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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이상 Mar 10. 2021

2020년 4월 7일

아틀라스 혜성 관측기

사진 중앙 붉은 별 위에 녹색으로 빛나는 C/2019 Y5 혜성. 촬영 중, 안개가 들어와 얼룩덜룩한 사진이 되었다.


  얼마 전부터 난리다. 맨눈으로 보이는 혜성이 찾아온다는 소식에 내 주변의 천체관측가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 얘기뿐이다. '몇 년 만에 찾아온 밝은 혜성이다. 이번 혜성은 유례없는 대 혜성이 될 것이다. 가장 밝을 때는 태양만큼이나 밝아질 것이다.' 천체관측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초심자들은 첫 혜성 관측에 들떠서, 오래된 천문인들은 과거의 대 혜성을 추억하며 이번 혜성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혜성 출현 소식에 별다른 감흥이 없다. 인적이 없는 오지를 찾아가며 망원경을 설치하고 별을 관측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으로서 분명, 혜성의 출현은 특별할 텐데 이상하게 별 감흥이 없다.


 내게 천체관측은 정적인 취미 활동이다. 도시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 오지로 찾아가 인근의 작은 마을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망원경을 설치하고 밤을 기다린다. 해가 지고 박명이 사라지면 붉은 조명과 성도 그리고 별빛에 의지해서 천체를 찾는다. 성도를 찾아가며 보고자 하는 천체를 망원경으로 정확하게 겨누고 접안렌즈에 눈을 댄다. 첫 번째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주변의 별을 하나씩 훑으며 정확한 위치임을 다시 확인한다. 숨소리가 방해되어 호흡을 참고 다시 접안렌즈를 들여다본다. 그렇게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집중하면 접안렌즈 속 별이 조금씩 밝아진다. 천체가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신기한 일이다. 분명히 처음과 같은, 하늘의 한 곳을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았던 천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은하라면 나선 팔이 보이고, 성운이라면 먼지 띠가, 성단이라면 별이 하나씩 떨어져 나온다. 과거의 우주 어딘 가에 숨겨진 빛을, 그 순간 나는 망원경을 통해서 보게 된다. 천체관측은 과거에 출발한 빛을 발견하는 취미이다. 그 발견을 위해 나는 조용한 장소에서 집중을 필요로 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있어서 천체관측은 정적인 취미 활동이다.


 혜성은 등장부터 요란하다. 맨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 혜성일지라도 적당히 밝다 싶으면 뉴스에서 '우주쇼'라며 보도를 낸다. 여러 모임에서는 혜성 이야기가 하루에도 몇 번씩 언급된다. 내 주변의 천체관측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한 마디씩 말을 건다. 천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천체관측을 취미로 가졌기 때문에 다들 내게 말 한 번쯤 건네는 거겠지만 그런 상황이 혜성은 내게 소란스러운 이미지로 새겨진다. 정적인 내 취미와 매치가 되지 않기 때문인지 나는 혜성에 대해 별 감흥이 생기질 않았다.


 이번 C/2019 Atlas Y4 혜성도 마찬가지다. 그저, 혜성이 오고 있구나. 천체관측을 즐기는 친구가 혜성 사진을 찍었다며 보여주었을 때도 '잘 찍었네! ' 그뿐이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었다. 하지만 이 혜성은 그냥 지구에 찾아오지 않았다. 내게 숙제와 함께 찾아왔다.


"혜성 좀 찍어주세요."

"네?"

"이번에 오는 혜성이요. 낮에 보일 정도로 밝아진다는데, 멀리 있을 때부터 찍어서 밝아지는 모습까지 찍으면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같이 일하는 동료가 혜성 사진을 찍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맞는 얘기다. 천문학 콘텐츠로 먹고사는 우리 회사 특성상 이런 천문현상은 회사의 홍보 효과를 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내가 찍어야 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 난 혜성 사진 찍어본 적 없는데요? "

"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처음 찍어보면 되죠^^ 부탁드려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뭐든지 할게요 "


마음 같아 선 그럼 저 대신 찍어 오시면 되겠네요. 그게 도와줄 수 있는 건데...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나는 소심하니까 다시 넣어두었다. 몇 번의 기획 회의를 거치고 나는 장비를 챙겨 관측을 나섰다. 천체관측을 취미로써 혼자 즐긴다면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 타협을 보면 되지만 일로써는 그렇지 않음을 새삼 깨달으며 무거운 마음으로 길에 올랐다.


 2시간 정도 차를 몰아 관측지에 도착했다. 관측지라고 해도 아무것도 없는 공터이다. 우연한 기회에 발굴하여 주변에 알리지 않고 혼자 몇 년째 오는 곳으로 인적이 없는 곳이다. 이따금 멀리서 야생동물을 쫓는 폭약 소리와 성난 고라니 소리만 들릴 뿐, 고요한 관측지이다.

 

 도착과 동시에 천체망원경을 설치한다. 나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망원경을 설치하는 동안의 마음가짐은 종교인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라고 혼자 생각해본 적이 있다. 최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신중하게 망원경을 설치한다. 수준기를 이용해 삼각대의 수평을 맞히고 가대를 올린다. 가대의 고도조절 나사와 방위각 조절 나사를 조절하여 적경 회전축을 북극성으로 향하게 한다. 가대 위에 망원경과 카메라를 올리고 무게추를 이용해 무게 중심을 맞춘다. 일련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해가 지기 전까지 노트북을 이용해 현재 혜성의 위치를 확인해본다. 큰곰자리를 지나 기린자리를 지나고 있다. 다행히 성도에 표시된 혜성의 위치를 보니 찾기는 어렵지 않을 듯하다. 혜성은 주변 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밝은 별 근처를 지나고 있다.

                                                  

 확실한 기준 별이 있고 나는 그 주변을 촬영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어렵지 않게 촬영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에 따르면 현재 혜성은 8등급의 밝기를 가진다.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망원경을 이용해야만 한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별이 빛나기 시작했다. 북극성을 이용해서 가대의 극축을 하늘의 회전축과 정렬한다. 이 과정을 극축 정렬이라고 한다. 극축정렬을 해야만 움직이는 하늘을 촬영할 수 있다.

 

 극축정렬을 마치고 마차부자리와 북두칠성 사이의 어두운 부분을 향한다. 기린자리가 있는 곳이다. 기린자리를 특별히 밝은 별이 있지 않기 때문에 밤하늘이 익숙지 않은 사람은 존재조차 모르는 별자리이다. 성도를 통해 확인했던 밝은 별을 망원경을 통해 찾아본다. 시야 안에 특징적으로 밝은 별 하나와 그 주변 밝기 비슷한 네 개의 별이 사다리꼴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찾기 시작한다. 이제껏 천체관측을 다니며 기린자리를 이렇게 샅샅이 훑었던 적이 없었다. 기린자리에는 특별한 관측 대상이 없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 정도만 있을까. 평소 관측이라면 망원경을 향할 일이 없는 별자리인데, 혜성 때문에 처음으로 기린자리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혜성은 어렵지 않게 발견되었다. 망원경 시야 내에 밝은 별 하나, 그리고 사다리꼴의 특징적인 별의 모임. 그 사이에 있는 뿌연 빛 덩어리. 한눈에 혜성임을 알 수 있었다. 메시에 목록으로 유명한 샤를 메시에는 혜성을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사실 메시에 목록 자체가 혜성과 비슷한 천체들을 정리하면서 만든 목록이다. 즉, 혜성은 성운, 성단, 은하처럼 뿌옇게 빛나는, 별과는 다른 천체로 보인다는 뜻이다. 혜성을 찾기까지 고생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했는데 기우였다.


 혜성은 마치 저배율로 본 은하의 모습 같았다. 밝은 중심부와 희미하게 늘어진 부분이 한눈에 보였다. 만약, 천체관측의 경험이 적은 사람이라면 놓치고 지나쳤을 것이다. 혜성을 확인했으니 카메라를 이용해서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했다.


 혜성은 일반 천체 사진과는 다르게 짧은 노출로 여러 장 촬영한다. 왜냐하면 하룻밤 사이에는 움직이지 않는 별과 다르게 혜성은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공위성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냐면 그건 또 아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가며 어두운 별 사이를 지나간다. 성운성단 사진처럼 긴 시간의 노출은 혜성의 모습을 길쭉하게 나오게 할 것이다. 20여 초의 노출시간으로 30여 장 자동 촬영을 카메라에 걸어 두었다.


 혜성은 언론과 주변인들의 반응만큼 소란스럽지 않았다. 아주 밝지도 않고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별 사이를 운행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 혜성의 이미지와 달랐다. 여전히 관측지는 고요했고 혜성을 찾기 위해 나는 숨을 참아가며 망원경을 들여다봤다. 혜성의 꼬리로 추정되는 빛 번짐은 망원경 속에서 가만히 빛나고 있었다.

 혜성은 태양계를 아주 빠르게, 자기가 가진 물질을 흩뿌리며 달리고 있을 것이다.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꽤나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관측지에서 보이는 혜성은 조용하다. 맹렬히 움직이는 혜성을 상상하며 촬영되고 있는 혜성을 보고 있으니 이상한 기분이다.


 혜성에 대한 감상이 바뀌며 촬영이 잘 되고 있나 다시 카메라를 들여다본다. 아뿔싸, 어두워야 할 밤하늘이 밝아졌다. 배경 하늘이 지저분해졌다. 수증기가 들어와 얇은 안개를 만들었나 보다. 달까지 있는 하늘이라 분명 더 두드러지게 밝아진 것이리라.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무언가 하늘에 끼기 시작했다. 남은 촬영 매수를 채우고 전처리를 위한 사진을 몇 장 서둘러 얻은 후, 장비를 철수했다. 설치할 땐 신중하게 하지만 철수는 번개처럼 한다. 빠르게 퇴근하고 픈 마음이 혜성에 대한 감상을 앞서는 순간이다. 내가 다녀간 흔적을 남기진 않았나 주변을 점검하고 귀갓길에 오른다.


 집에 돌아와 찍은 영상을 처리해본다. 흑백으로 찍힌 영상을 하나씩 확인하니 분명 혜성이다. 사진에 색을 입혀보니 두드러진다. 주변 별과는 확연히 다른 녹색 천체. 희미한 꼬리를 가진 혜성이 눈에 띈다. 아직 멀리 있고 밝지 않지만 분명한 혜성이다. 천체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래로, 첫 번째 혜성 사진을 만들게 됐다. 하지만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들어온 안개로 배경 하늘이 얼룩덜룩이다. 썩 예쁜 사진이 되지는 못했다. 첫 혜성 관측에서 그렇게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진 못했지만 처음 찍어본 혜성 사진에 의의를 둬본다. 다음 관측 때는 달이 없는 날, 촬영매수를 좀 더 늘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좀 더 밝아진 혜성의 모습을 담아 보리다.


+.

2020년 4월 초에 작성한 아틀라스 혜성 관측기. 이후 한번 더 혜성 촬영을 다녀왔지만 잇따른 날씨의 협조 실패와 산산조각 난 혜성으로 더 이상의 아틀라스 혜성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하지만 7월에 찾아온 혜성인 니오와이즈 덕분에 제대로 된 혜성 관측을 할 수 있게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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