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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후에서 만난 사람들

낯선 곳에서 만난 따뜻함, 그 하루의 기록

by 열흘살기 전문가





와이키키 거리를 걷다가 현지투어를 알아보았어요. 하와이 신혼여행 때 한국인 커플 셋이서 오붓하게 오아후 투어 했을때의 재밌었던 기억이 남아있고 아이들은 오아후 섬을 처음 왔으니 한 바퀴 둘러보며 경치를 보여주고 싶지만 오아후에서는 렌트를 안 하기로 했거든요.



오아후 한 바퀴 돌며 스노클링까지 있는 현지 투어. 성인 165불, 아이 125불. 열심히 설명을 하길래 좀 듣다가 어른 하나에 아이 둘. 300불 콜?

1.2.3

콜!

Ok!


다음날 7시 30분에 와이키키 비치 앞에서 투어팀을 만났어요. 300불이면 우리 셋이 가이드 딸린 차를 타고 프라이빗하게 투어를 할 수 있지만! 현지 투어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고 영어 리스닝도 하고 친구도 사귈 겸 겸사겸사



투어 루트

와이키키 픽업-다이아몬드헤드 분화구 밖의 해안도로 전망대-카할라 고급 주택단지-한반도 지도마을-하나우마베이-할로나 블로우 홀-할로나 비치 코브-샌디비치-마카푸전망대-와이마날로 비치-카네오헤베이 말라사다 트럭-마카다미아농장-중국인모자섬-푸미스 카후쿠 새우트럭 (점심포함)-노스쇼어 선셋비치-라니아케아 비치-할레이바 올드타운-돌 파인애플 농장-그린월드 커피팜-와이키키 드롭




우리의 투어 가이드 파파 P는 30년간의 가이드 경력으로 하와이에서는 모르는 게 없는 전문가예요. 파인애플에 자두 파우더를 뿌린 하와이에서는 간식으로 먹는 파인애플 깍두기도 사주고 현지인이 만든 바나나 빵도 사주고 진짜 할아버지 같은 가이드로 관광객을 돈이 아닌 가족처럼 대해주는 게 인상 깊었어요.

아이들도 처음에 낯설어했지만 질문도 하고 많이 친해졌어요.


"내 여동생은 돈이 많아서 한국 관광을 7번 갔고 한국을 너무 좋아해. 난 그지라서 한국을 한 번도 못 갔어"

슬픈 얼굴로 한국을 못 가봤다기에 가이드로 번 돈은 어쩌시고요? 물으니 마누라가 다~~ 가져갔다고 농담도 잘해요.


할로나 블로우 홀에서 파파 P가 준비한 젤리와 과자, 물을 나눠주고 새우요리 메뉴를 주문받았어요. 물과 스낵과 젤리는 많이 준비해 왔으니 먹고 싶은 만큼 이야기하라는 가이드 파파 P.

이렇게 먹을 거 많이 나눠주는 가이드는 처음 봤어요. 덕분에 여행객들이 더욱 신나 했지요. 특히 나눠준 파인애플 젤리는 돌 플랜테이션에서 한 봉지에 만원 넘는 가격이던데 너무 맛있어서 다들 파인애플 농장 가서 한 봉지씩 구입. 하와이안 할라피뇨 칩도 꿀맛.




할로나 블로우홀 전망대는 뷰가 예술입니다. 저 위에도 사람이 아래 바다에도 사람이 보여요.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하와이에 있다는 게 꿈만 같아요. 투어 팀이 아닌 개인으로 왔다면 아래 바다에서 실컷 놀다 가고 싶었어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카할라 고급 주택단지는 차로 편하게 관람했어요. 미국 유명 연예인들의 별장이 여기에 몰려 있었어요.


우리나라에 팥 도넛이 있다면 하와이에는 말라사다 도넛이 유명해요. 갓 만들어 뜨끈한 말라사다 트럭에서 3개 사서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먹었어요. 더 살걸.. 안에 크림이 다양하게 있어서 다음엔 종류별로 다 먹어보고 싶어요.




파파 P가 극찬하던 마카다미아 농장에 들렀어요. 유명 관광지보다 현지의 작은 농장이 재밌더라고요. 현지 농부와 가족이 직접 바나나로 구운 빵을 파파 P가 사서 나눠주는데 너무 맛있어서 저도 하나 구입했답니다. 바나나 빵을 파는 엄마 아빠 옆에 아이 셋이 주르르 늘어서서 우리를 보고 있어서 안 살 수가 없네요. 빵을 사니 바나나를 서비스로 주는데... 천상의 맛이에요. 정말 달아요.


이곳 마카다미아 농장 내에 '알로하 푸릇'이라는 음료 파는 곳에는 한국인 여성이 음료를 팔고 있어요, 하와이 이주하신지 2년 됐다고 해요. 한국인이 반가워서 스몰 톡. 음료도 꽉 채워서 주셔서 잠깐이지만, 한국인의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파파 P가 내려준 기념품 샵입니다. 폴리네시안이 만든 파인애플 깍두기도 먹고 왜 이곳을 데려왔는지 히스토리도 들었어요. 코로나 때 관광객이 거의 끊긴 하와이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두 팀씩은 들어왔다고 해요.

근데 관광객들이 들릴 화장실은 오픈해줘야 하는데 코로나가 무서워 모두가 셧다운 해버려서 가이드들이 너무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관광객들을 위해 화장실을 오픈한 샵이 있었으니 바로 이곳입니다. 코로나 때 관광객을 위해 화장실을 개방해 줘서 그 고마움으로 파파 P는 이곳으로 손님들을 데려온다고 합니다. 함께 기념사진 찍은 폴리네시안은 기념품샵의 아들이에요.




하와이 맛집이라면 새우트럭 유명하죠? 하와이에는 새우 양식장이 많아서 새우요리가 발달하게 되었어요. 허니문 때 먹었던 새우트럭보다 마늘맛이 많이 나는 새우는 짜지 않아 맛있게 밥과 잘 먹었어요. 그때보다 버터맛이 많이 나서 부드럽더라고요.

마늘이 많이 들어갔지만 맵지 않아서 아이들도 새우와 밥 한 그릇씩 뚝딱. 먹느라 사진을 못 찍었는데 파파 P 가이드의 아내분이 샐러드와 음식 두어 가지를 만들어서 관광객들과 나눠 먹으라고 보내줬다며 가이드가 테이블마다 음식을 나눠주었어요. 덕분에 맛있는 샐러드도 잘 먹었습니다. 정말.. 이런 가이드 처음 봅니다. 감동..




마지막 여행지. 그린월드 커피 농장. 여기서 작게 소분해서 포장된 원두와 생강초콜릿을 입힌 마카다미아가 맛있어서 선물용으로 많이 구입했어요. 그리고 같은 투어 팀, 옆 테이블에서 새우 먹으며 친해진 말레이시아에서 딸 셋 데리고 온 가족과 이곳에서 시음커피 마시며 수다를 떨면서 더욱 친해졌어요.


이메일도 주고받았는데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메일이 와있더라고요. 잘 도착했냐고. 말레이시아에 무슨무슨 날이 행사인데 놀러 오라고. 아니 무슨 앞집 가듯이 이야기해요? 말레이시아인데 ㅎㅎ

암튼 말레이시아 올 일 있음 꼭 연락하래요. 가족 다 재워준다고. 한국에 두 번 와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한국에 올 때 꼭 연락하겠다고. 이렇게 친구도 사귀었는데 같이 사진을 찍지 못해서 너무 아쉬워요..


오아후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가이드 파파 P가 기타를 치며 본인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풀더니 (사실 아침부터 여행지 중간중간 풀었음) 와이키키로 출발 전, 팝송 메들리를 시작합니다.

이게 또 미국인의 감성 아니겠어요?



노을과 미국 팝송. 낭만 있어요! 잠시 감상해 보세요.



음악 들으며 신나서 방방 뛰는 어린아이가 말레이시아 가족이에요. 딸들도 내 딸 또래라 말이 잘 통하더라고요.

우리 셋만 프라이빗 투어했으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여러 문화가 뒤섞인 낭만 투어. 하루를 같이 보내며 다들 친해졌고 음식도 나누어 먹고 수다도 떨고 재밌었어요. 다양한 사람들 속에 섞이며 아이들도 배우는 게 있었겠죠. 현지투어 하기 잘했다 싶었어요. 진짜 여행은 그 속으로 들어가서 부딪혀 보는 거라 생각해요. 알려진 관광지만 다니고 사진 찍고 또 이동하고 하는 겉 핥기 여행보다 찐 여행을 경험하고 싶었는데 아이들 데리고 남편 없이 여행 왔다면 쉽지 않죠. 저에겐 차선책이 현지투어 조인이었어요.




일정 끝내고 와이키키 비치에서 모두 일괄 해산인데 가이드께서 호텔이름을 하나씩 이야기해 보래요.

연세도 있으시고 본인도 피곤하실 텐데 각 가족마다 호텔 문 앞까지 데려다줬어요. 또 감동. 투어비 깎은 만큼 팁을 많이 냈습니다. 일정이 빽빽하지 않아서 그런지 하루가 참 기네요.





저도 호텔로 돌아와 쉬고 싶었습니다만, 우리 집 물개는 다시 또 첨벙.




출출해서 숙소 옆 마구로 포케를 사고 호텔 bar에서 아이들 먹을 감자튀김을 주문했어요. 웬만한 일에 놀라지 않는 저인데 주문하고 쉬다가 당황했어요.

언니~

언니!!!

누가 자꾸 한국어로 언니를 불러요.

하와이에서 나를 부를 사람이 있을까?

하와이 밤은 쌀쌀해서 있는 옷 다 껴입고 있다가 놀래서 "제가 언니예요?" 했더니

언니 맞아.

언니는 애가 둘이잖아.

나 20대야.

.

.

한국어 왜 이렇게 잘하나요.

잠시 기절.


한국어 어디서 배웠어? 물었더니 쿡 찌르며

한국드라마~ 너무 재밌어.

언니 요즘 그거 봐?

아씨 두리안이랑 닥터 차정숙

정말 재밌어!

갑분 드라마 대사를 막 하는데 드라마 안보는 사람이라 못 알아들으니


언니!!! 그 재밌는걸 왜 안 봐!

난 돈 주며 보는데 언니는 공짜로 보잖아!!


분명 방금 전까지 미국인 두 명 칵테일 만들어주며 영어로 이야기하던

하와이 폴리네시안이었는데 한국 드라마 안 본다고 답답해하고 막 혼내요.


언니 호텔 온 지 이틀 됐지? 나 첫날부터 언니한테 말 걸고 싶었는데 피곤해 보여서 말 안 걸었어.


물개 둘째가 밤늦도록 물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해서 나오라고 나오라고 이제 엄마도 좀 쉬자!!!

열 번은 얘기한 거 같은데 다 알아듣고 얼마나 웃겼을까요.


드라마로 배운 한국어라서 그런지 말을 다 연기하듯이 해서 재밌고 대화하다 보니 완전 한국인 같아요.

말을 너무 잘해!! 혹시 하와이 뱀부 호텔에 가시거든 이 친구에게 안부 좀 전해줘요. 덕분에 닥터 차정숙 다 봤다고 ㅎㅎ 프렌치프라이도 주문하면 왕창 줍니다. 손이 무지 커요.



오아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따스한 정을 느낀 하루였어요.

투어 가이드 파파 P, 말레이시아 딸 셋 가족, 같이 오아후 투어 하며 대화 나누었던 미국인들, 중국인 모녀, 멕시코 부부, 옆자리 워싱턴에서 온 아빠와 10대 남매, 기념품 샵에서 만났던 폴리네시안, 호텔로 돌아와 나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bamboo hotel bar에서 기가 막히게 프렌치프라이를 잘 튀기는 동생? 까지. (이름을 들었는데 긴 하루의 끝인지라 잊었어요 ㅠㅠ)




우리 셋이 빅아일랜드 여행하다가 이 날 하루는 사람들로 마음이 꽉 찬 하루였습니다. 아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말을 걸어주던 현지인들과 같은 목적으로 하와이를 여행 온 국적이 다른 여행자들의 작은 친절은 국적도, 언어도, 세대도 초월한 온기였어요.

낯선 곳에서 만난 작은 친절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사람의 따뜻함이 여행의 기억에 얼마나 깊이 스미는지를 온몸으로 느꼈던 하루. 아이들에게도 하와이는 따뜻함으로 남을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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