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산책 Oct 15. 2020

신랑의 엄마 같은 사랑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맛

입을 벌리고 천장을 본다. 달콤하고 물컹한 것이 입안 가득 들어온다. 홍시다.     

홍시를 먹기 전 신랑은 손을 깨끗이 씻고, 접시 위에 먹기 좋은 크기로 떼어낸다. 그리고 그 접시를 들고 다니며 가족들을 먹인다. 고체도 액체도 아닌 홍시를 받아먹기 위해서는 고개를 들고 입을 벌려야 한다. 마치 어미새가 주는 먹이를 아기새가 받아먹듯이.

아이들과 내가 함께 그러고 있을 때는 그 모습이 참 볼 만하다. 입을 벌리고 있으면서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다. 어렸을 때 엄마 말고 나를 이런 식으로 챙겨준 사람이 또 있을까? 그가 나와 아이들에게 사랑을 담아 한입 가득 홍시를 떼어준다.

입을 벌리고 온전히 받아먹는 가족들을 보는 일은 그를 즐겁게 한다.

그렇게 신랑은 나와 아이들을 먹인 후, 자신도 홍시를 맛본다. 홍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인데 그가 제일 나중에 먹는 것이다.     


이렇게 배려심이 넘치는 신랑과 달리 나는 맛있는 것도 공평하게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도 적용되는데 내가 먹는 양이 적기 때문에 양보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을 거라고 정당화한다. 나의 이런 성향 때문에 신랑이 양보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부모 둘 다 맛있는 것을 양보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좀 딱할 테니까?

특히 치킨을 먹을 때 신랑의 양보 미덕은 최대치가 된다. 아이들의 치킨 사랑을 말해 무엇할까? 그는 아이들의 손이 더 이상 치킨에 가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는다. 그렇다면 나는? 당연히 아이들과 함께 먹는다. 그러니 나와 다른 그의 ‘엄마 같은(?)’ 사랑에 내가 감동 받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진 나는 그의 희생에 보답해주고 싶어 집에 있는 여러 먹거리를 소개하고 데워주며 그의 앞에 내놓게 되는 것이다. 그가 주면 내가 받고, 내가 주면 그가 받으면서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물론 먹을 것은 그가 항상 먼저 준다.


식사 준비는 내 몫이지만 

“오늘 저녁은 뭐 먹지? 매일 그게 고민이야.”라고 말하면 그는

“고기 구워 먹을까?” 제안한다.

고기 굽는 일은 그가 전담하기 때문에 자신 있게 내 고민을 해결해주는 마법과 같다. 덕분에 아이들은 좋아하는 고기를 또(?) 먹게 된다.

나름 장인의 솜씨로 그가 고기를 구우면 나는 상추를 씻고, 쌈장 등 반찬을 준비한다. 그는 가장 먼저 익은 고기를 집게로 들어 공기 중에 휘휘 내두르고, 적당히 식힌 고기를 내 입에 넣어준다. (가끔 잊고 안 줄 때도 있는데 굉장히 서운하다. 그가 내 버릇을 잘못 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고기를 구울 때 가장 먼저 익은 고기는? 그것도 역시 내 입으로 들어간다. 같은 고기지만 맛이 다르다. 그가 먹여준 고기가 훨씬 맛있다.     


그가 주는 음식이 훨씬 맛있는 이유를 나는 안다. 홍시를 어미새처럼 먹여주고, 구운 고기를 휘휘 저어 식혀 먹여주는 행위, 그 자체가 맛있는 것이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맛이라고나 할까?     


엄마 같이(?) 챙겨주는 신랑이 참 좋다. (그래서 가끔 신랑도 내가 엄마처럼 챙겨주길 바라는 건가 보다.) 역시 사랑은 주고받아야 맛이다!


* 커버 이미지 출처: pixabay

작가의 이전글 신랑이 나를 구하러 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