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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승호 Mar 24. 2024

자녀에게 집안일 시키세요 2

 8년 전 봄, 여느 해처럼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춥다고 투정 부리며 움츠리고 있는 사이에 봄이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온갖 생명들이 겨우내 꽁꽁 얼어 있던 대지를 뚫고 연약하지만 강인한 싹을 틔워 올리고, 나뭇가지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만들어 낼 준비하는 그때, 학생들과 함께하는 농촌 봉사활동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이들에게 봉사활동다운 봉사활동을 경험하도록 해 주고 싶은 마음, 진정 배움의 시간이 되는 봉사활동의 기회를 갖도록 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지요. 

 시내버스가 닿을 수 있는 곳의 주민자치센터에 전화를 걸어 담당자에게 배나무 과수원을 소개받았습니다. 농장 주인 아저씨께서는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띠면서 저와 학생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자그마한 호미 모양의 기구를 이용하여 배나무 껍질을 벗겨 내는 일이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학생들에게 농장 주인 아저씨께서는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오래된 나무는 껍질이 부르트는데 부르튼 껍질 사이와 나무에 낀 이끼 사이에 병원균과 벌레가 서식하니 농약이나 영양제를 살포할 때 효과를 높이기 위해 2년에 한 번 정도 껍질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설명을 들은 고 3 아이들은 고맙게도 옷을 벗어 부치고 나무의 거친 껍질과 이끼를 열심히 벗겨 내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입학 조건 중 하나인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교실에서 책과 씨름하느라 지친 마음도 풀고 신선한 봄의 향기도 맡으며 농부들의 수고로움을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한 개의 과일이 입 안에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방울이 필요한지, 얼마나 고된 노동과 수고로움이 필요한지를 생생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교실에서는 깨달을 수 없는,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웠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보람이 밀려 왔습니다. 교실에서 가르친 것 이상의 큰 가르침을 주었다는 자랑스러움, 좀처럼 하기 어려운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뿌듯함이 그것이었습니다. ‘들판의 풀은 자라기만 하면 강하게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을 온실에서 들판으로 내놓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온실 속 화초는 성장한 뒤 척박한 외부 환경을 이겨 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시련과 고통을 겪지 않고 자란 사람은 연약하며 향기를 내뿜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어려움에 부딪힐 기회를 주고, 그 고통을 이겨 내려 노력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대신 해 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야 하고 괴로움에 머리를 쥐어뜯는 모습을 미소 지으면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가 박수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듯,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땀 흘리는 노력 또한 박수받아야 합니다. 노력 없이는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습니다. 축구 선수 박지성과 발레리나 강수지의 일그러진 발, 레슬링 선수의 찌그러진 귀를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땀 흘리는 과정이 미래의 행복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일일 뿐 아니라, 현재의 행복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온실 속 화초는 성장 이후는 물론 온실 안에서 자라는 그 시간에도 사실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축구 선수의 고된 훈련이 미래의 행복을 위한 과정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훈련하는 그 순간에도 희열을 느낀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극한의 노력은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부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입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성장과 발전의 기쁨을 부모라는 이유로 빼앗아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부모님들은 아이가 쉽고 편하게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바보로 만드는 일입니다. 

 아들이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길 원한다면 땀 흘리며 헉헉거리면서 기진맥진하는 모습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바라볼 수 없다면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현명하고요. 아이를 믿고, 세상을 믿고 맡겨야 합니다.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면 고생할 기회, 쓰러진 이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 스스로 극복한 이후에 미소 지으며 땀 닦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연 치유력이 그것인데요, 옛날 우리 학교 보건 선생님은 작은 상처에는 연고를 바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에게는 자연 치유력이 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몸만 자연 치유력이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도 자연 치유력이 있음을 아이들을 보면서 확인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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