밥그릇이 작고 국그릇이 큰데 반해 여기는 국그릇이 밥그릇보다 작다. 국물은 무한리필이 되어 애들은 고기를 건져먹더니 곧 밥을 말았다. 이거 한 그릇이면 배가 든든해져서 한국음식 먹고 싶을 때 따로 한국음식점까지 찾아갈 필요가 없겠다. 송파 바쿠테는 체인 음식점이라 싱가포르 어디를 가든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음식 안 먹은 지 일주일도 안되었는데 오랜만에 쌀밥과 국물이 들어가니 K진심이 나온다.


"크~ 마늘과 푹 끓인 국물, 이 맛이야!"






비보시티 푸드코트의 새우국수. 아래 왼쪽은 싱가포르의 빙수 전문점,           오른쪽은 뷔페처럼 여러가지 주문해 먹을 수 있는 반찬가게.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 비보시티 푸드코트에서 아침을 때워야 했다. 이른 아침이라 기름진 게 당기지 않아 아이들은 쌀국수를 시켜주고 나는 한참을 푸드코트를 돌며 고민하다 새우 국수를 시켜보았다. 이것도 우리가 아는 잔치국수의 얇은 면발이 아니라 가락국수와 라면의 중간사이쯤 되는 내가 선호하지 않는 굵은 면발이라 좀 고민이 되었다.


여행책자에는 이 새우 국수가 싱가포르의 꼭 먹어보아야 할 음식순위에 들어가 있는데 맛이 상상이 안되었다. 그냥 대충 한 끼 때우자 하는 마음으로 국물부터 후루룩 맛을 보는데 '아니, 이런 맛이! 역시 추천할 만하는구나!' 먹자마자 지금 맛본 것을 땅을 치게 만들다니.

새우의 시원하고 깊은 맛과 짭조름 향신료로 간이 되어 있는데 "새우도 큰 걸로, 양도 큰 사이즈 시킬걸" 하고 후회되는 맛이었다.


새로운 맛에 눈을 뜨고 이후로 새우 국숫집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싱가포르의 새우국수를 주 메뉴로 내놓는 대부분의 음식점에서는 주문할 때 면발 선택과 새우의 크기도 대-중-소 중에서 선택할 수 있어서 선호하는 면발과 새우 크기까지 골라 나만의 취향으로 새우 국수를 만들어 먹는 게 참 쉽다. 안 먹고 지나칠 수 있었는데 왜 유명한지 이해가 가는 새우탕보다 100배 맛있는 맛.



 


'커피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바차커피. 골드를 매장 전체에 세련되게 덮어 고급스럽게 포장을 해두어 싱가포르에 가면 외관에 끌려서라도 한 번은 홀리듯 들어가게 되어있다. 번쩍번쩍 눈이 부시게 패키지 디자인한 사람 상 줘야 되겠다. 

선물 받는 입장에서는 패키지까지 이뻐서 받으면 매우 기분이 좋아지는 선물이기도 하다. 동시에  여러 가지 향이 있는 커피라서 호불호가 강한 커피이다. 당근 등 중고 사이트에는 종종 바차커피가 올라오는데  "선물 받았는데 제 입맛엔 아니더라고요" 하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커피 중의 하나이다.


드립커피 좋아하는 사람은 맞는 향을 골라 마시면 다른 드립은 성에 안 찰 정도의 고급진 맛이다. 향도 맛도 색다르다. 딸기향의 1910과 밀라노 모닝을 매장에서는 추천해 준다.                     


딸기향이 나는 커피라니 왜 호불호가 갈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가. 이곳은 선물용 커피만 파는 매장이 있고 매장 내에서 마실 수 있는 카페가 함께 있는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크루아상도 유명해서 꼭 맛보기를 추천한다.



 




가운데 사진은 횡단보도를 건너다 찍은 사진이다. 껌을 씹는 것도 용납이 안 되는 나라라서 도로 바닥도 이보다 깨끗할 수가 없다. 껌 눌어붙은 시커먼 자국과 담배꽁초가 흔하게 버려져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되어서 더 그래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 즈음이라 오차드 거리 전체를 크리스마스 조명을 달아 밤이 되면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우리의 두 번째 숙소였던 오차드로드. 밤이 되면 조명이 켜지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어주어서 그 분위기를 즐기려 관광객들이 더욱 많아지는데도 도로와 거리가 너무나도 깨끗하다.


하루 3만 보는 걸어서 늘 저녁만 먹고 먼저 곯아떨어지는 둘째에게 머리를 말려주며 언니랑 10분만 나갔다 온다고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다. 피곤하면 어디서든 머리만 닿으면 쿨쿨 잠에 빠지는 아이라 참 아기 때부터 편하면서도 신기했다.


숙소 앞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첫째와 단둘이 10분간 데이트를 했다. 일명 젤라토 데이트. 여행 가면 일찍 자는 둘째 덕에 항상 사랑이 고픈 첫째와 숙소 발코니에서라도 단둘이 시간을 종종 가지며 여행 이야기, 엄마 어릴 적 이야기, 인생 이야기 등을 소곤소곤 나눴더니 첫째는 그 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추억한다.


싱가포르 여행 후 학교에 내는 체험학습 보고서를 보고 뭉클했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점을 적는 곳에 동생이 잘 때 엄마와 단둘이 젤라토 먹으며 단둘이 이야기했던 시간이 소중하고 그래서 더욱 잊지 못할 싱가포르 여행이었다고 적은 첫째의 글에 마음이 짠했다.


이게 뭐라고. 더 많이 품고 더 많이 사랑해 주어야지. 나에게도 좋았던 싱가포르 여행의 추억들이 벌써 새록새록하다.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것들이 다시 보인 여행이었다.  




다음 여행기는 하와이 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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