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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ane이다인이효진 Nov 24. 2020

미디어교육 전문가는 휴대전화 언제 줄 거예요

미디어 교육에 대한 질문은 언제보다는 어떻게로

20대 때부터 줄곧 들었던 말  

넌 애 정말 잘 키울 것 같아


이 말은 정말 나에게 족쇄 같았고 부담이 되었던 듯 하다. 소개받은 남자도, 주변 친구들과 동료들도 그렇게 말했다. 딱 우리 부모님만 빼고. 그리고 나는 스물 셋에는 결혼하고 싶었는데 서른 일곱이 되어서야 인연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여러 차례 연애를 하면서도 내 결혼 상대자는 “좋은 아빠”라고 믿었고 나에게 족쇄가 되었던 그 말을 함께 실천해 줄 “좋은 아빠”를 만나지 못해 결혼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구립 어린이집 8년 자원 봉사와 이후의 나의 커리어를 되새겨 보고 다른 이들이 했던 말이다. 어디를 가나 나는 아이들의 시선을 받았고 복되게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어른이였다.

아동학과에서 미디어교육을 석사로 마치고 새로 만들어지는 미디어 개발에 참여하거나 그 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처음 서비스와 처음 콘텐츠 개발에 오랜 시간 계란으로 바위에 부딪혀 가며, 고생한 것 남에게 고스란히 내줘 가며 바보 같은 시간을 십 년 넘게 보내왔다.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내 아이디어는 처음엔 주목 받지만 곧 있으면 누구나 흉내낼 수 있는, 대기업과 정부 지원금으로 활동했기에 아낌없이 나누어 주어야 하는 소소한 아이디어였다.

그런 내가 아이를 낳자 엄마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그래서 언제부터 아이에게 휴대전화를 주실 건가요?

였다.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는 당황했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가. 물론 교육자인 내 입장에서도, 비고츠키에게 감명 받아있으므로 늘, 근접발달영역(zpd) 내에서의 비계(scaffolding) 설정이 1차적인 교육이고 그러므로 이를 바탕으로 한 교육 환경 설정이 물리적이든 인적 환경으로든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에 특정 사물을 아이에게 허용하는 시점이 언제인가 하는 것은 대단히 상징적인 질문일 수 있다. 다음 순간, 다가오는 큰 불안감, 아, 이제 엄마가 되었으니 이런 질문에 더욱 잘 대답해야 하는구나, 하는 일종의 책임감이 엄습해 왔다. 어찌되었건, 20대 초반부터 받아왔던 두 가지 큰 공격, 너 영어 전공 아니잖아, 와 너 애 안 키워봤잖아 중에 후자에서 입장이 달라지는 시점이 된 것이다.


인생의 모토에 가능하면 탁상공론 금지, 되도록이면 언행일치, 모르면 몰랐지 알고나면 바로 고치기가 있는 나는 또 한번 책임감에 휘말렸다. 그리고 이제 내 말에 실릴지 모르는 무게감에 신중을 기할 때가 되었구나, 생각했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를 위해서도, 그리고 그런 나에게 어쩌면 의지하려하는 또래 양육자들을 위해서도, 다시 한번 변치않는 나의 철학의 성을 공고히 하고 일관성 있는 육아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디건 자리는 사람을 만드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 아이에게 휴대전화를 내 줄 것이냐, 이 질문은 사실 질문이 틀렸다. 적어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대답하기에는.

결혼하기도 한참 전, 2015년 1월에 나는 많은 학부모 앞에서 미디어 교육을 강연한 적이 있다. 30대 중반에 갓 접어드는 젊은 처자가 떠드는 소리에 귀기울이게 하는 데는 일종의 충격요법이 필요했다. 나는 시작하자마자 학부모들에게 양면으로 인쇄된 일종의 설문지를 나눠주고 자신의 상황을 체크해 보게 했다. 한 면은 자녀의 상황을, 다른 한 면은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으로 가득차 있었다.

우화 중에 엄마게가 자신은 옆으로 기어가면서 아기게에게 똑바로 기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미디어 조기 노출과 오남용에 대한 성토대회라도 할 요량으로 잔뜩 상기되어 모였는데 평상시 자신은 휴대전화를 마음껏 사용하면서, 본인은 게임도 하면서 아이에게 못하게 하고 있는 상황을 상기시켜주자 무척 당황해 했다.

그로부터도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하지만 5년이면 IT 트랜드가 홀딱 뒤집어지고도 남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제 휴대전화는 필수품이 되었으며 1인 1pc 시대가 도래해 격세지감이더라, 하는 이야기는 1인 1폰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 스피커와 함께하는 일상이 도래했다.

이 말은 아이들에게 더 이상 디지털 미디어를 노출시키지 않을 방법도, 이유도 없어졌다는 뜻이다. 적어도, 이들이 살아갈 우리가 없는 미래 세상에서는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아이들이 살아남기도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이다. 언제 노출할 것인가는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난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떻게’의 세부 사항에서 다시 우리는 ‘언제’를 만날 것이다. 다른 단계의 ‘어떻게’를 계속 적용하게 될테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시점에서 ‘언제’라는 질문은 틀렸다.

조금 다른 예일 수는 있지만, 친척 이모가 자신의 아이에게 5,6살이 되도록 사탕 캐러멜 초콜릿을 전혀 안 먹이고 자신은 건강한 육아를 한다고 내세운 적이 있다. 유기농 사탕 한 알을 선물로 주었다가 나는 크게 혼이 났고 아이는 이미 입에 넣은 사탕을 뱉어내야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결국 초등학생이 되어서 극심한 아토피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뒤로 미룬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미디어 노출이 긍정적이기만 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한 면역력이며, 궁극에 가서는 미래 교육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고력 교육이라는 말을 또래 양육자들에게 건네고 싶다.




나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내 휴대전화를 수시로 소독했다. 그리고 달라고 할 때 내어 주었다. 지금 18개월이 된 아이는 휴대전화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집에 어딘가 놓여있는 휴대전화를 발견하면 집어서 주인을 찾아주고 블루투스가 연결되지 않은 차 안에서 가끔 음악을 듣게 되면 잘 들리지 않는다고 전화를 움켜쥐고 있을 때가 있지만 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지 않는다. 화상 전화 배경음이 나오면 신나서 뛰어와 할아버지 할머니와 화상 전화를 하고 자주 못 만나는 사촌 사진을 보여달라고 조를 때는 있어도 휴대 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중독자 엄마가 전화로 사무를 볼 때가 많은 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전화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 매거진을 시작하면서, 나는 좀 부끄러운 내 이야기도 솔직히 써내려갈 작정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교육을 오랫동안 했지 양육은 처음인 아직은 새내기 엄마다. 부모 상담과 행동 수정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확실한 건 양육은 교육과 다르다. 다만, 나에게는 확고한 교육적 철학과 신념이 있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려고 한다.

이 매거진에서는 매체 활용 교육, 미디어 교육의 경험을 가진 엄마의 양육 과정을 같은 고민을 가진 양육자들과 나누려고 한다. 양육에 정답은 없다. 그리고 나역시 완벽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가야할 방향은 알고 있으니, 독자들과 함께 찾아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미디어 교육 서비스를 만드는 엄마의 양육은 어떤 양육일지 궁금하고 의논하고 싶다면 매거진을 계속해서 일독해 나가주기를 권한다. 이제부터는 미디어를 중심으로 ‘어떻게’에 관해 나와 큰 아이, 그리고 곧 태어날 둘째 아이와의 일상 속에서 풀어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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