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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승호 Mar 18. 2024

노는 것은 아이들의 권리입니다

 “놀이는 어린이들의 가장 정당한 행동이며 장난감은 어린이들의 천사이다.” 

 중국의 소설가 루쉰魯迅의 수필 <연>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루쉰은 우연히 외국 책에서 이 구절을 읽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루쉰이 어린 시절 동생의 연을 부숴 버린 적이 있는데 그 이유가 연을 만들고 날리는 일은 못난 아이들이나 하는 유치한 일, 할 일 없는 아이들이나 하는 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 가치 없는 일이라 여겼던 놀이가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가장 정당한 행동이고,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 어린이들에게는 천사와 같은 존재라는 구절은 저에게도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습니다. 노는 것을 나쁜 일로만 여기고 장난감을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큰 소리 친 것에 대해 아들딸에게 용서를 빌고 싶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옛날 우리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빈둥거리며 놀아도 크게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연 날리러 나가는 아이에게 쓸데없는 일을 왜 하냐고 꾸중하지 않았고, 술래잡기와 고무줄놀이에 열심인 아이들에게 그 따위 짓 하지 말라고 혼내지 않았으며, 아이들끼리 어울려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할 때도 시간 낭비 하지 말라고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골목에서 시시한 놀이를 해도 공부하라 닦달하지 않으셨고, 아이들끼리 싸움질을 하더라도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놀아야 합니다. 노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에너지를 축적하는 과정이며, 그 자체가 삶의 목적입니다. 인간은 공부하기 위해,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놀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충분한 수면이 필요한 것처럼 충분하게 노는 시간도 절대 필요한데 어린아이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학교 운동장이나 마을 골목에서 아이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한창 뛰어놀아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은 서글픈 일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무척 바쁩니다. 운동할 시간도 놀 시간도 생각할 시간도 없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사고력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 1교시부터 7교시까지 꽉 채워서 수업하지 말고, 중간중간 놀 시간, 자유 시간, 생각할 시간을 주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집중력은 20분을 넘기기가 힘들다고 하니까 수업 시간 중간에 놀 시간을 주어도 좋습니다. 하루 한두 시간 정도 자유 시간을 주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운동하고 싶은 아이 운동하게 하고, 노래하고 싶은 아이 노래하게 하고, 잠자고 싶은 아이 잠자게 하는 일이 왜 어려운지 알고 싶습니다. 

 학교는 즐거운 곳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자유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즐거움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고 즐거움 없이 제대로 된 교육도 어려운 것 아닌가요? 선택의 기회가 전혀 없는 아이들, 고민할 필요가 거의 없는 아이들에게 선택하고 고민할 시간을 주면 좋겠습니다. 조용하고 얌전하고 순종하는 것이 좋다는 편견에서 벗어나면 좋겠습니다. 시끌벅적도 필요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도 중요하며 비판적 시각을 갖는 일도 중요하니까요. 시간을 주고 기회도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의 권리니까요. 아이들이 마음껏 놀도록 시간을 주면 좋겠습니다. 잘 노는 아이가 일도 잘하니까요. 인간은 즐겁게 놀기 위해서 태어났으니까요. 

 토요일 오전, 우리 학교 운동장에서는 유소년 축구교실이 진행되곤 했습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 제법 어울리는 유니폼을 입고 공을 차는데 몸동작에도 목소리에도 행복이 묻어납니다. 몸풀기 운동부터 드리블 연습, 미니 게임까지 한 시간 넘게 이어지는 활동은 행복 그 자체입니다. 아이들의 몸놀림이나 표정, 내뱉는 소리까지 어느 것 하나에도 불편함이나 짜증이 묻어 있지 않습니다. 오직 행복만이 가득하며 그 기운이 운동장을 둘러싼 풀과 나무와 꽃들을 충만하게 감싸고 돕니다. 

 아이들의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 아빠의 눈동자에도 대견함과 흐뭇함이 섞인 기쁨이 녹아 있습니다. 교무실 유리창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는 저에게까지 행복이 전달됩니다. 공을 차는 아이들의 벅찬 즐거움에 박수를 보내 줍니다. 그 어떤 그림보다도 예쁜 그림, 그 어떤 음악보다도 아름다운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고함 소리가 저를 행복으로 인도합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운동장으로 나와서 뛰고 함성도 지르면서 행복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유명 관광지를 여행하는 것도 행복이고 가까운 산에 올라가는 것도 기쁨이겠지만, 가까운 학교 운동장에서 가족 모두가 함께 뛰면서 땀 흘리는 스포츠 활동은 여행이나 등산에서 맛볼 수 없는 또 다른 기쁨일 것입니다. 컴퓨터, 텔레비전, 스마트폰에 빠져 헤매는 아이들의 몸 건강과 마음 건강을 바로잡는 데 운동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함께 놀 친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학원에 보낸다는 학부모들이 있습니다. 맞는 말 같지만 사실 핑계에 불과합니다. 혼자 놀다 보면 누군가 찾아와 함께 놀자 할 것이고, 두리번거리다 보면 함께 놀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니까요. 집에서 혼자 노는 것도 괜찮은 일입니다. 학교 도서관이나 지역 공공도서관에서 책과 친구할 수도 있지요. 물론 남 하는 대로 따라하면 마음은 편하겠지요. 그런데 부모 맘 편하자고 아이들의 행복을 빼앗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부모님의 헛된 욕심 때문에 아이를 학원에 보내면서 함께 놀 친구가 없어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남들이 시키니까 불안해서 시킨다고 하는 것은 핑계나 변명에 불과합니다. 잘 알다시피 법에 규정된 하루 근로 시간은 8시간이고 주말에도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등학생뿐 아니라 초등학생들도 보통 10시간, 많으면 16시간 동안 공부하고 토요일 일요일에도 공부합니다. 비정상입니다. 

 공부 시키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정규 수업 시간에 공부하는 것이 아이들의 의무라면, 나머지 시간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노는 것은 아이들의 권리라는 말을 우리 모두가 자주 중얼거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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