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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인 Mar 03. 2024

첫 전시회

그 해 가장 잊지 못할 순간.

화실선생님들과 회원전을 열었다. 두 번째 회원전이었다. 첫 회원전엔 자신이 없어서 참여하지 않았다. 그때가 내가 그림을 시작한 지 1년도 안되었을 때니까 감히 상상도 못 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나도 다음 기회엔 할 수 있을까 싶어 사전답사하는 마음으로 관람만 하고 왔던 기억이 난다.


이번 전시에서 난 2개의 그림을 내놨다. 1년 동안 작업한 그림인데 크고 흰 벽에 걸어놓으니 무안할 정도로 작게 느껴졌다. 작가들이 100호 이상의 큰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깨끗한 벽이 오롯이 그림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림을 건다는 건 마치 1년 동안 애지중지 키운 자식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머리 혹은 가슴속 어딘가에서 애지중지 품고 있다가 종이 위로 탄생했던 역사적인 날. 어디서 뭘 하고 있던 머릿속이 온통 그림생각뿐이었던 순간들. 퇴근 후 가족도 친구도 뒤로하고 그림 앞으로 달려갔던 날들. 목과 어깨가 아파도, 쉬고 싶어도 붓을 들었던 주말. 내 맘대로 되지 않아 잠 못 이루며 고민했던 밤. 색칠도 되지 않아 헐벗은 것 마저 예뻐 보여서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놓았던 것. 나에 대한 칭찬이 아닌 그림을 향한 칭찬과 관심이 또 다른 기쁨이었던 것. 이 정도면 자식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처음 하는 전시라서 어떻게 초대를 해야 할지 내가 같이 가는 게 맞는지 알아서 보고 가라고 하는 게 맞는지 관례를 몰라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긴 생각 끝에 그냥 혼자서 자축하자 싶은 마음을 먹기도 했다. 고작 이거 하나 때문에 먼 길을 부르는 게 부담스러웠다. 오히려 이곳을 우연히 지나가다 들리는 행인들 혹은 그림을 좋아해서 찾아와 주는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눈길.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축하해 주면 감사히 받으면 되는데 왜 미안한 마음부터 들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전시가 열린 지 꽤나 지나고 나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렸다. 그것도 아주 소수의 나의 사람들에게. 그날 받은 축하와 응원의 말들은 말할 수 없는 감격을 가져다줬다. 내가 그림에 몰입할 수 있도록 탄탄하고 든든한 환경을 만들어준 나의 가족들. 그림과 씨름하다 퇴근 후에도 답장을 빨리 못해주지만 늘 함께 놀아주는 감사한 친구들. 그날 받았던 진심들은 꽤나 긴 시간 나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줄 것 같다.


평범했던 삶에 그림이 나타나면서 변수가 많았다.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화실을 찾았고 자격증을 따게 되고 공모전에 입상을 하고 전시회 참여도 했다. 예측불가인 게 싫은 지독한 계획형 인간. 준비되지 않은 모습은 보여주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전시는 처음이기 때문에 미숙함과 어색함 마저도 좋았다.


그리고 새로운 해에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길을 보여줬다. 조금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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