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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승호 May 28. 2024

한자는 공부를 잘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개장수도 올가미가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작업에 필요한 준비와 도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가르침(배움)과 함께 독서, 탐구심, 성실함 등이 필요한데 거기에 한 가지 덧붙인다면 한자어의 음과 훈을 아는 능력, 곧 한자 실력입니다. 

 “책은 그것이 쓰일 때처럼 신중하게 읽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가 아니라 어휘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읽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한자문화권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한자입니다. 한자를 모른다고 일상생활이나 공부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한자를 아는 것과 비교하였을 때의 효율이나 즐거움 면에서 차이가 큽니다. 

 한글만으로 공부하는 것이 삽으로 땅을 파는 행위라면 한자를 활용하여 공부하는 것은 굴삭기로 땅을 파는 것과 같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한자 익히기가 선행되어야 하고 국어사전과 한자사전을 늘 가까이해야 합니다. 한자는 이해력과 암기력을 북돋우며 효율성과 흥미까지 높여 줍니다. 한자 실력 없이 공부 잘하기를 욕심내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일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입니다. 공부도 기초를 쌓는 것이 중요한데, 유럽 문화권에서 라틴어가 기초라면,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한자가 기초입니다. 젊은 날 책을 많이 읽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함께, 한자를 알지 못하여 공부를 재미없게 하고 어렵게 했다는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책 읽지 않는 것이야 제 탓이지만, 어휘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주지 않고 어휘를 한자로 풀어서 설명해 주지 않은 것은 선생님의 잘못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선생님들이 한자를 이용하여 설명해 주셨다면 좀 더 재미있고 효율적으로 공부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륙’과 ‘착륙’을 헷갈렸고 ‘국경일’과 ‘공휴일’의 차이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으며, 4분의 3과 3분의 4를 놓고 무엇이 ‘진분수’이고 무엇이 ‘가분수’인지 고민했습니다. ‘to 부정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명사적 용법’ ‘형용사적 용법’을 노트에 적기 바빴고, ‘방정식’과 ‘항등식’의 개념을 알지도 못한 채 암기한 공

식에 맞추어서 문제 풀이에만 급급했습니다. 공부는 재미없는 일이었고 성적은 제자리걸음이었으며 꿈이 오그라들기만 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떠날 이離’ ‘붙을 착着’이라고만 말해 주었어도 이륙離陸과 착륙着陸을 혼동하지 않았을 것이고, 국경일國慶日은 ‘나라 국國’ ‘경사스러울 경慶’ ‘날 일日’이고, 공휴일公休日은 ‘여러 공公’ ‘쉴 휴休’ ‘날 일日’이라는 사실을 누군가 귀띔만 해 주었더라도 확실하게 이해하여 구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분수分數는 ‘나눌 분分’ ‘숫자 수數’로 1보다 작은 숫자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었단다. 그러니 1보다 작으면 진짜 분수라는 의미로 ‘참 진眞’을 써서 ‘진분수’라 하고, 1보다 크면 거짓 분수라는 의미로 ‘거짓 가假’를 써서 ‘가분수’라 하는 것이야”라고 설명해 주었다면 삶도 공부도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돋보기를 쓸까 말까 고민하는 지금에서야 해 봅니다. 

 양말은 왜 양말일까요? 두 개가 짝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서양 양洋’ ‘버선 말襪’로 ‘서양의 버선’이기에 양말洋襪입니다. 마찬가지로 서양 의복이어서 양복洋服, 서양 음식이어서 양식洋食, 가벼운(간단한) 서양 음식이기에 ‘가벼울 경輕’의 경양식輕洋食입니다. 서양 의술로 만든 약이기에 양약洋藥, 병인년丙寅年에 서양인에 의해 일어난 어지러움(난리)이기에 ‘어지러울 요擾’의 병인양요丙寅洋擾이지요. 양洋배추, 양장洋裝, 양옥洋屋, 양주洋酒의 ‘양’ 역시 ‘서양’이라는 의미입니다.

 가장 고등한 동물군動物群으로 젖을 먹여 기르는 동물을 ‘먹일 포哺’ ‘젖 유乳’를 써서 포유류哺乳類라 하고, 달팽이·문어·조개 등을 ‘부드러울 연軟’ ‘몸 체體’를 써서 연체동물軟體動物이라 합니다. 곤충류·갑각류·바다거미류 등은 ‘마디 절節’에 ‘사지 지肢’의 절지동물節肢動物이지요. 지렁이·거머리 등은 이들

의 단면 모양이 고리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에 ‘고리 환環’과 ‘모양 형形’의 환형동물環形動物이고, 뱀이나 거북이는 ‘기어 다닐 파爬’의 파충류爬蟲類입니다. 충蟲은 꼭 벌레가 아니라 동물의 총칭입니다. 개구리나 도롱뇽 등은 ‘둘 양兩’ ‘깃들 서棲’를 써서 양서류兩棲類라 하는데, 물과 육지 두 곳에 깃들어 살아간다는 의

미입니다.

 불(화산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 암석이기에 ‘불 화火’ ‘이룰 성成’의 화성암火成巖이고, 물질이 쌓여서 이루어진 암석이기에 ‘쌓을 퇴堆’ ‘쌓을 적積’의 퇴적암堆積巖입니다. 일정한 차이로 숫자가 나열되었기에 ‘같을 등等’ ‘차이 차差’ ‘숫자 수數’ ‘나열할 열列’의 등차수열等差數列이고, 일정한 비율로 숫자가 나열되었기에 ‘비율 비比’의 등비수열等比數列입니다. 죽지랑을 사모하는 노래이기에 ‘사모할 모慕’의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이고, 죽은 누이를 제사 지내는 노래이기에 ‘제사 제祭’ ‘죽을 망亡’ ‘누이 매妹’의 제망매가祭亡妹歌입니다.

 교과서의 어휘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 쓰이는 어휘의 대부분도 한자어입니다. 이렇게 한자어가 중요함에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자를 멀리합니다. 이유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운 것도 절대 아닙니다. 영어 공부하는 시간의 10분의 1, 수학 공부하는 시간의 10분의 1만 투자해도 중학교 졸업 이전에 공부와 생활에 필요한 한자 1,800자를 완벽하게 익힐 수 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 학생들 대부분이 1,800자 정도는 알고 있고, 옛날 어른들도 2,000자 정도는 알았습니다. 

 부수 한자 214자를 외우고 나면 그다음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 214자를 이렇게 저렇게 조합하여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기에 한 글자 한 글자 따로 배우지 않아도 글자를 보는 순간 음音(소리)과 훈訓(의미)을 유추해 낼 수 있으니까요. ‘푸를 청靑’을 알고 ‘물 수(水=氵)’, ‘태양 일日’, ‘마음 심心=忄’ ‘쌀 미米’ ‘말씀 언言’을 알면 ‘물 맑을 청淸’ ‘날씨 맑은 청晴’ ‘감정 정情’ ‘자세할 정精’ ‘부를 청請’도 쉽게 알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쓰는 능력까지 갖추면 좋겠지만 읽는 능력만 갖추어도 괜찮습니다.  ‘반도’를 ‘반절 반半’ ‘섬 도島’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되고, ‘냉장고’를 ‘찰 냉冷’ ‘저장할 장藏’ ‘창고 고庫’로 생각할 수만 있으면 됩니다. 한자는 구구단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하고 필요한 도구입니다. 우리나라 글자인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며 익히기 쉬운 문자입니다. 그런데 쉽게 읽을 수 있게 되니 생각 없이 대충 읽어 내려가게 되고 그러다 보니 쉽게 잊어버리게 됩니다. 또 읽는 데 지장이 없으니 의미를 모르면서도 국어사전도 찾아보지 않고 대충 넘어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정확한 지식을 습득할 수 없게 됩니다. 재미를 느낄 수 없으며 실력 향상도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한자漢字, 쉽든 어렵든, 좋든 싫든 넘어야 할 산입니다. 구구단이 그러한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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