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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승호 Mar 26. 2024

선생님을 믿지 않으면 누구를?

 아주 오래전, 학생에게 합격 소식을 전하면서 목이 메어서 겨우 ‘합격했다’는 말만 하고 ‘축하한다’는 말도 못한 채 전화를 끊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를 완전하게 믿고 철저하게 따라 준 학생이었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보다 더 간절하게 합격을 소망했던 때문이지요. 사교육은 공부에 오히려 방해되는 것이라고 하였더니 곧바로 사교육을 그만 두었고, 국어사전을 친구 삼으라 했더니 곧바로 국어사전을 책상 위에 놓고 수시로 펼쳐 보았으며, 독서대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했더니 다음 날부터 독서대를 이용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반드시 12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고 예습을 철저히 하며 생각하는 공부를 하라 했더니 묵묵히 그대로 실천하였고요. 교사는 편애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편애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 학생에게 조금 더 관심과 사랑을 쏟았음은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믿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믿고 선생님을 믿고 자녀를 믿어야 한다는, 학생이 학교와 선생님을 믿고 따르면 학교와 선생님은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되어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공교육 붕괴를 우려하면서 교육부와 학교 당국, 그리고 선생님들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인정합니다. 학부모와 학생이 학교와 선생님을 믿지 못해 사교육을 좇아가는 상황은 안타까움 그 자체입니다. 공교육이 무너진 현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공교육의 붕괴가 사실이라면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학부모와 학생에게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열심히 지도하지 않는 선생님이 만약 있었다면 학생과 학부모님들이 믿고 맡기지 않아 선생님이 의욕을 갖지 못한 때문일 거라고 대신 변명하고 싶습니다. 믿고 맡겼다면 그 선생님도 열심히 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선생님들의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열정이 모자라지 않는데 왜 학부모님들은 학교를 믿지 못하고 선생님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선생님들의 열정을 빼앗아 버리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학교를 믿고, 선생님들을 믿고 맡겨 달라고 감히 부탁드려 봅니다.  

 학생을 사랑하지 않는 선생님은 없습니다. 짝사랑을 싫어하는 선생님만 있을 뿐이지요. 선생님 역시 감정이 있기 때문에 믿고 따르는 학생에게는 더 많은 사랑을 베풀게 되고 믿지 않고 따르지 않는 학생들은 신경을 덜 쓴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역시 학생 하기 나름인 것입니다. 

 “선생님, 우리 아빠는 동생만 예뻐하고 저는 미워해요”라고 말하는 학생에게 “그럴 리가 있겠느냐” 이야기해 주곤 했는데, 요즘은 “동생이 예쁜 짓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되묻습니다. “수고가 많지 않은 자에게 인생은 혜택을 베풀지 않는다”라는 호라티우스의 말을 들려주고 “너 스스로 예쁨 받기 위해서 노력해 보라”라고 충고하기도 합니다. 선생님도 인간인지라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을 보면 왠지 정이 가고 도와주고 싶지만, 노력하지 않고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 학생에게는 아무래도 관심이 덜 간다는 이야기도 덧붙입니다. 

 선생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점과 잘한 일에 박수를 보내고 감사함을 표현하여 선생님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는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의 말에 학생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줄 때, 그리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믿고 따를 때 선생님도 더 큰 사랑으로 지도하게 될 테니까요. 학부모들이 신뢰하지 못하여 선생님들의 열정이 약화되었는지, 아니면 선생님의 열정이 부족하여 학생과 학부모들이 사교육으로 발걸음을 돌렸는지 고민해 봅니다. 후자가 틀리고 전자가 옳다는 답을 내리고 싶은데…. 분명한 사실은 선생님에게 신뢰를 보내면 선생님들이 더 의욕을 갖고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지요.

 3년 전 여름, 홍도 가는 여객선에서 만난 섬에 사시는 할아버지에게 배멀미를 하지 않는 방법을 묻자 할아버지께서는  “배에 몸을 맡기면 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저에게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배를 믿고 몸에 힘을 빼면 됩니다. 위로 솟구치면 함께 위로 올라가고 아래로 내려오면 함께 아래로 내려오면 됩니다. 자전거 탈 때 움직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듯이 말이에요. 배를 믿지 못하고 반대로 힘을 쓰게 되니까 멀미가 나는 것입니다. 배를 믿고 잠을 자는 것도 배멀미를 하지 않는 좋은 방법이에요. 중요한 것은 믿음인 것이지요.” 

 선생님을 믿고 선생님에게 박수와 칭찬을 보내 주어야 합니다. 믿음과 격려와 칭찬이 좀 더 행복한 학교, 좀 더 신나는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잖아요. 그렇다고 모든 선생님에게 무조건적으로 박수 보내고 감사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잘못한 선생님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은 저도 절대 반대입니다. 착각에 빠질 수 있으니까요. 정말 감사하고 싶은 선생님에게만 감사의 뜻을 전하면 됩니다. 반드시 덧붙여야 할 말이 있습니다. 감사의 표현은 물질로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질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뇌물이고, 뇌물은 불행을 만들기 때문이지요. 감사 문자 한 줄, 감사 편지 한 통이면 충분합니다. 학기 중보다는 학기가 끝났을 때가 좋고, 졸업 이후가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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