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혜성 관측기
- 새로운 혜성의 등장 C/2020 F3 NEOWISE
지난 4월 대혜성으로 예고됐던 아틀라스 혜성은 기대와는 다르게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말 그대로 혜성은 부셔져버렸고 맨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밝기로 어두워졌다. 하지만 또 다른 혜성이 태양계로 찾아오고 있었다. 부셔진 아틀라스 혜성 때문에 조심스러웠던지 혜성 관측자들도 새롭게 발견된 혜성에 대해서는 기대에 찬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혜성은 태양계 외곽에서부터 출발해 태양을 한번 휘감아 돈 후, 다시 태양계 먼 곳으로 떠나간다. 혜성은 행성에 부딫혀 사라지기도 하며 스스로 회전하는 자전운동에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부셔진다. 또한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조석력 때문에 산산히 부셔진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수의 혜성은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체 사라지곤 한다. 지난 4월의 혜성처럼 말이다.
새롭게 발견된 혜성의 이름은 C/2020 F3 NEOWISE로 명명되었다. 새롭게 발견된 혜성도 지구와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부셔질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날이 갈수록 혜성은 밝아졌고, 하루종일 태양을 관찰하는 태양관측 망원경에 꼬리를 만들며 태양을 한바퀴 돌아 빠져나오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태양의 중력을 견디며 온전한 모습으로 태양을 한바퀴 돌게 된 것이다! 천체관측자들은 그런 혜성의 모습에 환호하였고 해외의 천체사진 커뮤니티에는 긴꼬리를 휘날리는 혜성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시작하였다.
4월의 혜성의 아쉬움으로 이번 혜성만큼은 반드시 사진으로 담으리라 결심했다. 혜성이 이제 막 태양을 돌아섰기에 관측을 위해서는 새벽 시간 해 뜨기 전, 낮은 고도에서 볼 수 있었다. 혜성을 보기 위해서 동쪽 하늘이 탁 트인 곳을 찾았다. 하늘이 탁 트인 곳이라면 역시 바다. 일출을 볼 수 있는 바닷가로 관측을 하러 가기로 결정했다. 사실, 바다는 기상이 자주 바뀌고 해무가 자주 발생해 천체관측하기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서해에서의 수년간 경험한 바다낚시, 배낚시 생활로 이번 관측날의 새벽은 날씨가 쾌청함을 직감할 수 있었다.
바다로 관측하기로 한 후, 어느 바다로 가야 할지 고민이었다. 서해의 날씨는 경험으로 직감할 수 있지만 해가 뜨는 동해의 날씨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날씨가 맑을게 확실한 서해로 떠났다. 해가 뜨는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서해라니! 사실, 서해에서도 만이 깊숙히 발달한 곳에서는 일출을 볼 수 있다.
그렇게 결정된 곳은 바로 아산만을 끼고 있는 충남 당진의 왜목마을. 함께 천체사진을 촬영하는 친구들과 왜목마을로 출발했다. 도착하니 수많은 텐트와 차들이 즐비했다. 더위를 피해서 온 피서객들이다. 왜목마을 해변을 한바퀴 돌아보았지만 혜성을 관측하러 온 사람은 우리 팀 뿐이었다. 왜목마을 해변 구석진 곳에 차를 주차하고 장비를 꺼내기 시작했다. 유명 관광지 답게 해변은 강한 조명으로 밝았지만 도심지보단 확연히 적은 불빛으로 혜성의 밝기 정도는 충분히 관측 가능한 장소였다. 다만, 장비를 하나씩 설치하고 있으니 수많은 손님이 우리 팀을 찾아왔다. 망원경을 설치하는 모습에 천체관측을 하느냐고 묻는 손님이라면 잰 척 좀 하면서 반갑게 혜성 보러왔다고 이야기하겠지만 다짜고짜 우리에게 입을 가져다 대는 굉장히 버릇없는 손님이었다. 바로 모기!
거슬리는 날개짓 소리와 빼곡히 내려앉아 다리를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수백, 수천 마리의 모기가 달려들고 있었고 다리에 손을 댈 때마다 그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하지만 그들의 충해전술에 피는 족족 빨리고 있었다. 나중에는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 였으니 굉장히 많은 모기가 다녀갔음을 알 수 있었다. 모기를 200마리쯤 잡고, 400방쯤 모기에 뜯기니 장비 설치가 끝났다. 600방쯤 물리며 촬영 준비를 마치고 망원경을 혜성으로 향했다. 망원경을 설치하기 전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었지만 모기에게 정신없이 시달리며 설치를 마치니 하늘에는 구름이 드문히 덮혀 있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혜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위치엔 구름 한 덩어리가 지나고 있었다. 해가 뜨면 혜성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간은 많지 않았다. 모기는 계속 우리의 피를 탐했고 우리는 자리를 뜨지 못한체 구름이 서둘러 지나가기를 바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구름이 하나씩 깨지며 하늘에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혜성이 있을만한 위치로 망원경을 다시 향한 후, 촬영을 시작했다. 10초의 노출이 끝나고 노트북이 보여준 화면엔 구름 사이로 혜성이 빼꼼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전율이 일고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 순간만큼은 모기도 피 마시는 것을 중단하고 혜성을 보고 있었는지 가려움도 몰랐었다.
맨눈으로도 혜성이 보일까 싶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모기가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손을 들어 코를 때린다. 너무 아프다. 눈 앞에 별이 보였다. 바다 위로 얇은 밝음과 몇 조각구름이 깔린 가운데 밝은 별들이 빛났다. 수평으로 깔린 구름 위로 수직으로 솟아오른 긴 구름이 보였다. 눈을 꿈뻑였다. 잘못 보았나? 피를 너무 빨려서 헛것이 보이나? 물을 마시고 다시 하늘을 본다. 헛것이 아니었다. 수직으로 길게 솟은 구름이
아니 혜성의 꼬리가 보인다. 박명에 수직으로 빛나는 혜성의 꼬리. 마치 수평선으로 곤두박질칠듯한 모습이었다. '콰콰ㅘㅘ콰콰콰콰쾈콰콰쾈' 소리가 들릴 리 없건만 중력 방향으로 향한 혜성의 모습은 물줄기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소리를 내는 듯 했다.
혜성의 꼬리를 옛날 사람들은 마치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거 같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번 C/2020 F3 NEOWISE 혜성은 쏟아지는 폭포 같았다. 베네수엘라의 천사폭포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 했다. 혜성의 감동에 잠시 모기를 잊었다. 어느새 1600방 뜯겨있었다. 옷을 뚫고 등까지 물려있었다. 몸을 털어내며 촬영을 걸었다. 모기를 쫓느라 집중을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혜성 촬영을 시작했다. 6400방쯤 물렸을 때, 하늘은 더 파래지며 보이는 것은 금성뿐이었다. 장비를 정리하며 맨눈으로 본 혜성의 감동을 곱씹는다. 12800방쯤 모기에 물렸을 때, 우리는 장비를 모두 철수하고 가져간 라면을 끓여 먹으며 혜성의 감동을 공유했다. 모기 14400방쯤 물린 것은 혜성의 감동으로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혜성 촬영원정대와 헤어진 후, 집에와 촬영본을 확인해보았다. 급히 촬영한 혜성의 모습은 살짝 부어있었다. 망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초점에 별상과 혜성이 깔끔하게 나오지 못했다. 다리에 수두처럼 번진 모기물린 자국에 약을 바르며 생각했다. 망할 모기녀석들.
혜성 사진 촬영정보
촬영날짜 : 2020/07/11/
촬영시간 : 새벽 4시 50분
촬영렌즈 : WilliamOptics RedCat51
촬영카메라 : ZWO ASI1600MM-Cool Pro
가대 : Celestron Advanced VX
필터 : ZWO LRGB
노출시간 : 총 노출시간 1분 10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