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강에 조금 민감한 편이다. 사람들은 건강을 떠올리면 운동부터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건강에 중요한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이 첫째였다. 20대 중반쯤에 미국 유학생활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미국 식생활에 젖어들었다. 일 년쯤 지났을 때부터 나는 많이 아팠다. 이유도 없이 피곤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고, 가스가 차고, 배가 아프고, 화장실 가기가 힘들었던 시간이 지속되었었다. 공부가 바빴던 시절에는 그냥 스트레스려니 하고 지나갔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할 때쯤, 더 심해진 증상으로 삶이 힘겨웠다. 시간을 내어 찾아간 미국 가정과 의사는 가벼운 위염이라고 진단 내렸다. 위염 약을 처방받고 2주간 약을 먹었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전문의 소견은 혹시 다를까 하여 위내시경, 장내시경을 했지만 여전히 가벼운 위염이었다. 양약을 의존하면 할수록 증상은 더 악화되었다. 미국 의사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스트레스를 줄여라. 가스가 차는 채소는 먹지 말아라. 그 이외의 조언은 없었다. 믿음이
가지 않았다.
오후 3시만 되면 복부가 가스로 차올라 부풀었고, 허리를 구부려 배를 움켜쥘 정도의 통증으로 인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진통제를 먹었고, 그나마 며칠을 버텼지만, 진통제 때문이었는지 통증은 더 심해졌다. 답답하고 심란했다. 심한 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실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심한 통증으로 인해 답답하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고기를 즐겨 먹는 것도 아니었다. 과식이나 폭식, 야식도 없었다. 물도 하루에 2리터 정도를 마셨다. 밤에도 잠은 잘 잤고, 거의 매일 가벼운 운동에서부터 중강도의 운동도 꾸준히 했다. 이 정도면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위염이라니, 배 통증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다. 누군가 내 미국 삶을 일부러 갈기갈기 찢어 놓는 것만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열심히 인터넷 서치를 하며 구글과 지식인에게 물었다. 일단 의사가 위염이라고 하니 위염에 좋다는 민간요법을 찾아 공부했다. 마침내 찾아낸 것은, Extra virgin pine nut oil이었다. 잣으로 짠 기름을 섭취하는 것으로 위와 장벽을 보호하여 많은 사람들이 큰 효과를 봤다는 리뷰가 많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단 시작했다. 식전 30분 전, 잣기름을 밥 숟가락에 쪼르륵 따라먹기 시작했다. 향기로운 소나무 향 같은 내음이 입안에 퍼졌다. 잣기름 맛이었지만, 북유럽 깊은 산 중에서 따온 듯한 향이 깊은 잣기름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올리브 기름으로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기름이 장벽을 보호해서 인지 소화도 잘 되고, 트림도 잘 나왔다. 며칠이 지나면서 오후 배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유레카였다. 의사에게 받은 약은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환자들 대부분 나처럼 양약이 듣지를 않아 잣기름을 선택했고, 3개월에서 1년까지 장복을 하고 좋아졌다는 후기가 많았다. 나도 그러기로 했다.
잣기름을 먹는 1년간 건강에 관한 자료들을 섭렵하여 더 공부를 했다. 연구를 많이 한 의사들은 자신들도 몸이 아파 수술 직전까지 갔거나 수술 후에도 나아지지 않는 증상과 통증 때문에 스스로 공부하여 얻은 귀한 지식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소화와 배출의 문제는 무엇보다 유산균이라는 것을. 유산균은 우리 몸속으로 들어와 장내 유익한 균들을 증식시켜 면역을 증진시키고 호르몬 분비를 조절한다. 뇌에서 모든 것을 관장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장내 유익균이 뇌만큼 크나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입에서부터 들어오는 유산균은 배출되는 바깥문까지 좋은 유익균들로 이루어져야 했다. 유익균들은 장에도 영향을 주지만, 입 안의 세균까지 영향을 주어 충치를 예방하기도 증식시키기도 한다. 청소년시기까지 유익균은 성장 호르몬처럼 몸에서 잘 증식하고 배가하지만, 성인이 되면 성장 호르몬이 멈추듯이 유익균의 증식도 멈추기 때문에 건강한 음식으로 잘 관리하지 않으면 몸에 남아있던 유익균까지 모조리 없어진다고 했다.
장내 유익균이 없어지면, 그 빈자리를 유해균들이 자리하게 되는데 이들의 먹이는 흰 밀가루와 고기, 설탕이 주를 이루고 그 부산물로 상당한 양의 가스가 배출되고 변비 혹은 설사를 유발한다고 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 증상과 딱 맞아떨어졌다. 과학과 경험으로 설명하는 의사들의 설명에 설득되어 유산균들을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유산균 하면 모두들 요구르트를 생각하겠지만, 시중의 요구르트는 이미 설탕이 가미되어 소용이 없었다. 가내 수공업으로 만든 그릭 요구르트를 섭취하든지, 아니면 쉽게 알약 캡슐로 나온 유산균을 복용하면 되었다. 또한 장내 유익균을 잘 키우고, 유지하면서, 유해균을 무찌르는 음식들이 무엇인지 잘 알려주었다. 일단 가공 음식은 피해야 한다. 가공 음식은 방부제가 들어가고 고온에 찌거나 화학약품처리로 인해 이미 죽은 음식들이기 때문에 장내 유익균이 좋아하지 않았다. 유익균이 가장 좋아하고, 몸에 좋은 음식은 땅에서 키운 유기농 채소들과 너트, 과일이었고, 도정을 오래 거치지 않은 현미와 통밀, 그 이외 기타 곡식류들이었다.
식단을 180도 바꾸기 시작했다. 흰 밀가루는 모두 버렸다. 고기와 설탕도 먹지 않기로 했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아쉬운 마음에 가공품을 사려고 했지만, 무엇이 첨가되었는지 영양정보를 꼼꼼히 보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설탕은 기본으로 들어갔고, 오랜 보관을 위해 방부제가 없이는 판매되지 않았다. 이미 젊은 나이에 포기해야 할 음식들이 너무도 많아 슬펐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아이스크림, 버터향이 그득한 빵과 입에서 살살 녹는 케잌, 스트레스로 입맛 없어 목에 걸린 음식들을 쭉쭉 넘겨주던 사이다와 콜라, 하루의 심심함을 달래주는 과자류, 젤리, 디저트 등등. 마음을 달래주는 위로의 음식들은 이제 안녕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매일 통증을 달고 사느니 나를 살리는 유산균들을 위해 잠시 포기하는 게 나았다. 예전에는 내 입을 위해 음식을 먹었지만, 이제는 유익균을 먹이기 위해 먹고 마셔야 하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반려 동물이 생긴 기분이었다. 내 마음대로 살며,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먹던 모든 습관을 끊어내고 누군가를 위해 먹어야 하는 갑작스러운 삶의 변화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내 몸 안에 나 말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먹고 마셔야 한다는 것은 희한한 기분이었다. 혼자라고만 생각했는데 결국 혼자가 아니었다. 결국 나를 위한 것이긴 하지만, 먹는 것조차 나 이외에 배 속 누군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이타심 혹은 책임감이었다. 먹는 것을 통해 새로 생긴 책임감을 접하며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밀가루와 설탕까지 끊었으니 베지테리언들보다 더 심하게 골라 먹는 비건들보다 더 엄격한 식생활이었다. 마치 수도승 같았다. 사람이 되기 위해 100일간 파와 마늘만 먹었던 호랑이와 곰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생각도 했다. 그래 언제까지 해야 이렇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한번 100일만 해보자. 그 이후에 또 할만하면 더 연장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니 생각지도 못하게 살이 쭉쭉 빠졌다. 다이어트는 그저 덤이었고, 머리는 맑아져 기분이 좋아졌고, 몸에는 힘이 났다. 자주 우울해지던 기분은 사라졌고, 이유를 알 수 없던 감정 기복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매일 밤 라면과 떡볶이, 치킨이 생각났던 크레이빙도 없어졌고, 매달 고생하던 생리통도 완화가 되어 진통제도 줄여 나갔다.
엄격하게 지키던 식습관으로 6개월이 지나니 위염은 물론, 배 통증, 자궁 속 근종과 기타 병증도 사라졌다. 그 어느 때보다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1년 이상을 지속했다. 친구들 모임에는 조금 어색하지만 작은 도시락을 싸가는 정성도 보였다. 매일 먹던 유산균도 몸이 호전되면 길게 장복할 필요가 없다 하여 캡슐 유산균도 끊었다. 살아있는 음식들도 배를 채우니 유산균들은 문제없이 잘 크고 있는 듯했다.
몸이 회복된 이후, 혹시나 하여 시험 삼아 예전에 좋아하던 고기와 흰 밀가루 빵, 아이스크림, 과자 등등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내 몸이 이제는 마치 리트머스 종이가 된 것처럼 팔과 다리에 두드러기가 올라와 가렵고, 가스를 동반한 배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그래서 이제는 내 몸이 어떤 음식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게 되어 적당히 조절하며 식생활을 하게 되었다.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먹을 때 오는 몸의 반응의 이유를 알고 어떻게 회복되는지 알고 나면, 먹는 것에 관하여 마음이 편안해졌다. 녹록지 않은 인생, 먹는 것에라도 편안해지면, 인생에 맞닥뜨린 문제들을 접할 때, 조금 더 수월함을 느낀다.
세상은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정신없이 마케팅을 하고, 가공음식의 편리함과 장점들을 쏟아낸다. 우리는 그들의 반복적인 말들에 세뇌되고 현혹되어 어느새 우리의 몸과 맞지 않는 죽은 음식들과 친숙해져 버렸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돈 벌고 성공하는 것에만 머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에도 똑똑하고 지혜로워져야 함을 느낀다. 먹어서 행복하고 기분 좋은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병이 생기고 속이 불편할 때, 그 어떤 약보다도 몸을 직접적으로 치료하는 먹거리를 모두가 잘 알고 잘 활용하기를 소망해 본다.
참조:
채소 과일식, 조승주 저
최강의 식물식, 윌 벌서위츠 저
의사의 반란, 신우섭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