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후배의 심오한 질문
얼마 전 회사 후배에게서 카톡이 왔다.
'성님. 저도 이제 가보겠습니다.'
결연한 말투와 함께 모바일 청첩장이 날아왔다. 난 후배에게 짧은 축하를 건네고, 청첩장을 받기 위해 약속 날짜를 잡았다. 연락을 주고받고 3일 뒤 퇴근하고서 강남 모처의 초밥집으로 향했다. 내가 먼저 도착해 후배를 기다렸다. 메뉴판을 보는데 특선에 눈이 갔지만 내가 사는 게 아니니 얌전히 앉아있었다. 얼마 뒤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메뉴를 알고 있던 것인지 후배는 내게 특선을 미리 시켜놓으라 했다. 전화를 끊고 빠른 손놀림으로 터치스크린에서 메뉴를 시켰다.
주문한 요리가 나올 때쯤 후배가 도착했다. 서로 얼굴 본 지 2년 가까이 됐지만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 후배와는 지방에서 근무하던 시절 알게 된 사이다. 낯선 타지에서 일하는 동안 업무로 마주치다 연이 깊어졌고, 사석에서 만나 몇 차례 술을 마시며 친해졌다. 2년 전 내가 후배에게 청첩장을 줄 때 후배가 한 말이 생생하다.
'형이 결혼을 한다고? 대박.' 후배의 진심 어린 축하 덕분에 난 대박스런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청첩장을 받기 위한 약속 자리에선 으레 그러듯 주인공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신혼집, 신혼여행지, 연애기간, 사귀게 된 경로, 결혼을 결심한 계기 등등. 후배의 이야길 들어보니 직진남이었다. 후배는 광주 토박이다. 여자 친구 역시 광주에서 만났다. 연애하던 중 여자 친구가 직장 문제로 서울로 떠났는데, 여자 친구를 따라 자기도 서울로 올라왔다 했다. 올라올 때 이 여자를 꼭 잡겠다는 의지만으로 연고 하나 없는 서울에 온 것이다. 그렇게 후배는 3년여의 불같은 연애 끝에 결혼에 이르렀다.
자신의 연애스토리를 웃으며 이야기를 털어놓던 후배는 금세 얼굴이 지점토에 조각칼로 웃음을 그어놓은 듯 회색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알고 봤더니 결혼을 한 달 정도 앞둔 후배는 얼마 전 신혼집으로 이사를 했고, 청첩장 모임과 짐 정리가 겹치면서 매우 피곤한 상태였다.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자 후배는 심정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매일 저녁 쎄빠지게 이삿짐 정리를 하는 데 여자 친구는 거의 돕지 않는다고. 다른 집안일도 거의 다 대부분 자기가 하고 있다고. 후배의 말을 듣고 힘들지 않냐는 내 물음에 '괜찮다'라고 했다. 적응해가고 있다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형. 이게 진짜 행복인 거죠?'
후배의 질문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 지었다. 난 후배에게 집안일은 부부끼리 같이 살면서 조율하면 되는 것이니 괜찮다고 했다. 아직은 처음이라 그럴 수 있다고. 나는 결혼하며 얻는 장점을 설파했고 후배는 맞장구를 쳤다. 실없는 농담이나 주고받던 우리가 이제는 유부남이 돼서 건설적인 이야기를 한다면서 소주를 들이켰다. 왠지 모르게 씁쓸해 보이는 후배 앞에서 난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로켓단 행세를 해야만 했다.
대체 결혼생활의 정체가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유부 월드의 파괴를 막기 위해, 유부 월드의 평화를 위해 결혼을 앞둔 후배에겐 밝은 앞날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주었다.
초밥 특선과 소주 1병과 후배의 결혼 성사 스토리를 한창 주고받고선 근처로 간단히 맥주를 마시러 2차를 갔다. 피로가 극에 달했는지 후배의 눈꺼풀 위에 돌덩이라도 앉은 듯했다. 안 되겠다 싶어 2차는 빠르게 마무리하고 나왔다. 술집 근처 편의점에서 홍삼과 숙취해소제를 사서 후배의 손에 쥐어주고 헤어졌다.
진짜 행복이라는 실체는 결혼을 하던 안 하던 허상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다. 마크 트웨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 자신의 행복을 해부하는 것은 개구리를 해부하는 것과 비슷할지 모른다. 둘 다 해부 중에 죽어가기 때문이다. '진짜 행복이란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 질문을 나눌 시간에 아내와 야식으로 무얼 먹을지 고민하고, 주말에는 어딜 놀러갈 지 생각하는게 훨씬 나은 것 같다.
결혼하고서 후배가 맞닥뜨릴 다이내믹한 일들에 대해선 스포일러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나 역시 이제 막 유부월드의 서막이 펼쳐진 상황이니까.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투성인 세상에서, 해봐도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은 게 결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