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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승호 Mar 19. 2024

자녀에게 집안일 시키세요 1

 2015년 3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습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마티 로스만 교수가 어린이 84명의 성장 과정을 추적 분석한 결과 “서너 살 때부터 집안일을 도운 아이들이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 관계가 좋을 뿐 아니라 학문적, 직업적으로도 성공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청소나 심부름 같은 허드렛일을 많이 한 아이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성공적인 삶을 일군다는 이야기에 고개 끄덕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집안일을 맡기면 책임감과 자신감이 커질 뿐 아니라 사고력과 통찰력도 커져 삶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에 맞장구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집안일 참여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 결과는, 청소와 심부름이 공부할 시간을 빼앗고 아이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는 우리 부모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마을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취사를 했던 시절, 초등학교 2,3학년이었던 저에게 주어진 임무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부엌 항아리에 채우는 일과 집안 청소하기였습니다. 어린이로서는 버거울 수 있는 임무였지만 그 일은 제게 짜증나고 힘든 노동이었다기보다는 나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과 보람과 즐거움이었습니다. 4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낫을 들고 망태기를 메고 들에 나가 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 와야 했는데, 그 경험들은 훗날 삶의 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제가 아는 유치원 원장님은 예닐곱 살 꼬맹이들에게 감자나 고구마를 캐는 노작 교육을 하고 연탄 나르는 봉사 활동도 시킨답니다. 그런데 ‘그 어린 꼬맹이들이 어떻게?’라는 걱정이 무색할 만큼 아이들은 신나고 재미있게 거뜬히 그 일들을 잘 해낸다고 하네요. 그런데 오늘날의 대다수 아이들은 어떠한가요? 첫째도 공부요 둘째도 공부입니다. 아이들 손에 흙을 묻히고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하는 일은 공부를 방해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몹쓸 짓이라고 여깁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넘어 죄악으로까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아이들을 곱고 연약하게만 키우려 합니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 푸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지만, 땀 흘려 일하는 것은 시간 낭비 또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공부만 강요당한 채 곱게만 키워지고 있으니 열여덟, 열아홉 살 청년들이 할 줄 아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청소하는 것조차 두려워합니다. 의견을 물으면 엄마에게 물어보아야 한다고 답합니다. 공부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지만 정작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독서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지식도 지혜도 20~30년 전 같은 또래 청소년들보다 많이 뒤쳐져 있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을 빌릴 필요도 없이, 곱게 자란 아이보다 고생하면서 자란 아이가 철이 빨리 든다는 것은 삶의 연륜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수긍하는 사실입니다. 진정 자녀가 올바르게 자라서 멋진 시민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청소와 심부름 같은 집안일이나 몸으로 땀 흘려 일할 기회를 주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집안일을 벌칙으로 시켜서도 안 되고, 집안일 한 것에 대해서 어떤 보상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지요. 가족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임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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