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0과 1사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걸음거름 Mar 08. 2022

실패했을 때 다시 도전하는 용기에 대해

책 '사물의 시간'

"실패했을 때 다시 도전하는 용기가 덩치에 비해 아직 덜 자란 모양이다."



  우리 아빠는 잔재주에 아주 능하신 분이다. 아버지를 경험했던 모든 사람들은 마치 입을 맞춘 듯 아버지가 잔재주에 능하시다고 늘 말하신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잔재주를 가장 잘 쓰신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운동'이다.

  운동능력이 탁월하신 아버지에 비해 난 운동신경이 많이 없다. 아니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혹자는 노력으로 그것을 커버할 수 있다고 하지만 세상에 언제나 예외가 있듯 나도 그 예외 중 하나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나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타자의 입장에서 보면 운동을 하는 건지 춤을 추는 건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운동에는 매우 잼병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운동을 잘하고 싶다.

  왜 실패에 대한 글인데 운동 이야기를 꺼내고 있냐 하니 글을 읽다가 저 문구를 읽고 내가 문득 떠오른 장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버지랑 처음으로 야구를 했던 순간이었는데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운동선수로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셨단다. 본인처럼 나도 운동을 잘할 거라 생각했다. 사실 더 이야기하자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이야기가 너무 흘러갈 수 있으니 생략하고 진행하겠다.

  내가 갓 걷고 뛰기를 시작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없는 우리 집에 아버지는 글러브 2개와 물렁한 공을 하나 사 오셔서 집 앞마당에서 같이 야구를 하려 하셨었나 보다. 근데 웬일인가. 운동을 잘할 것만 같았던 내가 영 폼이 안 나왔었나 보다. 이러쿵저러쿵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시다가 공을 좀 세게 던지셨는데 그 공이 내 코를 맞추는 큰 사건(?)이 있었는데 나는 30살이 된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살면서 맞아본 것 중 가장 충격적이고 아팠던 공이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놀래서 그랬는지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 내게 적극적으로 운동을 시키시지 않는다.

  그때 만약 나를 일어서게 할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이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 난 그 순간을 잊지 못해 그때부터 내가 운동을 못한다고 생각하고 운동을 멀리하게 되었고 운동을 하기보다는 옆에서 구경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이 사건과는 별개로 나라는 사람은 어차피 이런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때 내가 일어설 수 있었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며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

  난 이제 한 가정의 아버지이다. 책임지고 양육해야 할 나의 자녀가 있고 태어날 자녀도 있다.


  실패 앞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는 나의 아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들. 그 사이 어디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