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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디D Jun 17. 2022

넌 언제 력사 생각이 나?

220310

친구가 " 언제 력사 생각이 ?"라고  물어서 "머리 감을 "라고 대답했다.


력사가 아프고 나서 쓰던 바디샤워와 샴푸가 있다. 력사만 그걸 쓰고 나는 다른 걸 썼던지라, 력사가 씻고 나오면 항상 머리에서 그 샴푸 향기가 났었다.


력사가 가고, 어떤 것들은 정리하고  어떤 것들은 남겨 놓았는데, 저 샴푸가 나에게 왔다. 정말 어쩌다 보니, 나에게 왔다. 오도카니 남겨진 저것을 버릴 수도 없고, (좋은 샴푸 바디샤워인데, 아까운 건 아까운 거니까...) 쓰던 거라 누굴 줄 수도 없으니, 뭐, 내가 써야지 라는 심산이었던 것.


한동안 안 쓰다가 다른 샴푸 등이 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머리를 감을 때마다 력사 생각이 난다. 어떤 행동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왜 구름 뭉게뭉게 안에 사람 얼굴 떠오르는 그런 거? 아... 력사냄새네. 라고 생각한다. 그뿐이다. 거의 매일 씻는데 머리 감으면서 우는 것도 이상하고-_- (눈물이 나는 것도 아님)


어떤 향이 력사를 떠올리게 할 꺼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우린 워낙 향수를 자주 쓰는 사람들도 아니고 했으니.... 그러니 정말 참 향이라고 하는 건 신기하기도 하지.


여튼, 저 질문에 대답하면서, 내가 력사 생각을, 력사가 있을 때보다 더 자주, 많이 하는구나. 라는걸 알았다.


뭐, 그랬다. 그리고, 이런 개떡 같은 순간을 력사가 맞이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그 개떡 같은 순간에 같이 욕할 수 없어서 아쉽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누구나의 인생에 숨도 못 쉴 만큼 괴로운 순간은, 분노하는 순간은 , 슬픈 순간 안타까운 순간은 당연히 나타난다. 하지만, 버텨보았음 좋겠다.  더 좋은 날이 올 거라서가 아니라, 그 순간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고, 내 옆의 사람들도 혼자가 아니었으면 해서다. 친구들과 서로서로 잘 버티자고, 살아내자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오늘의 순간들에 부디 많은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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