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기고래 May 02. 2024

엄마라는 사람.

엄마이기 이전에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엄마가 엄마가 아니었던 시절을 잘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자신이 엄마가 아니었던 이야기들을 가끔 들려줬는데 그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청소년시절 갑자기 찾아온 가난과 엄마가 좋아했던 책 속 주인공들이다.


가끔 집에 신문이 배달되지 않는 날들이 있었다. 일 년에 몇 안 되는 날들이었지만 신문으로 항상 아침을 열던 아빠가 언짢아서 신문사에 전화하려고 하면 엄마는 아빠를 말리곤 했었다. 꼭 신문뿐이 아니어도 엄마는 직원에게 서비스나 상품에 대해 컴플레인을 잘 안 했다. 우리 엄마처럼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이 왜 불만을 제기해야 함이 마땅한 이런 일에는 가만히 있는 걸까! 분통이 터질 때마다 입을 다물게 하는 건 엄마가 들려줬던 어릴 적 이야기들이다.


외가가 갑자기 망하면서 엄마는 이모랑 신문 배달을 했다. 추운 겨울에 신문을 다 돌리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는 이 버스가 멈추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단잠을 잤더란다. 그러다가 어떤 날 큰 집에 신문을 돌리러 갔는데 마당에 큰 개가 왈왈 짖으며 쫓아왔고 엄마와 이모는 신문을 넣지도 못하고 도망갔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신문사에서 잘렸는데 엄마에게는 그날이 그렇게 서러운 기억이었던 것 같다. 그런 기억이 있다고 마주치는 항의할만한 일들에게 사정이 있겠지 하고 넘어가주는 엄마를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엄마에게도 또 다른 사정이 있겠지 하고 나마저도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들려준 또 다른 이야기는 삐삐롱스타킹과 캔디를 좋아했던 엄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읽었던 책들을 내가 읽으면 옆에 와서 신나게 자신이 좋아하는 장면을 흉내 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젊은 날의 엄마는 꽤 귀여우셨었던 것 같다. 캔디 만화책을 내가 처음 사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구사에서 팔던 손바닥만 한 만화책이었는데 4권까지만 팔아서 나는 오늘 전까지 이 캔디 이야기를 절반도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 4권뿐인 만화책을 읽을 때마다 엄마가 앤서니가 얼마나 슬프게 죽는지, 테리우스가 얼마나 멋있는지, 캔디가 얼마나 씩씩한지를 노래 부르는 것처럼 얘기했던 건 항상 생각이 난다.


알라딘에서 어떤 책을 사고 다이어리 사은품을 받을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캔디가 떠올라서 검색하고 구매해서 방금 다 읽었다. 그런데 읽는 내내 자꾸만 어린 날의 엄마랑 같이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새벽이라서 그런 것 같다.


얼마 전 읽은 기사에서 부모가 부모이기만 한 것은 아니고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모가 또는 자식이 인식하지 못하면 그 가족은 힘들어진다는 구절이 있었다. 이 구절을 기억해 둔 이유가 있다. 예전부터 나는 반은 허세, 반은 진심인 마음으로 “나는 엄마를 고ㅇㅇ이라고 저장해. 엄마가 꼭 엄마이기만 한 건 아니니까 엄마를 고ㅇㅇ으로 기억하고 싶어서야!”라고 말해왔었기 때문이다. 예쁜 말도 재수 없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렇지만 오늘 캔디 만화책을 다시 보면서 괜히 연락처 목록을 검색해서 한번 더 이름을 불러보게 되고, 이 밤에 엄마가 아닌 고ㅇㅇ씨에게 전화를 한번 걸까 말까 망설이다가 내일 오전에 전화하겠다고 문자를 한다. 그리고 고ㅇㅇ씨는 언제나처럼 시크하게 “오키”라고 답장을 보낸다.


그리고 엄마 나는 테리우스 말고 안소니 파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