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기 이전에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엄마가 엄마가 아니었던 시절을 잘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자신이 엄마가 아니었던 이야기들을 가끔 들려줬는데 그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청소년시절 갑자기 찾아온 가난과 엄마가 좋아했던 책 속 주인공들이다.
가끔 집에 신문이 배달되지 않는 날들이 있었다. 일 년에 몇 안 되는 날들이었지만 신문으로 항상 아침을 열던 아빠가 언짢아서 신문사에 전화하려고 하면 엄마는 아빠를 말리곤 했었다. 꼭 신문뿐이 아니어도 엄마는 직원에게 서비스나 상품에 대해 컴플레인을 잘 안 했다. 우리 엄마처럼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이 왜 불만을 제기해야 함이 마땅한 이런 일에는 가만히 있는 걸까! 분통이 터질 때마다 입을 다물게 하는 건 엄마가 들려줬던 어릴 적 이야기들이다.
외가가 갑자기 망하면서 엄마는 이모랑 신문 배달을 했다. 추운 겨울에 신문을 다 돌리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는 이 버스가 멈추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단잠을 잤더란다. 그러다가 어떤 날 큰 집에 신문을 돌리러 갔는데 마당에 큰 개가 왈왈 짖으며 쫓아왔고 엄마와 이모는 신문을 넣지도 못하고 도망갔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신문사에서 잘렸는데 엄마에게는 그날이 그렇게 서러운 기억이었던 것 같다. 그런 기억이 있다고 마주치는 항의할만한 일들에게 사정이 있겠지 하고 넘어가주는 엄마를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엄마에게도 또 다른 사정이 있겠지 하고 나마저도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들려준 또 다른 이야기는 삐삐롱스타킹과 캔디를 좋아했던 엄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읽었던 책들을 내가 읽으면 옆에 와서 신나게 자신이 좋아하는 장면을 흉내 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젊은 날의 엄마는 꽤 귀여우셨었던 것 같다. 캔디 만화책을 내가 처음 사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구사에서 팔던 손바닥만 한 만화책이었는데 4권까지만 팔아서 나는 오늘 전까지 이 캔디 이야기를 절반도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 4권뿐인 만화책을 읽을 때마다 엄마가 앤서니가 얼마나 슬프게 죽는지, 테리우스가 얼마나 멋있는지, 캔디가 얼마나 씩씩한지를 노래 부르는 것처럼 얘기했던 건 항상 생각이 난다.
알라딘에서 어떤 책을 사고 다이어리 사은품을 받을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캔디가 떠올라서 검색하고 구매해서 방금 다 읽었다. 그런데 읽는 내내 자꾸만 어린 날의 엄마랑 같이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새벽이라서 그런 것 같다.
얼마 전 읽은 기사에서 부모가 부모이기만 한 것은 아니고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모가 또는 자식이 인식하지 못하면 그 가족은 힘들어진다는 구절이 있었다. 이 구절을 기억해 둔 이유가 있다. 예전부터 나는 반은 허세, 반은 진심인 마음으로 “나는 엄마를 고ㅇㅇ이라고 저장해. 엄마가 꼭 엄마이기만 한 건 아니니까 엄마를 고ㅇㅇ으로 기억하고 싶어서야!”라고 말해왔었기 때문이다. 예쁜 말도 재수 없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렇지만 오늘 캔디 만화책을 다시 보면서 괜히 연락처 목록을 검색해서 한번 더 이름을 불러보게 되고, 이 밤에 엄마가 아닌 고ㅇㅇ씨에게 전화를 한번 걸까 말까 망설이다가 내일 오전에 전화하겠다고 문자를 한다. 그리고 고ㅇㅇ씨는 언제나처럼 시크하게 “오키”라고 답장을 보낸다.
그리고 엄마 나는 테리우스 말고 안소니 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