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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이상 Mar 10. 2021

아마추어 천체관측의 시작

- 16년의 기억

13년도에 대학원 졸업을 위해서 애리조나로 관측하러 다녀온 후에는 특별히 별 볼 일이 없었다. 근근이 수도권 주변의 천문대나 찾아다니면서 망원경으로 특정 천체를 관측하는 정도였다. 물리적인 시간도, 심적인 여유도 없었거니와 미국에서 보았던 쏟아지는 별이 아니라면 큰 감흥이 느껴질 거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판교 어린이천문대에서 일하는 친구를 따라서 국내 최고의 관측지라 불리는 곳에 가게 됐다. 정말 뜬금없이 출발한 번개 관측이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별은 내게 여간 섭섭해하고 있었다. 달 없는 밤은 이제 막 지평선에 떠오르는 은하수가 시야를 압도하도록 검게 빛났다.


거문고자리 아래로 여름철 은하수가 떠오르고 있다.


 긴 시간 동안 운전해준 친구의 노고에 대해 별들은 충분히 보답해주는 하늘이었다. 관측지가 고도가 높아서 그랬던지, 일기도에서는 '구름 가득, 미세먼지 가득'을 표시하고 있었지만, 우리의 하늘은 정말 티 없이 맑았다. 이따금 관측자들이 많이 몰려서 편하게 관측하는 날이 드물다는 곳이었지만, 일기도는 흐림을 표시하고 있었고, 관측하러 온 사람들은 우리들뿐이었다. 운전해 온 친구는 곧장 망원경과 가대를 설치하며 확대촬영 준비에 분주했고, 같이 온 선배는 북천일주 사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분 같아서는 바닥에 누워서 떨어지는 별똥별들이나 세면서 한량으로 있고 싶었지만 나도 준비해야 할 게 있었기에, 곧장 빌려온 카메라와 삼각대를 설치하고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며 구도를 잡아보았다.



전갈자리와 화성. 사진 좌측으로 은하수 팽대부가 보인다.


 시기적절하게도 남쪽 하늘에는 전갈자리와 함께 화성이 올라오고 있었다.
 "화성은 겉보기에도 굉장히 붉게 보이는 행성이다. 하지만 화성이 전갈자리를 지날 때면 그 붉은빛을 잃게 된다. 전갈자리의 가장 밝은 별의 이름은 안타레스이다. 안타레스는 실제로도 거대하고 아주 붉은 별이다. 화성은 이 별 옆을 지날 때면 그 붉음을 안타레스에 뺏긴 듯이 보인다. 그래서 이 안타레스라는 별의 이름이 'Anti-Ares' 가 변형된 것이다. 화성의 붉은 기운을 빼앗는다고 말이다."
 언젠가 별에 관한 책을 쓰게 된다면 딱, 이 정도로 안타레스와 화성과의 관계에 관해 설명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도 난생처음 보는 두 앙숙의 조우를 즐기며 사진을 찍어 보았다. 난데없는 토성이 껴들긴 했지만, 우주의 운행에 있어서 불평해 뭐라 하겠는가. 그저 내 행운이 아님을 받아들일 뿐.



 이것저것 사진을 찍고 있다 보니 확대촬영을 준비하던 친구가 이제 본격적으로 촬영에 임하겠다며 조심해달라는 당부를 했다. 신나게 손전등을 키고 돌아다니며 얘기하고 떠들던 우리였지만, 역시 본격적인 촬영과 관측이 시작되니 카메라의 셔터 소리와 이따금 바람소리, 산짐승의 기척만이 들려왔다. 다들 각자의 세계로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노출은 잘되고 있는지, 혹여 가대가 추적을 잘못하고 있는지, 아니면 지금 등 뒤로 멧돼지의 눈이 빛나고 있지는 않을지...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걱정을 하는 시간이 흘렀다.


박명이 시작된 하늘과 북두칠성


 얇은 빛이 능선 위에 깔리자, 금방 은하수가 모습을 감추었고 들고 간 카메라도 배터리 잔량을 감추었다. 확대 촬영을 하던 친구도 배경 하늘이 너무 밝아져 더 찍을 수 없을 거 같다며 망원경과 카메라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참 신기했던 게 깊은 밤에는 몇 종류의 새소리뿐이 안 들렸지만 밝아옴에 따라 여러 새소리가 들려왔다. 특히 참새 소리 같은 '짹짹'은 어디에서나 들림을 깨달았다. 미국에 관측 갔을 때의 첫날 아침도 '짹짹' 이었다. 미국의 참새는 좀 다르게 지저귈 줄 알았는데, 같음에 실소했던 기억이 나며 장비들을 정리하는데 한껏 열을 올렸다. 깊었던 어둠은 장비들의 정리가 끝나자 금방 얕아져버렸고 우리는 다시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오는 도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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