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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산책 Sep 25. 2020

'뭘 이런 걸 다'의 의미

그 선물이 아주 마음에 든다

신랑이 수확한 고구마 중 예쁘고 큰 것을 골라 담는다. 맛있는 재료나 음식이 생기면 신랑은 어김없이 친정에 갖다 드린다. 특히 시아버지 산소를 다녀오는 길에는 그 지역 로컬푸드에 들러 마치 코스처럼 흑돼지 목살을 사다가 친정에 갖다 드린다. 우리가 넉넉하지 않을 때조차 그는 나누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 빚에 허덕이던 나는 그런 그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특히 친정에 뭔가 사드리겠다고 하는 신랑을 말릴 때에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 그가 고구마를 드리면서 엄마께 묻는다.

- 고구마 뭐로 구워 드세요?

- 직화 냄비 있어.

엄마가 말하자 아버지가 낡은 냄비를 들고 와서 보여주신다.

신랑이 나를 보고 말한다.

00아, 어머니 에어프라이어 사드려.


엄마는 신랑에게 말한다.

- 괜찮은데.

그러나 강하게 부정하지 않으시는 걸 보니 갖고 싶으신 것 같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곧 사드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랑은 좋은 사위, 나는 나쁜 딸이 될 테니까. 보통은 담배를 끊겠다거나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등 본인이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사용하는 것이 ‘공언’인데 신랑은 본인을 단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입막음을 위해 '공언'을 하는 경우가 많다. 


2년 전 엄마, 아빠를 모시고 베트남 여행을 가게 된 계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가족들이 모인 장례식장에서 신랑은 나와 상의도 없이 엄마, 아빠께 말씀드렸다.

장모님, 장인어른, 이번에 저희랑 베트남 가시죠.


신랑의 제안에 엄마와 아빠는 행복해하셨다. 아마도 내 표정은 엄마, 아빠와 달랐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신랑에게 말했다.

- 여보, 그런 이야기는 나와 상의하고 해야지.

- 너 참 이상해. 너의 엄마, 아빠 모시고 가자는 거잖아.

나는 그때도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 장인어른과 아버지 두 분 다 해외에 나가신 적이 없잖아. 아버지는 돌아가셨으니 장인어른이 더 늙으시기 전에 다녀와야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는 맞는 말만 한다. 그에게 아버지는 애달픈 존재였으므로 그의 뜻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졌소.’

그래서 우리는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베트남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집 아이 둘이 어렸을 때 엄마가 키워주셨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그 여행은 신랑보다는 부모님과 나, 우리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신랑은 아이들을 키워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엄마, 아빠를 챙겨드리려는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다만 나랑 상의 좀 하라고.’     



딸아이가 회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신랑이 말한다.

- 00아, 에어프라이어 갖다 드릴 때 회를 사 가자.

- 네네.

친정에 도착해 나는 매운탕을 끓이고 신랑은 엄마 앞에서 박스를 개봉한다. 엄마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 이게 말로만 듣던 그 에어프 그거 고만?

- 네. 어머니.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신랑이 어머니에게 작동법을 설명한다. 엄마가 말씀하신다.

뭘 이런 걸 다~


엄마가 웃고 계신다. 그때 알았다. ‘뭘 이런 걸 다’라는 말의 의미는 그 선물이 아주 마음에 든다는 뜻이라는 걸. 엄마가 좋아하시고, 그런 엄마를 보는 신랑은 뿌듯해하고, 두 사람을 보는 나도 정말 좋다.   

  

신랑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그 당시에도 그는 마음만은 부자였다. 나는 그가 가진 것도 없이 마음만 부자라고 나무라면서 좋은 마음으로 베풀지 못했다. 하지만 어차피 할 일이라면 좋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 한다.”는 옛말이 있다.

‘내가 그에게 그렇게 어여쁜 존재인가?’ 

나 행복하자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신랑 덕분에 행복하다. 정말이다.


* 커버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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