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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 김안녕 Sep 05. 2020

3. 학원 집 아들이면 공부를 잘해야지!

골방 김안녕 과거 특선, '나는 왜 살았을까?' - 3편

다른 과목은 몰라도 국영수는 잘해야 해. 국어는 엄마가 가르치고,
영어는 옆 학원 원장님이 가르치고, 수학은 아빠가 가르치는데?




 전편에서 이야기했지만, 부모님은 내가 어려서부터 학원을 하셨다. 지금은 두 분 다 나이가 있으신지라 몸이 편하기 위해 집에서 학원을 하시지만 -참고로 집에서 학원 하는 게 엄청 불편하다. 이는 나중에 내가 독립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자세한 건 추후 기술하겠다- , 처음에는 남들처럼 건물 한 층을 빌려 학원을 하셨었다.


 첫 학원 장소는 한 층에 학원이 세 개나 들어가 있는 기이한 구조였는데, 한 층에 넓은 터 -이를테면 좀 넓은 동네 PC방 사이즈만 한- 가 있었고, 그 넓은 터를 어머니의 국어/논술 학원, 아버지의 수학 학원, 그리고 어머니가 학원 일을 하시며 알게 된 분의 영어 학원이 나누어 쓰는 구조였다.


예전에 학원이 있던 건물 전경. 지금도 학원이 참 많구나.



 어쨌든 한 층에서 주요 과목이었던 국영수를 해결할 수 있으니 학원은 동네에서 깨나 인기가 많게 되었고, 자연스레 학교 동급생들과도 학원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이 학원을 한다는 소식이 돌자 학교에서는 '부모님의 학원 빨을 받아서 공부를 잘한다' 등의 여론이 돌기 시작했는데,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학교가 끝나면 항상 학원으로 달려가서 학원 문 닫는 시간까지 부모님과 학원 선생님들의 집중 서포팅을 받으며 공부했었으니!




 부모님께서 나를 공부시키는 방식은 이랬다. 우선 시험 일정별로 나름의 타임라인을 세운다. 그리고 해당 과목의 교과서 및 참고서 위주로 달달 풀게 해서 기초를 익히게 한 뒤, 아이스크림이나 족보닷컴 같은 기출문제 사이트에서 기출문제를 한 박스씩 -과장이 아니라 정말 A4용지 박스 사이즈로 한 박스씩 뽑아다 주셨다- 준다. 그러면 나는 밤늦게까지 그 문제들을 다 풀어내고, 부모님이나 학원 선생님께서는 그것들을 채점해주시고, 나는 다시 오답들을 수정해서 제출하고, 다시 채점하고.


 이 방식이 중학생 때까지는 나름 잘 먹혔었다. 항상 전교 5%권 안에는 들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재능이 없는 사람이 노력을 해서 올라갈 수 있는 최대의 등수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거짓말같이 성적이 말 그대로 '개박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노력만으로는 안될 때가 많지.





 고등학교 입학하고 첫 중간고사였다. 내가 입학한 학교는 동네에서 공부깨나 하기로 한 사람들이 모인 인문계 학교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내 성적이 상위권에 랭크될 것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결과는 '부모님 생각 외로' 처참했다. '평균 91점'과 '상위 30%'. 내가 지금까지 받아온 적이 없었던 성적표에 아버지께서는 크게 충격을 받으셨는지 집안 기물과 내 몸뚱이를 박살내기 시작하셨다. -이때 어머니가 나를 폭행하는 아버지를 말리자 '이게 폭력 같아? 진짜 폭력이 뭔지 보여줘?' 하며 어머니가 앉아있던 자리의 뒷 유리를 야구배트로 깨부수는 장면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다-


 그렇게 한바탕 폭풍이 일고 나서 부모님께서는 본인들의 교육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공부 메커니즘에 변화를 주셨다. 공부 시간을 대폭 늘리는 방향으로. 기존 공부 시간이 시험 2주 전에 한정하여 하교 시간부터 새벽 1시 정도 까지였다면, 기존 공부 시간은 기본이 되었고 시험 한 달 전부터는 하루에 한두 시간만 취침할 수 있으며 부모님께서 불침번 돌아가듯이 공부하는 내 옆자리를 몽둥이 하나 들고 -졸거나 틀린 문제를 또 틀리면 후 드려 패고자 하는 용도였다- 지키며 있는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본인들도 피곤하셨을 텐데 왜 그런 공부 방식을 고수하셨는지..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면, 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때는 공부가 너무 하기 싫어 가출을 감행한 적도 있었다. -이는 추후에 기술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바꾼 공부 방법도 무작정 따르고 보았는데, 이유인즉슨 나의 성적은 곧 가정의 행복이었고, 가정이 행복하다는 것은 더 이상 내가 맞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고, 그렇게 되면 그나마 좀 살만 해질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공부 시간 좀 늘린다고 원래 공부머리 없는 사람이 어떻게 성적이 잘 나오겠는가. 방법을 바꾸자 오히려 내 성적은 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동시에 집안의 분위기도 비례하여 나락으로 떨어졌었다. 그렇게 2년을 그 개고생을 하고 나니 부모님께서 먼저 나의 공부를 포기하시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상에,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고 학교에서 엎드려 자도 되는 것이 얼마나 달콤하던지!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공부와 손절을 쳤다.


고1 2학기 중간고사 시험 성적인데, 이전 성적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개박살' 이 난 모습이다. 이 이후 성적은 더 '개박살'이 났다.





 군대 전역을 하고 처음으로 부모님과의 술자리를 가졌었다. 뭐 대단한 말을 하려고 자리를 가졌던 건 아니었고 예의상 가졌던 자리였는데, 부모님께서 먼저 중/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꺼내며 '그때는 우리가 잘못했다. 네가 첫아들이라 우리가 부족한 게 많았다'라고 하셨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마치 온탕과 냉탕을 1초에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는 듯한 감정이 드는 것이.


 시간이 좀 지나고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니 '과연 무엇이 부모님에게 나를 과하게 공부시키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마 부모님께서도 주변에서 압박을 깨나 받으셨을 것이다. 학원 집 자식이 공부를 잘해야 '이 집 공부 잘하네~' 하는 소문이 돌아 동네 평판이 좋아질 것이고, 이는 곧 가정의 생계로 이어질 테니. 어찌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나 같은 나부랭이가 이해하겠는가?


 다만 나는 그 이후로 자식을 낳는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로 '중학교 까지만 문제없이 졸업하고 공부는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라. 그것이 음악이던, 게임이던. 네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해라.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네가 책임질 수 있으면 좋겠다' 정도가 버킷리스트에 올라 있다. 뭐, 내가 고통스러웠던 건 변함이 없으니!


 물론 핏줄은 속이지 못한다니 직접 자식을 키우다 보면 똑같이 될지, 다른 길을 걸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직접 억지로 하는 공부의 고통을 겪었으니 이를 반면교사 삼아 나보다는 더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낸 자식을 키워 낼 수 있지 않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실제로 받은 질의응답


Q(나). (영어학원 집 딸에게) 야, 너는 영어학원 딸내민데 왜 영어 성적이 그 모양이냐?

A. ㅋㅋ 지는.



 

3편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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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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