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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승호 Mar 22. 2024

자녀의 교과서를 읽는 행복

 공자의 제자였던 진항陳亢이라는 사람이 공자의 아들인 백어伯魚에게 “당신은 선생님께 남다른 가르침을 받은 바가 있겠지요?”라고 물었더니 백어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없습니다. 언젠가 마당을 지나는데 아버지께서 《시경詩經》을 배웠느냐고 물으시기에 아직 배우지 못하였다고 하니까 ‘《시경》을 배우지 않으면 남과 더불어 말할 수 없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경》을 공부하였습니다. 어느 날 예禮를 배웠느냐고 물으시기에 아직 배우지 못했다고 했더니 ‘예를 배우지 않으면 남 앞에 설 수가 없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를 공부하였습니다. 제가 남달리 받은 가르침이라곤 이 두 마디뿐입니다.” 그러자 진항이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나는 하나를 물어 세 가지를 알았다. 시詩를 알았고 예禮를 알았으며 군자君子는 자기 아들도 멀리한다는 것을 알았다.”

 맹자孟子 역시 자식을 직접 가르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남의 자식과 바꾸어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제자인 공손추公孫丑가 그 까닭을 묻자, 맹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아버지 쪽에서는 올바른 도리를 가르쳐 주었는데 배우는 아들 쪽에서 올바른 도리를 행하지 못하면 화가 나게 된다. 올바른 도리를 가르치고 나서 화를 내면 부자父子 관계가 나빠지게 된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올바른 도리를 가르치고 화를 내는 것은 올바른 도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되면 부자 관계가 나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자식을 바꾸어서 가르쳤다. 부자父子 사이에는 잘하라고 책망하지 않는 법이다. 잘하라고 책망하면 사이가 멀어지고 사이가 멀어지는 것보다 큰 불행은 없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 하지만 실상 해줄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무언가를 해 주고 싶다는 부모님들께는, 친구의 위치에서 질문하고 함께 탐구할 것을 권합니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던지는 일인데, 가장 쉽고도 기본이 되는 질문은 ‘어휘’의 의미에 대한 질문입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라디오를 듣다가, 길을 가다가 자녀가 잘 모를 것 같은 단어나 숙어가 나오면 뜻을 물어보십시오. 이때 아이에게 테스트한다는 인상을 주면 안 되고, 모른다고 해서 야단쳐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엄마 아빠도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서 물어보는 방법이 좋습니다. 

 질문을 던진 다음에는 반드시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에게 찾아보도록 하는 것이 좋지만 아이가 거부감을 가지면 부모가 찾아보아도 상관없습니다. 순우리말이 아니라 한자어라면 국어사전으로 끝내지 말고 한자사전까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영어 단어 역시 문맥을 통해 대충 유추한 후 넘어가지 말고 사전을 찾아 정확한 의미를 알아 보고, 합성어라면 어떤 단어와 어떤 단어가 어떠한 방법으로 묶였는지까지 확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약어라면 원 단어가 어떤 단어인지 알아야 하고, 그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모른다면 다시 국어사전을 찾아 정확한 의미를 찾아 확인합니다. 노래를 듣더라도 음정 박자에만 신경 쓰지 말고 노랫말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면서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 좋고, 영화나 드라마나 뉴스를 본 뒤에 그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좀 더 깊이 탐구해 보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3년 전부터 시험 기간에는 담임인 제가 청소를 합니다. 배려한다는 의미에서고, 담임도 학급의 일원이니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청소는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누구든 해야 하는 것임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교사는 지식을 전달해 줄 뿐 아니라 삶의 방법도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말보다는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진정 자녀가 공부 잘하기를 원한다면 공부가 즐거운 작업임을 보여 주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부모님들께 자녀들의 교과서를 함께 보며 지적 유희를 즐겨 보라고 권합니다. 교과서나 참고서는 재미없는 책이라는 생각, 교과서는 학생들만 보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시작입니다. 교과서는 어른들도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고 그 안에서 충분히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국민 교양 필독서로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현실에서는 입시를 위한 도구로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 중·고등학교 교과서는 건전하고 유능한 시민으로서 습득해야 할 자질과 도덕적 가치 및 윤리관을 담고 있으며 지식뿐 아니라 지혜를 키울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책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풍부한 사람일지라도 중·고등학교 교과서 내용 전부를 깊이 있게 알지 못할 것입니다. 교과서는 대학입시를 위한 책이아니라 국민 누구라도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인 것입니다.

 늦깎이 공부에 몰두한 사람 본 적이 있으신지요? 가끔 TV에 환갑이 지난 나이에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만학도들의 이야기가 소개되곤 하는데, 이구동성으로 너무 행복하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삶의 중요한 기쁨 중 하나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녀와 함께 공부하는 것은 아이들을 공부하도록 만들 수 있고 본인의 지식도 쌓을 수 있는 일석이조一石二鳥입니다.

 지금 당장 자녀들의 교과서를 펼쳐서 읽어 보십시오. 음악 교과서도 미술 교과서도 체육 교과서도 재미있고, 사회·지리·한국사·세계사·생물·지구과학 교과서는 물론 심지어 수학 교과서에서도 재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최고의 명문장만 엄선해 편집한 국어 교과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기술·가정 교과서도 일상생활에 유용한 정보들이 가득합니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이라는 괴물을 무너뜨리려고 억지로 한 공부였기에, 또 철이 들지 않았기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겠지만, 배경 지식이 갖추어져 있는 지금 순수한 지적 호기심으로 접근한다면 영화나 드라마 이상의 즐거움을 교과서를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먹는 밥이 맛있는 것처럼 함께 하는 공부가 재미있습니다. 가르치려 하거나 공부하라고 닦달하기보다 함께 공부하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탐구해 나간다면 아이들의 실력 향상은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이고 부모님 역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는 즐거움에 행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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