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발표’부터 ‘다러터우’까지, 복권 천국 대만의 숨겨진 문화
복권을 산다는 건, 무엇을 산다는 걸까
사람들은 왜 복권을 할까요. 당첨될 확률은 터무니없이 낮고, 그마저도 대부분은 꽝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누군가는 농담처럼 말합니다. “일주일치 희망을 샀다”고요. 또 누군가는 오래된 습관처럼 매주 복권을 구매합니다. 복권을 사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욕망과 불안, 기대와 체념, 현실과 환상이 뒤엉켜 있습니다. 무엇보다 복권은 인생의 균형추를 단 한 번의 숫자로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줍니다. 극단적으로 낮은 확률 속에서도 우리는 ‘혹시나’라는 희망을 그려봅니다. ‘나는 아닐 거야’가 아니라, ‘혹시 나일지도 몰라’라는 그 미묘한 차이가 우리를 복권 판매대 앞으로 이끄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작은 종이 조각 하나는, 어쩌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열심히 산다고 보장되는 게 없는 삶 속에서, 그저 운에 한 번 맡겨보는 거죠. 잃는 건 커피 한 잔 값, 얻는 건 평생을 바꿀 기회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복권이 주는 건 현실의 돈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보다 더 강력한 것 바로 ‘희망’입니다. 복권을 사는 사람들은 그 희망 하나를 조용히 주머니에 넣고 하루를 시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통일발표 복권이란?
이렇듯 복권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어떨까요? 이번 화에서는 대만의 흥미로운 복권 문화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예스진지 투어를 갔을 때였습니다. 가이드님께서 대만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든 특별한 복권 제도를 이야기해 주셨는데요. 그 이름도 낯선, ‘통일발표(統一發票)’ 복권 제도였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복권과는 조금 다릅니다. 편의점, 식당, 택시, 어디서든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고 받는 ‘영수증’ 자체가 복권이 되는 구조입니다. 대만 정부는 세금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1951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는데,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영수증을 요구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국가가 운영하는 공식 복권 시스템이 ‘영수증’에 붙어 있는 셈이죠.
방식도 아주 간단합니다. 영수증 상단에는 고유의 8자리 번호가 적혀 있는데, 이 번호로 2개월마다 한 번씩 추첨을 합니다. 당첨금은 숫자가 얼마나 일치하느냐에 따라 차등 지급됩니다. 가장 높은 등급인 ‘특별상’은 8자리 번호가 완전히 일치해야 하며, 무려 1,000만 대만달러, 한화로 약 4억 원에 가까운 상금이 주어집니다. 그다음 등급인 ‘대상’ 역시 8자리 전부가 일치해야 하고, 200만 대만달러(약 8천만 원)가 지급됩니다. 1등도 8자리 전부 일치로 20만 대만달러, 약 800만 원 수준입니다.(특별상, 대상, 1등 모두 8자리이나 번호가 다릅니다.) 그 아래부터는 일치하는 숫자 자릿수에 따라 등수가 결정됩니다. 마지막 7자리가 맞으면 2등, 상금은 약 4만 대만달러(160만 원)이고, 6자리가 일치하면 3등으로 1만 대만달러(약 40만 원), 5자리는 4등으로 4천 대만달러(약 16만 원), 4자리는 5등으로 1천 대만달러(약 4만 원), 마지막 3자리만 일치해도 6등으로 200 대만달러, 약 8천 원 정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외국인도 당첨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권을 지참하고 지정된 은행(국태은행, 화남은행 등)을 방문하면 본인 확인 후 절차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소액 당첨일 경우 일부 편의점(세븐일레븐, 전가마트 등)에서도 현금 교환이 가능합니다. 물론 고액 당첨은 정해진 세율(약 20%)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며, 은행에서 서류를 작성해야 합니다.
실제로 대만에서는 이런 영수증 복권 당첨 사례도 자주 들립니다. 예를 들어, 단돈 20 대만달러(약 1,000원) 짜리 커피를 사고 받은 영수증으로 1,000만 대만달러에 당첨된 사례도 있습니다. 또 한 번은 한 어르신이 쓰레기통에서 주운 영수증을 모아봤더니 무려 200만 대만달러에 당첨된 적도 있었죠. 심지어는, 어린아이가 주워온 영수증 한 장이 가족에게 대박을 안겨주었다는 따뜻한 뉴스도 종종 등장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대만에서는 쓰고 남은 영수증을 무작정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편의점 한편에는 ‘기부함’도 비치되어 있는데, 당첨이 안 되었더라도 소외 계층이나 자선단체가 대신 추첨에 응모할 수 있도록 기부하는 문화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복권이라기보다는, 이건 어쩌면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작은 행운의 제도 같았습니다.
최근에는 종이 영수증 없이도 복권에 응모할 수 있는 전자 시스템이 도입되었습니다. 계산할 때 스마트폰 앱에 저장된 바코드를 제시하면, 영수증 정보가 자동으로 클라우드에 저장되고, 추첨도 함께 이뤄집니다. 당첨 여부는 전용 앱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고, 고액 당첨 시에는 계좌 이체까지 신청할 수 있어 매우 간편합니다. 분실 걱정 없이 자동으로 관리되니 여행자에게도 유용한 방식입니다. 종이 없이도 참여할 수 있고, 환경 보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라 느껴졌습니다.
그 밖의 대만의 복권과 당첨 에피소드
대만에서도 우리나라처럼 길을 걷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것이 바로 복권 판매점입니다. 처음엔 그냥 편의점처럼 생긴 가게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벽면에 숫자표와 당첨금이 커다랗게 붙어 있더라고요. 대만 분들 사이에서도 복권은 꽤나 일상적인 즐거움 중 하나인 것 같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흥미로웠던 건 ‘大樂透(따러터우)’라는 복권이었어요. 한국의 로또와 비슷한 방식인데, 1부터 49 사이의 숫자 중 6개를 고르는 간단한 룰입니다. 가게에서 천 원 남짓한 돈으로 복권을 한 장 뽑아 들었을 뿐인데, 은근히 손에 땀이 나는 그 긴장감은 세계 어디서나 같더군요.
그렇게 재미 삼아 한 장 구입해 봤는데, 웬걸요. 번호 3개가 맞아서 6등에 당첨된 겁니다! 상금은 크지 않았지만, 현지에서 직접 뽑은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나 짜릿한 경험이었어요. 그 복권은 결국 못 바꾸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마침 대만으로 여행 가는 친구가 있어 복권을 대신 바꿔달라고 부탁했죠. 한국에 돌아와서 맞춰 보았을 땐 번호 4개가 맞은 5등으로 상금은 더 올라가 있었죠. 아쉽게도 다음에 대만을 가는 친구를 수소문하지 못해 두 번 연달아 당첨된 에피소드만 남기게 되었습니다.
비록 상금은 여전히 소박했지만, 이쯤 되면 대만 복권도 여행의 또 다른 추억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에 대만을 방문하게 된다면, 또 한 번 재미 삼아 도전해보고 싶네요. 혹시 여러분도 대만에 가실 일이 있다면, 길거리의 복권 판매점을 한 번 유심히 살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뜻밖의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