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 스카이폴에서 제임스 본드는 한 미술관에서 MI6 무기 담당관 Q를 보고 놀란다. 이전 Q들과 달리 나이가 상당히 어렸기 때문이다. 약간의 언쟁을 벌이면서 Q는 본드에게 “나이와 능력은 무관하다”고 말하자, 본드는 “젊다고 다 창조적이지는 않다”고 응수했다.
“젊다고 다 창조적이지 않다”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연소 정당 대표가 여성, 장애인 등을 희생양으로 삼아 갈라치기 정치를 일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겨우 만 34살에 독일 최고 명문 바이에른 뮌헨 지휘봉을 잡고 있는 율리엔 나겔스만은 어떨까.
‘혁신가’ 나겔스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출근하는 율리안 나겔스만. 출처 : https://namu.wiki
나겔스만은 ‘혁신가’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무려 만 2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독일 분데스리가 1부 팀인 호펜하임 감독을 맡은 이후 다양한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훈련 방법이다. 나겔스만은 선수들의 움직임을 확실히 분석하고자 훈련장에 드론을 띄웠다. 여기에다가 훈련장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 스크린을 통해 선수들에게 피드백을 쉽게 전달했다. 선수들과 격의 없는 소통을 위해 텔레그램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전술적인 측면에서도 과감한 모습을 보였다. 나겔스만은 하나의 포메이션만 집착하지 않는다. 경기 상황에 따라 전술을 수시로 바꾼다. 일각에서는 감독이 경기 상황에 따라 플랜을 바꾸는 건 당연한 게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꼭 그렇지 않다. 감독이 주요 포메이션들의 장단점, 선수들의 전술 소화 능력을 정확히 파악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그는 한 경기에 전술을 2~3개만 바꾸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포메이션을 상당히 유동적으로 운영한다. 실제 2020~2021 시즌 나겔스만이 지휘했던 독일 RB 라이프치히는 분데스리가에서만 8가지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파격적인 시도 덕분에 나겔스만은 지금까지 어마어마한 성과를 쌓았다. 역대 최연소 분데스리가 올해의 감독상 수상, UEFA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 발을 밟은 최연소 감독,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한 최연소 감독(2019~2020 RB 라이프치히) 등 모두 나겔스만이 이룬 업적이다.
‘명장병’ 나겔스만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 출처 : allthatboots.com
나겔스만이 앞으로도 계속 혁신가로 남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이룬 성과는 상당하다. 그렇지만 현존하는 최고 명장이라 불리는 위르겐 클롭, 펩 과르디올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나겔스만이 최근 자주 선보이는 전술인 3-2-4-1에는 몇 가지 아쉬움이 있다. 3-2-4-1 자체는 전혀 색다른 전술이 아니다. 기존 전술과 차이가 있다면 원톱 아래에 있는 미드필더들이 모두 공격적 성향이 상당히 강하다는 점이다.
실제 2선 라인에 배치되는 선수들은 킹슬리 코만, 토마스 뮐러, 세르주 그나브리(혹은 자말 무시알라), 르로이 자네 등이다. 장점은 있다. 바이에른 뮌헨이 보유하고 있는 공격 자원을 극대화, 상대방을 수비 진영에만 머물게 한다.
문제는 상대방이 빠른 속도로 역습을 전개할 때이다. 나겔스만 3-2-4-1 전술에는 전문적인 풀백이 없는 만큼 측면에 너무나도 많은 뒷공간이 발생한다. 다른 수비수들과 미드필더들이 측면 공간을 재빨리 메우면 실점은 막을 수 있다. 다만 세계적인 선수라도 90분 동안 본인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극단적인 공격 전술 때문에 바이에른 뮌헨은 2021~2022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한 수 아래 전력이라 평가받던 비야레알에게 무릎을 꿇었다.
나겔스만은 지난해 15년 후 자신의 모습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 이상은 감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은 길어야 약 14년이다. 기존 성과를 넘어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 등을 얻지 못하고 전술 실험에만 몰두한다면 나겔스만은 훗날 ‘명장병에 시달린 감독’으로 불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