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승호 Mar 21. 2024

짜증 좀 받아 주면 안 되나요?

 인간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한 존재입니다. 외모만 대동소이한 게 아니라 생각도 대동소이합니다. 키도 몸무게도 손도 발도 머리도 대동소이하고 욕망도 감정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만 잘났다고 뻐기고, 자신의 생각만 현명하다고 우겨 대고 있으니… 어리석고 왜소한 마음까지도 모든 인간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대동소이한 인간들이 갖는 보통의 감정이나 마음을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하지요. 저는 인지상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화를 내고 자식들이 짜증을 부릴 때에도 맞받아치지 않고 웃음으로 대하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도 ‘아내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순된 저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부끄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현재뿐 아니라 과거에도 모순된 말과 행동을 하였다고 생각하니 모순된 저의 모습을 보면서도 부끄러움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모순된 말과 행동을 굳이 숨기지 않고, 주위 사람들의 모순된 언행에도 관대해지려고 노력하였더니 괴로움이 사라지고 평안함이 찾아왔으며 미소가 머무르기 시작했습니다. 행복의 조건 중 하나가 인간은 너나없이 모순덩어리라는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엄마는 참 이상하다. /나에게는 나이 많은 형이 양보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나이 많은 엄마는 /왜 나이 적은 우리에게 양보하지 않을까?/ 엄마는 진짜 이상하다. /나와 동생이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싸우는 것이라고 야단치면서 /엄마 아빠가 큰 소리로 싸우고 나서는 /대화했던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엄마는 참으로 이상하다.//

 언젠가 아내와 다투는 모습을 딸아이에게 들킨 적이 있는데, 그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우리를 쳐다보는 딸아이를 보고 부끄러운 생각에 적어 본 글입니다. 아이들의 모순된 행동에 분노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 역시 부족함투성이요 모순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만 모순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누구나 모순된 말과 행동을 하고, 상대방만 이중 잣대를 가진 것이 아니라 나 역시 이중 잣대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그릇된 행동에 화부터 낼 것이 아니라 ‘그래 너도 인간이구나’ ‘아직 철모르는 학생이구나’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맞아, 네 나이엔 나도 그랬지’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요? 인간이란 원래 모순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존재임을 인정하면 평안이 찾아오고 이해와 용서와 사랑의 마음도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황희 정승은 하소연하는 하녀에게 “네 말이 옳구나.”라고 이야기하고, 그 하녀와 싸웠던 다른 하녀의 이야기에도 “네 말도 옳구나.”라고 이야기했으며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부인이 “두 사람이 서로 반대 이야기를 하는데 왜 둘 다 옳다고 하십니까?” 하며 따지자,  “당신의 말도 옳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하지요.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모순을 흔쾌히 인정한 황희 정승의 태도에 고개가 숙여지지 않나요? 

 모순을 웃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모순이 사실 삶의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에서는 모순 형용의 표현 방법을 역설법逆說法이라 합니다. 모순되거나 부조리한 것 같지만 그 표면적인 진술 너머에 있는 진실을 드러내는 수사법이 역설법입니다.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의 ‘찬란한 슬픔의 봄’, 유치환의 시 <깃발>의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표현이 대표적입니다. 지금까지도 이 시들이 사랑을 받으며 명시로 일컬어지는 것도 이 시구들이 모순된 진술로서 삶의 진실을 정확하게 드러낸 때문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녀는 나와 가장 가까운 평생 친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