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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현 Feb 23. 2022

타인의 시선

본격 나 파헤치기

사람들은 흔히들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할 수 있는 유아기부터 인간관계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경험하고,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며 성장한다. 나도 그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모두 그러했고 그러하고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느끼고 깨달은 점을 담은 감정 성장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얼마 전 교양수업 때의 일이었다. 수업 시간 과제로 교수님께서 내 주신 과제가 있었다. 자신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고 간단한 설문에 답하는 것이었는데, 문항마다 점수를 매겨 나의 인간관계 문제 척도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첫 번째 테스트는 점수가 낮을수록 부정적인 결과가 있는 것이고, 두 번째 테스트는 반대로 점수가 낮을수록 문제가 없고 평온한 상태인 결과를 나타내는 테스트였다.


첫 번째 테스트의 전체 문항에서 나는 전반적으로 좋은 점수를 주었지만, 이상하게도 ‘의사소통과 마음의 문을 여는 정도’라는 문항에서 다른 문항들보다 낮은 점수를 주었다. 그다음 두 번째 테스트에선 ‘대인 예민성’ 부분이 높은 점수가 나왔다. 두 차례에 걸친 테스트의 결과들은 모두 내 과거의 인간관계에서 얻은 트라우마와 상처들과 연관되어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로 인해 내가 자주 무너지는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 점수가 높게 나왔다.


대인 예민성. 이름을 들어도 대충 감이 올 테지만, 말 그대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신경 쓰는지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해서 얻은 스트레스다. 지금까지 나는, 스스로 끊임없이 “나”라는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려 노력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사실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의 반응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다른 사람들이랑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고, 교류해야 한다는 걸 잘 알지만 그건 그저 “의사소통”의 목적을 가지고 교류하라는 의미이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고 그것으로 인해 내 일을 망치고 내가 하고 싶은 바를 이루지 못하며 스트레스받고 모든 일을 그르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그러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나마 알아차리고 나니 속이 좀 시원했다. 어디서도 얻지 못했던 해답을 조금이나마 얻어낸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예 내가 자주 문제가 있는 성향을 보이는 것들에 대해 정리해봤다.

우선 주변 사람들의 감정에 의해 나까지 영향을 받는 것, 내 행동이나 선택이 다른 사람을 실망시킬까봐 걱정하는 것, 다른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고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 이게 제일 큰 문제인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걱정과 고민을 털어놓고 있으면 난 그걸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기 어렵다. 내 가장 큰 문제는 그들에게 감정적으로 동요된다는 것. 이번 생에 내가 상담사라는 직업을 가지긴 그른 것 같다.  내 행동이 다른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나에게 큰 기대치를 건 누군가는 내 행동이나 선택으로 인해 일희일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도 이제 어른이고 성인이니 내 행동에 내가 책임만 질 수 있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은 문제가 될 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누군가의 칭찬과 꿀 발린 말들을 기다리지 말고 내가 자신을 칭찬해주고 자신을 귀하게 여길 것. 이러면 어느 정도 나의 “대인 예민성” 부분의 문제점은 해결되리라 믿는다.


더불어 남들에게 정직해지기 어려운 것, 때론 지나치게 공격적인 것은 내가 마음을 내려놓고 사람을 신뢰하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타인의 앞에서 때때로 정직해지기 어렵고 공격적인 면을 보이는 게 나를 위한 최후의 방어책이라고 생각해서 나온 행동인 것 같다. 이건 앞선 테스트에서 내가 “의사소통과 마음의 문을 여는 정도”를 제일 낮은 점수를 준 것과 연결 지어 설명할 수 있겠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선” 이 너무나도 확실하고 강한 사람이어서, 심지어 그게 가족이라고 해도 내가 그려둔 선을 넘으면 일절 나에 대해 오픈하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 알리려고도 하지 않으며 그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어물쩡거리며 보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맞다. 나의 이런 면은 어쩌면 좀 과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적어도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진 않는다. 여기에 있어서는 나 자신에게 떳떳하며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그 원인을 알아내야 하고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의 이런 면을 담담하게 대하기로 했다. 사실 툭 까놓고 봐도 그렇게 까무러치게 놀랄 만큼 큰 문제는 아니다. 별거 아니니까. 나도 그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자주 받고 주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리고 그 상처들을 최대한 멀리 밀어내기 위해 내 선을 제멋대로 넘나드는 사람들에겐(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라고 일컬을 수 있겠다) 정직해질 필요도 없으며 마음의 문을 열 이유도 잘 못 느끼는 것일 뿐이다. 그들로부터 날 방어하기 위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일 뿐이다. 어찌 보면 참 안쓰럽기도 하다. 어쩌다 이 정도로 방어심이 강한 사람이 되었나 싶지만 내 방어적인 기질이 주구장창 튀어나오진 않으니 그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한다.


요즘 들어 자주 쓰이는 ‘인간관계 다이어트’, ‘인간관계 디톡스’ 와 같이 무시무시한 말들은, 무자비하게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 사람들을 끊어내고 손절하라는 말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실수할 수 있고, 나와 다른 환경, 다른 여건, 다른 조건에서 자라온 사람인 만큼 나와 생각하는 결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건강함을 추구하고 싶고,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면, 그리고 반대로 그들에게도 내가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면, 다름을 틀림으로 치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부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읽어나가며 사랑하는 연습이 더 우선시 되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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