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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Nov 16. 2022

뒤통수를 맞았을 땐 돈가스 앞으로 가자

지난 주였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공사 건의 현장을 다녀올 일이 있었다. 산업단지 부지 내 우리 회사 설비를 설치하는 방법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협의가 필요한 건이었다. 산업단지 사업시행자 담당자에게 연락을 드려 현장에서 만날 날짜와 시간을 약속 잡았다. 나는 담당자에게 목요일 10시에 뵙겠습니다. 말했고, 그분 역시 목요일 10시를 복명복창했다.


현장에서 보기로 약속한 당일. 회사에서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현장에 도착했다. 미세먼지가 낀 찌뿌둥한 하늘. 11월 초순이지만 그늘 하나 없는 현장에선 외투를 입지 않아도 됐다. 우리 회사 측 협력업체 부장님께선 미리 현장에 와 계셨다. 함께 현장을 보며 사업시행자 담당자가 오기까지 어떻게 할지 방안을 강구해보았다. 시간이 제법 흘렀다. 시계를 보니 10시 20분이 다됐다. 차가 밀리는 건가?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오고 계시냐 내가 묻자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대답한다.


“아 오늘이었어요? 수요일 10 시인 줄 알고 어제 나갔었죠. 지금 가면 한 시간 넘게 걸릴 것 같은데…”


한 방 먹었다. 이 사람은 날 먹이기로 작정한 게 느껴졌다. 수요일에 나왔다는 건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이었다. 수요일에 그는 내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당당한 그의 대답에 나도 잠시 뜸을 들이고서 대답했다. “그럼 어떡하죠. 저희 오늘 얘기해서 결론 지어야 하는데.” 담당자는 현장 근처의 다른 업체 직원에게 연락해보라며 배구 국가대표급으로 책임을 토스했다. 전화를 끊고서야 나는 된소리가 많이 쓰인 단어를 내뱉었다.


결국 현장 근처에 있던 다른 업체 직원이 급하게 나왔다. 그분은 책임자가 아니었기에 결론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허한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고선 그 분과 헤어졌다. 결국 난 아무런 결론도 짓지 못한 채 왕복 1시간 20분 거리의 드라이브만 즐기게 된 처지로 남았다. 다 내 탓이라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날 바람 맞힌 담당자는 사실 나와 구면이다. 작년에도 이 공사 건으로 한 번 대차게 싸운 적이 있었다. 업무에서 감정은 덜어내자는 모토를 무시한 채 이 사람과는 날 선 대화를 주고받았었다. 주고받는 공문 상의 문구를 넣느냐 빼느냐를 가지고서 서로를 들들 볶았다. 그때 당시 나누었던 문자내역을 보면 거즌 원수지간이다 싶을 정도다.


결국 그때의 앙금이 1년 넘게 영글어서 내게 돌아온 셈이다. 약속을 잡기 위해 그 사람의 연락처를 누르는 내 손가락에도 주저함이 많았다. 잊고 있던 악연을 다시 만난다는 게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였으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평온한 목소리로 연락했지만 내 마음속 어딘가에선 부글부글 끓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대차게 바람을 맞았지만 기분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욕 한번 하고서 다 내 탓이오 모드를 시전 하니 금세 마음이 펴졌다. 이내 허기가 올라왔다. 기왕 허탕 친 거, 밥이라도 제대로 먹자는 마음에 곧장 차를 끌고 현장 근처의 돈가스 맛집으로 향했다. 1년 넘게 이 공사를 담당하면서 가끔 들렀던 곳인데, 11시 20분쯤엔 가야 자리가 있는 맛집이다.


구겨진 마음과 헛헛한 몸을 달래기 위해 치즈 카츠를 시켰다. 얇게 저민 촉촉한 등심의 비호를 받은 풍미 가득한 모짜렐라 치즈는 이날도 어김없이 최고조의 맛을 이루어냈다. 돈가스를 그 어느 때보다 천천히 씹으며 맛을 음미했다. 돈가스를 먹기 불과 1시간 전 받았던 스트레스는 돈가스를 베어 물고 미소된장국을 후룩거리다 보니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는 게 별 거 없구나 싶었다. 인생의 대부분은 결국 내 탓이고, 돈가스는 질리지 않는 인생의 진리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던 어느 미세먼지 가득한 날의 출장이었다.

이 날 먹었던 돈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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