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환상 속에 그렸던 여인인 저를 만났을 때 그는 그 환상의 여자가 실제 존재하는 여성이라고 믿고 싶어 했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p.197)
데이비드 헨리 황의 희곡 <M. 나비(동인), 2016>'는, ‘존 루서 롱’이 일본을 배경으로 한 단편을 자코모 푸치니가 작곡한 오페라 ‘나비부인’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나비부인’은 일본에 근무하게 된 미군 장교 ‘핑커튼’과 현지처였던 ‘초초상’(나비라는 뜻의 일본 이름)의 이야기입니다. 핑커튼은 복무 기간이 끝나 본국(미국)으로 떠나지만, 초초상은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립니다. 하지만 핑커튼은 미국에서 정식 결혼을 한 후, 초초상이 자신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알고 미국인 아내를 보내 아이를 입양하려 합니다. 결국 아이를 핑커튼에게 보낸 초초상은 자결한다는 내용입니다. 오페라 <나비부인>은 서양인들이 ‘동양’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이라 할 수 있는 ‘오리엔탈리즘(1978년경 문화 비판론자였던 에드워드 사이드는 서양 중심적 동양관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정의함)’을 담고 있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 문명과 비교해 서양이 세련되고 합리적이며 선진적이라는 편견을 말합니다. 데이비드 헨리 황의 작품 <M. 나비>는 오페라 <나비부인>의 주요 흐름을 따라가지만, <나비부인>에 깔려 있는 오리엔탈리즘을 영리하게 역이용합니다.
<M. 나비>의 주인공은 프랑스 외교관 ‘갈리마르 르네(이하 ‘르네’)’와 중국인 ‘송 릴링(이하 ‘송’)’입니다. 주인공 송은 르네의 오리엔탈리즘을 이용하여 그가 꿈꾸는 신비롭고 순종적인 완벽한 동양의 여주인공 역할을 기획합니다. 송의 목적은 프랑스 외교관인 르네에게서 고급 정보를 빼내 자신의 국가 중국에 보내는 혁명적 과업을 완수하는 것이었습니다. 경극 배우였던 송은 임무를 위해 20년동안 여장을 하고 르네와 함께 합니다. 어떻게 20년 가까운 세월을 연인으로 함께 지냈으면서 여자인 척 속일 수 있었을까? 그것이 가능할까? 궁금해하는 독자를 위해 송은 말합니다.
첫째, 남자는 언제나 자신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믿는다는 겁니다.
(p.193)
송과 초초상은 서양인이 보기에 같은 아시아 여성입니다. 송은 맹목적으로 핑거튼을 운명적 사랑이라 믿고 순종한 초초상과는 달리, 르네가 가지고 있던 오리엔탈리즘, 여성에 대한 편견과 환상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기획과 연출을 했을 뿐입니다. 송은 르네를 대상으로 국가를 위해 자신의 임무를 어떻게 완수할 수 있을지 완벽하게 이해한 충성스러운 애국자였습니다. 마지막 장에 다다를 때쯤, 송의 대사에서 르네 역시 자기가 만든 환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애써 부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진실은 독자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도 있습니다. <M. 나비>의 송은 처음부터 르네를 작정하고 속이려 했던 것일까요? “전 사실 엄격한 의미에서 완전한 남성일 수 없었습니다.”라는 극 중 송의 말처럼 르네가 경극이 어떤 것인지 관심을 가졌었다면, 송의 역할이 여장 남자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르네는 송의 말을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채 자기의 환상을 송에게 투영합니다. 어쩌면 르네는 <나비부인>의 초초상이 그랬던 것처럼 사실을 왜곡한 믿음에 빠져 성급한 판단을 함으로써 스스로 나비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은 로스앤젤레스 교외에서 출생한 중국 이민자 2세입니다. 미국에서 자라며 기독교적 가정환경의 영향으로 정체성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1960년대 흑인운동의 여파로 1970년대 아시아계 미국인 의식화 운동에 동참하였습니다. 첫 작품<F.O.B(Fresh off the Boat), 1979>는 미국 내 중국인의 정체성과 문화에 관한 문제들을 탐구, 새로 온 이민자들과의 교류에 얽힌 이야기를 썼으며, <M. 나비>로 토니상을 받으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을 필두로 젠더, 인종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M. 나비>는 20년간 동양인 여장 남자를 사랑한 서양 남자 이야기라는 다소 자극적이면서도 강렬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젠더, 인종, 문화에 대한 작가의 의도된 연출들이 매력적인 희곡입니다. 독자에 따라 성과 동, 서양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 왜곡된 관점이 발생시킬 수 있는 문제점을 생각해 볼 수도있을 것 입니다. 목적에 따라 인간관계를 기만하는 행위,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성 간의 관계에서만 성립될 수 있는가 등의 질문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독자의 다양한 관점이 더해진다면 <M. 나비>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흥미로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