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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승호 Mar 18. 2024

부모는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

 밤에 학교에 남아 공부하고 교실 책상 위에서 잠을 잔 후 아침에 첫차를 타고 집에 가서 아침밥을 먹고 도시락 두 개를 싸 가지고 다시 등교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핑계 삼아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시간이었습니다. 

 하루는 일어나 보니 친구들이 등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늦잠을 잔 거지요. 아침을 거른 채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1교시가 끝나자 어떤 친구가 어머니께서 교문에 와 계시니 빨리 나가 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고마웠을까요? 아니지요. 중학교 3학년이었거든요. 고맙기는커녕 화가 났습니다. 초라한 어머니의 모습을 친구들에게 들켰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외출복 한 벌 없으신 어머니, 초라한 몰골로 서 계실 어머니를 상상하니 분노와 원망의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밥 한 끼 굶는다고 죽는 줄 아나? 창피한 줄도 모르고 학교까지 왜 오는 거야?’

교문 밖 멀찍이서 저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서 계신 어머니를 향해 달려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밥 한 끼 굶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창피하게 학교까지 왜 왔어. 어서 돌아가!”

그러고는 어머니가 가져오신 도시락도 받지 않은 채 교실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어머니였습니다. 2교시를 마치고 책상 위에 엎드려 분노(?)를 삭이고 있을 때 누군가 제 책상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은 것입니다. 보자기에는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뜨거움이 묻어 있었지요. 다음 날 아침 집에 가서도 용서를 구하기보다 다시 한 번 더 짜증을 냈던 아들을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감싸 주셨고 품어 주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행히 조금은 철이 든 대학 4학년 학교 축제 첫날, 죄 씻음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여겨 부리나케 시골 어머니께 달려갔습니다. 교수님께서 오시란다는 거짓말로 억지를 부려 어머니를 모셔 와서는 캠퍼스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드리고 친구와 후배들을 붙들고 어머니께 인사하라 강요하기까지 하였습니다. 40여 년도 지난 철없던 중학생 때의 일이지만 생각할 때마다 등에 땀이 날 정도로 부끄럽습니다. 잘못한 일과 부끄러운 일이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그러함에도 교단에 섰고 또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이해와 용서, 관용과 사랑 덕분인 것이 분명합니다. 못나고 못된 아들을 용서하고 품어 주신 어머니가 계셨기에, 어머니의 그 사랑과 믿음과 기다림이 있었기에 저는 지금 아이들의 잘못에도 미소 지으면서 ‘그럴 수도 있지’ ‘그 나이 때에는 다 그렇지’ ‘나도 그 나이에 그랬잖아’ ‘나이 먹어 철이 들면 괜찮아질 거야’를 중얼거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체벌이나 폭언이나 욕설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공부 않고 싸돌아다니는 저에게 못마땅한 표정 한 번 짓지 않으셨고 야단치지도 않았습니다. 공부하라는 말씀도, 자식의 미래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믿는다는 말, 잘 알아 보고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는 말씀이 전부였습니다. 저희 형제들이 지금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음은 모두 어머님의 사랑과 용서와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하려고 마음먹었는데 누군가 청소하라 시키면, 하려 했던 청소도 하기 싫어지는 것이 인간이잖아요. 스스로 하고 싶을 때라야 잘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누군가의 간섭이나 강요에 의해 억지로 하는 일은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잔소리하지 말아야 하고, 조바심 나더라도 믿고 기다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즐거운 기분이어야 공부도 잘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누군가와 다투고 난 후에 일이 제대로 되던가요? 기분이 좋지 않으면 몸으로 하는 일도 잘되지 않는데 머리로 하는 공부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간섭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 해야 잘할 수 있습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는 학부모님들께 저는 아침밥 잘 먹이는 것, 늦게 자지 않도록 하는 것, 스스로 선택하도록 기회를 주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지도록 하는 것,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 믿어 주는 것, 기다려 주는 것, 간섭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무관심이나 방관이 아니냐고 되묻는 분도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를 자신감 넘치고 여유롭고 똑똑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실수하고 잘못할 때 야단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서하는 것이 야단치는 것보다 훨씬 교육적입니다. 가르쳐 주고 지적하기는 하되 용서해 주는 것이 정답입니다. 

 부모의 역할은 무조건 사랑해 주고 용서해 주고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야기하더라도 아이들이 짜증과 분노를 느낄 정도로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잔소리로 인식하면 나쁜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서로 감정만 상하게 되어 관계만 나빠지고 예상치 못한 잘못된 일들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고등학생 1학년 학생이 학급 친구들의 우윳값을 걷는 역할을 맡았다가 그중 적지 않은 돈을 군것질로 써 버렸답니다. 그 일이 들통나서 학교에서 징계를 거론하며 부모님을 오시라 하자, 겁이 난 아이는 가출한다는 편지를 써 놓고 아침에 집을 나왔습니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그냥 학교에 가서 교실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교문 밖에 아버지께서 와 계시니 나가 보라고 일러 주었답니다. 레슬링 선수 출신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아들에게 건네고 조용히 되돌아 가셨답니다. 방과 후 두려운 마음으로 집에 갔는데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한 마디도 나무라지 않았답니다. 그 후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공부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학교를 방문하여 특강을 하였던 어느 교수님의 고백입니다. 

 부모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했어야 할 고민을 어리석게도 아들딸이 제 품을 떠난 다음에야 합니다. 이제라도 생각하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용서해 주고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일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결론을 얻습니다. 용서해 주고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역할은 다른 사람은 할 수 없고 오직 부모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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