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이슬아
솔직함과 작품의 완성도는 무관한 경우가 많고 솔직한 글이 늘 좋은 글인 것도 아니다. 어떤 솔직함은 몹시 무책임하고, 어떤 솔직함은 너무 날 것이라 비린내가 나며, 어떤 솔직함은 부담스러워서 독자가 책장을 덮어버리게 만든다.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쉴 새 없이 주절대는 친구처럼 눈치 없는 솔직함도 있다. (중략) 솔직함만으로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p.123~124)
책 읽기가 삶의 일부가 되면서 깨닫게 된 점이 있었습니다. 생각의 범주가 확장되는 듯한 느낌. 어렴풋이 느껴지던,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득한 그 무엇들이 또렷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매스컴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된 말 중에 ‘메타인지’가 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또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언젠가부터 내 머릿속에 담겨 있던 비린내 나는 날 것 같은 생각들이 조금씩 숙성되어 어떤 맛인지 정체성을 가지게 되면서 자리를 찾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와 비슷한 경험에 대해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헤엄 출판사, 2021)의 저자 이슬아는 “어쩌면 책 읽기는 나의 테두리를 극복해 보려는 노력”(p.77) 같다고 표현합니다.
서평 쓰기를 시작하면서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친구들과 여행 가서 함께 낭독했던 시인 한섬의 ‘여름 아이’라는 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제야 나름의 서평을 시작한 저에게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더군요. 서평 모임에서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다가 추천받은 책이 이슬아 작가의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였습니다. 왜 나는 한섬의 ‘여름 아이’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까요? “실은 책 얘기를 빌려 딴 얘기를 하려는 거야. 책 때문에 다시 보게 되는 너와 이 세계의 모습을.”(p.15)라는 문장을 읽으며 서평을 쓸 때마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같던 긴장감이 느슨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시를 핑계로, 여름을 시작하며 함께 한 친구들과의 여행을 기다리는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서평을 쓰기 시작한 진짜 이유는 늘지 않는 글쓰기 실력 때문이었습니다. 서평가의 글을 읽다 보면 글쓴이마다 사유의 힘과 깊이, 그리고 미처 생각지 못한 관점들이 보여 부러웠습니다. 읽은 책을 글로 남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평에는 어떤 형식이 있다거나 이런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옭아매었기 때문에 글로 쓰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슬아의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는 일반 서평집과 그 형태가 매우 다릅니다. 저자는 읽은 책의 내용을 누군가(친구, 엄마 또는 이야기 속의 두 주인공이 대화하듯이)에게 편지로 이야기하듯 쓰고 있습니다. 책을 매개로 한 에세이 같은 서평이라고 할까요?
작가 이슬아는 2014년 한겨레21 손바닥 문학상을 받고 이제 막 30대가 된 풋풋한 젊은이입니다. 헤엄 출판사를 세우고 ‘아무도 안 청탁했지만 쓴다!’, ‘날마다 뭐라도 써서 보낸다!’라며 쓰는 것을 업으로 삼아 <일간 이슬아>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부지런한 사랑> 등과 헤엄 출판사의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인터뷰집인 <창작과 농담>, <새마음으로> 등 다수의 작품이 있습니다. 현재는 경향신문에서 비건과 관련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는 ‘서평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는 편안하고 다정한 서평집입니다. 글은 글을 쓴 사람을 닮는다고 합니다. 자신의 글을 읽을수록 어떤 틀에 얽매인 듯한 인상을 받는다면 이슬아의 서평집을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조잘조잘 물 흐르듯 수다스러운 이야기에 빠져 있다 보면 조금 다른 글쓰기에 대해 넉넉한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서평은 역시 ‘평’이라는 단어에 중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라도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를 읽고, 소개된 책 중에 한 권을 집어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당신에게 책을 찾아 읽는 즐거움이 함께하시길.
사실은 어떤 글도 혼자 쓰지 않았음을 기억해 냈다. 서재 꽂힌 수백 권의 저자들과 그 안의 무수한 인물들의 도움을 받아썼다. 물론 그들이 의도한 적 없는 도움이다.(p.122: 금정연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