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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걸음거름 Jun 07. 2022

소화불량

'왜 나는 게을렀을까?'

  마음이 갑갑할 때가 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국면의 뭔가가 펼쳐졌을 때, 즉 내 생각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 갑갑함을 느낀다. 이러할 때에는 화를 내기보다는 내가 생각한 것이 답이지 않을 수 있다 생각하면 금방 갑갑함이 사라지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게 사실 쉽진 않지만 한 두 번 연습하다 보면 처음보다는 갑갑함이 줄어든다. 갑갑함은 약간의 죄책감으로 남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죄책감조차 잊힌다.


  또 마음이 갑갑할 때가 있다. 전자보다 이 경우가 사실 매우 난해한데 책을 읽다가 갑자기 책이 읽히지 않을 때이다. 글자는 검정색이고 배경은 흰색으로만 보이는 이 시점부터는 어떠한 글을 읽어도 내 눈에는 다 검정색 잉크로 보일 뿐이다. 사실 나는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글을 읽고 내 글로 써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다 보면 소화를 시켜야 한다. 운동을 하든 소화제를 먹든 소화를 시킬 수 있는 어떤 행동을 하든. 글도 마찬가지로 일정한 만큼 읽었으면 내 생각의 기틀이 어느 정도 잡혀있을 것이고 그것을 글로 풀어써야 했는데 귀찮아서, 다음에 하면 될 것 같아 치일 피 일 미루다가 결국 이렇게 체해버리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경우 참 난해하다. 어떤 글을 써도 소화되는 느낌이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자니 애꿎은 시간이 계속 날아가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행동을 해서 머리가 조금 환기되었다 싶어 다시 책상에 앉아 글을 읽어보려고 하면 다시 갑갑했던 그 상태 그대로 가게 된다. 글을 써야 하는데 글이 써지지 않으니 난해하다.


  생각해보면 다른 것보다 게으름이 제일 무서운 것 같다. 먹는 것에만 치우쳐 게을러지면 비만이 되고,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읽고 쓰는 것도 아무리 좋은 것을 읽고 아무리 값진 깨달음을 얻었더라도 쓰지 않으면 결국 쓰레기가 돼버리고 만다. 떠오르는 생각 또한 잡아놓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날아가 버린다.


  게으름이 천성이라 생각하였지만 게으름이 천성일 순 없다. 그랬다면 신은 내게 삶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느림이 내 천성이다. 느린 것과 게으른 것은 전혀 다르다. 게으름은 멈춰서 있는 것이고, 느림은 멈춰서 있는 것 같지만 미세하게 조금씩 가고 있는 것이다.


  절대로 멈춰 서면 안 된다. 절대로 게을러서는 안 된다.

  또 후회할 행동을 하지 말자.



p.s.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글감을 모으고 녹음도 해놓고... 하지만 정작 글로 쓰진 못했던 다양한 글감들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써야지.' 했던 많은 생각들과 글감들은 결국 날아가버리고 글자로도 보이지 않는 지금이 제 현 상황입니다. 똑같은 실수를 몇 번 반복했지만 이 실수에 대해서 글을 써본 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때 이 기억을 글로나마 저장해놓고 나중에 꼭 되새기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갑갑한 제 마음속을 뚫어주는 소화제 같은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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