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로 멈췄던 나의 시간, 다시 뛰는 원동력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뭐였더라?"
육아에 모든 시간을 쏟아붓다 보니, 나는 점점 '나'를 잊고 살고 있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
울고 웃는 아이들 곁에서 문득, 창밖을 바라보다 바깥바람을 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2018년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남편없이 혼자 아이 둘의 손을 잡고 떠났던 첫 제주 '열흘살기 여행'.
그 짧지만 강렬했던 10일이 내 삶의 리듬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바꾸기 시작했다.
육아는 생각보다 훨씬 고요한 희생이었다. 하루하루는 다르지 않았고, '나'라는 사람도 점점 흐려졌다.
한때 여행 에디터로 국내외를 누비며 글을 쓰고, 풍경을 담고, 그곳의 온도를 기록하던 나는 어느새 '엄마'라는 이름 하나로 내 모든 걸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다시 불러낸 건, 아주 짧고도 선명한 '열흘살기'였다.
낯선 여행지에서도 마치 집에서처럼 익숙한 일상이 이어졌지만, 갇혀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숲에서 퍼지는 나무의 향기가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뇌를 서서히 깨워주었다. 여행지에서 아침 일찍 눈을 떠 하루를 계획하고, 아이 둘을 챙겨 이곳저곳을 누비며 걸어 다니는 일이 분명 피곤할 만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 날을 더 알차게 보내고 싶다는 설렘에 잠드는 시간조차 아까울 만큼 행복했다.
햇살이 좋던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낯선 제주 함덕의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집을 벗어나 처음 맡는 바다 냄새, 처음 보는 골목의 가게들, 낯선 사람들의 얼굴. 아이들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듯 눈을 반짝였고, 나는 그 눈빛을 따라 조심스레 나도 바깥세상으로 걸어 나왔다. 아이를 키우며 세상은 눈 깜짝할 새 변해가는데, 나는 마치 그 흐름에서 멈춘 듯한 기분이 문득 들면 답답함을 느끼곤 했었다. 그런데 여행지에서 보낸 시간 속에는, 내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이 조용히 스며 있었다. 멈춰 있던 나의 계절에 바람을 불어넣은 여행이라는 선물!
낯선 방에 이불을 펴고, 현지 마트에서 장을 보고, 물놀이한 아이들의 수건을 마당에 널던 그 하루하루. 그곳에는 내가 잊고 지냈던 ‘나를 다시 숨 쉬게 한 생활의 템포’가 있었다. 아침이면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치고, 아이들이 졸린 눈으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작은 부엌에서 간단한 아침을 차려 먹고, 마트에서 사 온 과일을 깎아 배낭에 챙긴다. 지도도 없이 걷고, 멈추고, 놀고, 다시 걷는다. 그 단순한 하루가 주는 충만함은 도시에서의 수많은 스케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여행지에서는 다르게 살아보게 된다.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유연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나답게
아이들과 함께였기에 가능했고, 아이들 덕분에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엄마로서만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서의 나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것. 그게 열흘살기 여행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이제는 내 키만큼 훌쩍 자란 아이들과 열흘살기는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돌아온 후에도 나는 가끔 그 열흘을 꺼내본다. 지금도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육아는 진행형이지만 그 기억 덕분에 나는 때때로 숨을 고르고, 나를 위한 길을 다시 그려본다. 어쩌면 ‘열흘’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경험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경단녀였던 나에게 이 여행은 다시 꿈을 꾸게 하고, 다시 글을 쓰게 하고, 아이와 눈을 맞추는 방식을 바꿔준 '작은 혁명'이었다. 엄마인 나 말고 '나'를 인식하고 내가 나인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타지에서의 일상이 주는 신선함이 육아에 지쳐있던 내게 '새 바람'을 불러 넣어주었다. 육아에 묻힌 감정에서 벗어나 내 감정에 집중할 시간을 만들어 주었고 낯선 여행지의 새로운 문화에 오랜만에 두근거림을 느꼈다. 여행지에서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나는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닌 삶의 주체가 되어 있었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어떤 길을 걸을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감각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짜릿한 자유였다. 엄마인 나도, 혼자서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고, 육아로 인해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던 자존감과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서서히 되살아났다.
여행에서 작은 성공의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 스스로도 “해볼 수 있다”는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기록은 기억을 이긴다.
"엄마, 우리 그때 발리에서 해 질 때 바닷가 걷던 거 기억나?" 어느 날 아이가 꺼낸 말 한마디에 나는 울컥했다. 그 기억이, 나의 열흘살기 여행이 아이의 마음에도 깊이 새겨졌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건, 나의 시간을 멈추는 일이었다. 내가 원하던 시간표는 아이의 리듬에 맞춰 조정되었고, 아침부터 밤까지 '엄마'라는 역할 안에서 나를 숨기고 살아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 속에서 가끔 문득,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걸까?”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러면 어느 날, 아주 오래전 나를 설레게 했던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낯선 길을 걷던 여행, 바다 냄새 가득한 마을, 현지인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호흡하던 나.
그리움처럼 마음을 스친 ‘여행’이라는 단어는 그 순간, 내 삶에 다시 불을 붙이는 작은 불씨가 되었다.
큰맘 먹고 아이 둘의 손을 잡고 떠난 열흘살기 여행. 매일 아침 새로운 햇살을 맞으며 시장을 걷고, 아이들과 함께 모래사장을 누비고, 골목 안 작은 가게에서 느릿한 점심을 먹으며, 나는 다시 ‘살아 있음’을 느꼈다.
여행은 내 삶을 멀리 데려가지 않았지만, 내 안의 멈췄던 시간을 천천히 다시 움직이게 해 주었다. 매일의 반복 속에 갇혀 있던 ‘나’라는 사람을 다시 꺼내어 안아주는 따뜻한 손길 같았다. 돌아와 다시 바쁜 일상으로 들어왔지만, 이젠 안다. 나에게도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원동력은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든 내 삶에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글을 쓰며 기록한 이 여정은 단지 '여행' 이상의 의미로 남는다. 삶을 다시 정비한 시간, 가족이 함께 성장한 순간, 그리고 나 자신을 다시 마주한 계기. 열흘이라는 시간, 그 짧지만 깊은 여정은 결국 우리 가족의 삶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제 매년 이 여행을 꿈꾼다. 그리고 또 기록한다. 삶이 얼마나 멋진지, 누구보다 나에게 먼저 알려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