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맹수의 눈을 하고, 우리의 공간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얘들아, 반응하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 하렴.’
눈빛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아이들이 동요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한다.
‘잘하고 있어.’
차분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아이들이 따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일단 결론 내렸다.
그가 뒷문을 열고 내 눈치를 살핀다. 5cm, 10cm, 15cm 점점 문이 열리고, 그가 머리를 문 밖으로 내민다. 그리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문을 닫는다. 열린 창문으로 그의 동정을 살폈으나 그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가 움직이지 않는 이상 나도 이곳을 지킬 것이다.
2분 정도 지난 후 그가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이곳은 교실이고, 아이들은 수학 익힘책을 풀고 있다. 그 어려운 (세 자리 수) × (몇십 몇)! 지금 익히지 않으면 한동안 어려울 큰 수의 곱셈이다.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아이들과 나는 집중력 테스트를 받고 있다. 그는 ADHD 학생이다. “아니. 안 돼.”라는 말에 폭력적으로 반응하고, 책상을 두드리며 수업을 방해하는 친구이다.
그나마 맹수처럼 돌아다니기만 한 것은 기분이 조금 풀렸기 때문이다. 그 전 시간에는 책상을 두드리며 수업을 방해하여 나와 아이들은 소음으로 고통 받았다. 큰 소리로 책을 읽거나 수업을 진행하면 그가 더 큰 소리를 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조용히 교과서를 읽도록 했다. 어느 순간 그가 소리 내는 것을 멈추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한바탕 시끄러운 소리가 났던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그가 나에게 다가온다.
“이야기 나눌 준비가 됐어?”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와 함께 복도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대화중에도 집중하는 것을 힘들어하지만 어쨌든 그가 다가왔으니 한시름 놓였는데 2교시 수학시간에는 맹수의 눈을 하고 교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닌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아이를 데리고 학급을 이끌어가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힘든 친구들을 더러 만나봤지만 매번 현재가 가장 힘들다. 아이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득 내 정신 건강이 걱정되었다. 지난 주말에는 3일 연속 그 아이와 씨름을 하고 맘을 잡을 수 없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다. 때마침 ‘우울증이 있는 아들 때문에 힘들다’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올라와 있었다. 법륜 스님이 말씀하셨다.
환자로 받아들여라. 감정을 받아주어라. 그런 아들이 있어도 어머니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네. 알겠습니다.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이번 주부터 그를 환자(왕자)라고 생각하고, 감정을 받아주었다. 그런데 행복하기는 좀 힘들 것 같다. 아이들 하교 전까지 살얼음판을 걷듯 아이의 기분을 살피고, 그 아이로 인해 다른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보듬어 주어야 한다. 2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찾아오는 무력감에 어깨가 쳐진다. 몸에 사리가 생길까 걱정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기분으로... 상처받고 힘들었던 내용을 글로 쓰며 치유 받는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
* 커버이미지 출처: f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