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승호 Mar 23. 2024

용서는 힘이 세다 2

 용서容恕가 최선의 방법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용서는 준법정신을 흐리게 하고, 게으름과 방종을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용서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개인의 안녕과 발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잘못을 저질렀을 때 처벌하고 제재를 가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중요합니다. 법이나 규율이 존재하지 않거나 관용만 베푼다면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고 우리 모두 불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가 최선의 방법이 아님에도,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고 불행을 가져올 개연성이 있음에도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가 메말라 고통 받는 사람들, 용서받지 못하여 가슴 졸이며 괴로워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구라도 잘못을 저지른 경험이 있으며, 앞으로도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용서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야단치거나 처벌하지 않아도 스스로 잘못이나 실수를 깨닫고 다시는 실수나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용서 받았을 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시는 실수하거나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 합니다. “너를 용서 않으니 내가 괴로워 안 되겠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이라는 노래 가사 아시지요? 이 노래처럼 용서는 타인을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용서받지 못한 사람만이 아니라 용서하지 못한 사람도 괴롭습니다.  

 첫 번째 담임을 맡았던 해, 종업식 직전에 아이들에게 담임인 저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였습니다. 모두 ‘감사하다’ ‘좋았다’ ‘내년에도 담임 해 주시면 좋겠다’라고 적었는데 한 아이가 용감하게도, 가끔 사소한 일에 욱하고 감정 조절을 못 하시는 것이 단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화나고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다른 선생님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고 정성을 기울였으며 좋은 선생이 되려고 나름 노력했거든요. 하지만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저 자신을 되돌아보니 그 학생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습니다. 이후 조금씩 노력하여 모든 일에 화내지 않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좀 더 친절해지려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더 용서하고 더 친절해지자 아이들은 제 앞에서 순한 양이 되어 갔습니다. 체벌하지 않아도, 얼차려 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아도 큰 소리 치지 않아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착하고 바르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용서가 가장 좋은 방법임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잘못한 것을 보고 못 본 척 지나치지는 않았습니다. 반드시 잘못을 지적하고, 학생답게 생활하자고 부탁한 뒤 용서해 주었습니다. 동시에 무언의 암시를 주지요. 내가 너를 용서한 것처럼 너도 누군가를 용서해야 한다고. 

 악은 또 다른 악을 낳고 선은 또 다른 선을 낳는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처벌은 또 다른 처벌을 가져오고 용서는 또 다른 용서를 불러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용서도 처음에는 어렵지만 습관을 들이면 어려운 일이 아니더군요. 그리고 용서가 최선의 방법이 아닐 수 있지만, 용서가 최선의 방법이라고 착각(?)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용서하고 또 용서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아들딸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그 잘못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하면서 성장해 갑니다. 그 과정에 교육이 필요한데,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교육 방법의 선택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아이들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 처벌과 응징만을 최선의 지도 방법으로 여겨 또 다른 방법을 고민하는 데 소홀했습니다. 저 역시 젊은 시절에는 학창 시절 은사님께 받은 대로, 또 주변의 다른 선생님들이 하는 대로 혼내고 처벌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처벌이 아이들의 마음은 물론 행동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벌은 선생님 앞에서만, 그 순간만 착한 학생으로 변화시킬 뿐임을 알게 된 것이지요. 

 체벌, 벌점, 폭언이 교실을 조용하게 만들고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 많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 근본적인 처방은 될 수 없음은 진즉 확인된 바 있습니다. 무조건적 처벌은 교육이 아니라 악을 잠시 감추는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처벌 받은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고 반성하기보다 처벌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여 분노하고, 처벌을 받았으니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교사와 학부모들의 인식 전환과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학교 현장에서 체벌이 사라진 것은 온몸으로 박수칠 일입니다. 학교에서 체벌이 사라지면 학교가 엉망이 될 것이라 우려했던 사람들이 머쓱하게 된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체벌이 사라진 학교는 지금 사랑과 행복이 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많이 변했지만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체벌이 사라진 그 위에 더 많은 공감과 용서와 이해와 사랑이 얹어져야 합니다.

 교육敎育은 가르치고 기르는 일입니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뿐 아니라 바람직한 인성과 체력을 갖도록 가르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입니다. 지식뿐 아니라 지혜를 가르치고,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는 활동입니다. 인간인 이상 너나없이 잘못을 저지르고 실수를 하면서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은 그 잘못과 실수를 통해 깨달음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일어나려면 처벌과 혼내기가 아니라 용서하고 함께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용서하고 용서 받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길러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몹시 화가 나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울 때 저는 이렇게 저 자신에게 타이르곤 한답니다.

 “용서하라. 마음과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너에게도 있지 않았느냐. 네가 이해하라. 너에게 상처 주었던 그 말, 분명히 마음에 있었던 말도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용서하라. 잘못했음을 깨닫고 미안하다고 말하려 하였는데 시간을 놓치고 그 뒤엔 어색하여 끝내 말하지 못한 경우가 너에게도 있지 않았느냐. 이해하고 또 이해하라. 용서하고 또 용서하라.” 

 용서는 힘이 셉니다. 용서는 또 다른 용서를 낳고, 그 용서가 평화와 행복을 가져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녀의 교과서를 읽는 행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