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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산책 Oct 08. 2020

신랑이 나를 구하러 왔다

내가 의지하는 사람들

미술치료 연수를 받았다. 미술치료란 미술과 심리학의 결합으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나 생각을 미술 활동을 통해 표현하여 안도감과 감정의 정화를 경험하게 하는 치료법이다. 특히 말로 감정이나 경험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아동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출처: 다음 백과사전)     


표현한 활동을 소개해볼까 한다. 자신의 내면이 궁금한 분들은 글을 다 읽기 전에 순서에 맞게 따라 해 보셔도 좋겠다.

1. 8절 도화지를 준비하여 가로로 놓는다.

2. 구덩이를 그린다.

3. 구덩이 안에 나를 그린다.

4. 구덩이 주변에 나를 도와주러 온 사람들을 그린다.(※ 사람의 형태는 졸라맨도 괜찮다. 사람 수 제한도 없다.)

5. 사람을 다 그렸다면 사람들 머리 위에 누구인지 써본다. (※ 나와의 관계를 써도 좋고, 이름을 써도 좋다.)

6. 자, 이제 다 쓰셨다면 아래 글을 읽어보시라. 두둥!

※ 참고로 나는 표현활동 참여자일 뿐 전문가가 아님을 밝히는 바이다. 그저 재미로 보시돼 의미는 두지 마시길. 하지만 나는 안다. 의미가 두어 질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이 그림은 자신 주변에 있는 인적 자원을 알아보는 그림이다. 구덩이 왼쪽에 그린 사람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의지하는 사람(들), 오른쪽에 그린 사람은 나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라고 미술치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5명이 함께 연수를 받았는데 오직 내 그림만 나를 구하러 구덩이 속으로 신랑이 들어왔다. 그는 나를 목말을 태워 올려주고 아들이 내려주는 줄을 타고 올라올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그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니라고 말하면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읽고 신랑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감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미술치료이므로 애석하게도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이것은 반대로 내가 그를 얼마나 의지하고 있느냐를 보여준다. (미술치료 선생님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나 스스로 그렇게 의미를 부여한 뒤 퇴근 후 신랑을 보니 내가 이토록 그를 의지하는가 싶어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나 왜 이러니?)


나는 의무나 강요를 좋아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두며 서로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개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 점이 가족 중심의 신랑과 달라 가끔 의견 충돌이 있었는데 이제 보니 나는 겉으로만 독립을 외치고, 속으로는 신랑과 아이들에게 ‘의존’하고 있었던 것인가? (신랑을 구덩이 왼편, 아이 둘도 왼편에 그렸다.) 오른편에는 친정 부모님을 그렸다. 심지어 엄마는 무릎을 꿇고 구덩이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미술치료 선생님은 상담받고 있는 아이들의 그림도 예시 자료로 보여주었다. 구덩이 속을 물이나 가시로 채워 넣은 아이도 있었는데 물은 그림 치료에서 우울감을 나타낸다고 한다. 주변에 사람을 그리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 아이는 가족이 없는 아이로, 주변의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마음 상태였다. 또 소방관 아저씨만 그리거나 친구들만 그린 아이도 있었다.

미술치료 선생님은 집으로 돌아가 자녀들에게 그림을 그려보게 하는 것도 제안했는데 아이들 그림 속에 엄마나 아빠가 없다면 반성해볼 일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그릴 거라고 확신하지만 그려보라고 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대면할 자신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와 가장 가까운 나,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내가 나라고 알던 내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궁금하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주말에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신랑은 미술치료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며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이 둘 다 엄마, 아빠를 그렸지만 위치는 조금 달랐다. 부작용이 있었는데 딸 그림에는 오빠가 있고, 아들 그림에는 여동생이 없어서 딸이 상처를 받았다. 딸의 서운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후회가 되었다.

‘따로 해볼 걸 그랬나?’

어쨌든 다행이다. 우리 아이들이 부모에게 의지하며 안정감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 커버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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