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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산책 Oct 02. 2020

공감능력

지금 그대로 여기 있어도 좋다

키 작은 나는 통돌이 세탁기의 빨래를 꺼낼 때 애를 먹는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빨래 꺼내는 일을 도와 달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주말에 아이들이 컴퓨터, 휴대폰과 하나가 되어 있을 때 빨래가 다됐다는 신호가 울렸다. 요가 블록을 밑에 깔고 올라가 빨래를 꺼냈다. 빨래 바구니를 들고 베란다로 가는데 아들이 와서 바구니를 들어 옮겨준다.

말하지 않아도 도와줄 줄 아는 신사 같은 아들이다. 이렇게 자랄 수 있는 이유는 신랑 덕분이다. 신랑은 ‘여자에게 힘든 일을 시키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특히 ‘너희 엄마는 힘이 없으니 도와드려야 한다’는 말로 아이들이 엄마가 무거운 것을 들 때 도와주도록 상기시켜 왔다.

청소나 정리를 도우려는 생각은 못해도 내가 무거운 것을 들으려고 할 때는 세 사람 모두 어디서든 나타나 도와준다. 마치 히어로처럼.


햇볕이 좋아 빨래 너는 맛이 난다. 밖을 보니 분리수거하는 곳이 보인다. 집 앞에 바로 있어서 편리하긴 하지만 새벽부터 정리되는 음식물 쓰레기나 유리병, 플라스틱 소리에 잠을 깨기 일쑤다.

아들에게 불평하듯 말했다.

- 아들, 그거 알아? 새벽 3시가 넘으면 플라스틱 덜그럭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 아들은 못 들었어?


아니요. 저는 못 들었어요. 아저씨들이 그 시간에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내가 기대한 대답이 아니다. 우리 아들의 공감 능력은 엄마보다 더 힘든 일을 하고 계시는 경비아저씨에게 발휘되고 있었다. 더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에게 공감하고 있으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아들이다.

‘그렇구나! 나야 잠에서 깨면 귀마개를 하면 되지.’

같은 소리가 나도 잠에서 깨지 않는 아들에게서는 공감받지 못했다.     


예전에 시험이 끝나고 연휴를 맞은 아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을 때 신랑은 말했다.

- 너 공부 안 할 거야?

공부야말로 자신이 하고 싶을 때 해야 능률이 오른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나는 당장 아들 편이 되어 말했다.


당신은 공감능력이 없어요. 시험 끝나고 연휴를 맞은 아들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어요? 쉬엄쉬엄하게 놔둬요.


신랑의 표정이 변했다. 다른 어떤 말보다 ‘공감 능력이 없다’는 말에 상처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 역시 공감 능력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였다. 우선 당장 아들이 들을 잔소리를 막아주기 위해 나의 과거에 공감하고, 그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억울했던 신랑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그 일을 꺼내놓고 토론의 장을 만들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넌 왜 너만 생각해.


내가 신랑에게 했던 말이 화살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그 뒷이야기로 ‘요즘은 우리가 공부하던 때와 다르다’부터 ‘부모의 푸시가 필요하다’는 말까지 온갖 타당한 근거들이 나왔지만 내 귀에는 오롯이 ‘넌 왜 너만 생각해’라는 말만 남아 있었다.

그 말이 긴 시간 나를 괴롭혔다. 나를 욕한 것도 아니고, 틀린 말도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 힘들었던 걸까?

가까운 친구에게서 공감받지 못한 것이 ‘내 삶의 방식이 틀렸다’ 거나 ‘내 가치관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매일 보는 신랑에게서 공감받지 못하는 것보다 가끔 보는 친구에게서 공감받지 못한 것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나의 충격받은 얼굴은 그도 보았을 것이다. 모임에 다녀온 이후, 친구의 쓴소리는 나를 아프게는 했지만 아들과 공부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아들이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랑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일은 우리 선에서 마무리하자.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신랑도 알고 있었다. 친구들 앞에서 배우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결국 서로에게 좋지 않은 일임을 그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신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받는 것은 ‘지금 그대로 여기 있어도 좋다’는 뜻이 아닐까? 옳고 그름을 떠나 ‘당신이라는 존재는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라는 메시지. 그런 메시지를 받으며 살고 싶다. 나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메시지를 주는 사람이고 되고 싶다.


* 커버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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