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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경별진 Nov 18. 2024

우리는 모두 아이였고, 노인이 된다

요즘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단어로는 ‘혐오‘가 있다. 혐오의 뜻은 ‘싫어하고 미워함’이라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한국 사회에서 서로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훈훈한 기사나 좋은 글이 올라오면 ‘인류애가 살아난다.’라는 말을 할 정도이다.


나 역시 부정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 거부감을 주는 사람들을 생각하거나 보게 되면 그런 마음을 갖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벌어진 일을 들음으로 인해서 내 마음속에도 ‘혐오’가 자리 잡는 것은 원치 않는다.


한 사람에게 벌어진 일로 인하여 모두가 나서서 싫어하고 미워하게 되는 이런 현상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정상적이지는 않다.


누군가의 공감을 바란 일을 무의식으로 공감해 주면서 내 안에서 일반화시키는 작업을 하게 되면 어느 순간 색안경을 쓰게 된다.


사실, 내가 누군가를 싫어하는 단계로 가기까지 여러 번 나를 자극하고 싫어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혐오라는 단계까지 가려면 엄청난 단계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당한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우리의 의식은 어떤 부류를 단체로 한 순간에 혐오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당연히 살인자나 범죄자는 그에 마땅한 시선을 받을 수 있다.


아무튼, 이렇다 보니 길을 가다가 아이들을 봐도 좋지 않은 눈으로 보게 되고, 노인을 봐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게 된다.


아이와 노인은 어쩔 수 없이 부족함이 있다. 아이는 배우려고 태어났고, 우리 윗세대 노인들은 대부분 배움 없이 자라왔다.


우리 중간세대는 수많은 정보와 넘치는 교육으로 어떤 수준에 대하여 알고 있다. 지적인 수준, 인성의 수준 등등 말이다.


그렇다고 이 또한 일반적이라고 할 수 없다. 아직도 배움이 부족한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경계는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열렬히 서로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살인, 혐오, 왕따 등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지 않은지. 아니면 그런 글이나 게임, SNS, 유튜브를 재미로 계속 찾아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노키즈존, 노아줌마존, 노타투존, 노노인존 등등의 NO 타이틀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포함되지 않을 사람들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언제나 2030일 수 없다. 이런 무의미한 혐오로 인해서 사람들은 서로를 위축시키고 서로를 피하고, 미워하게 된다.


피해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점점 마음을 닫게 되고, 죄를 진 것도 아닌데 눈치를 보게 된다.


우리는 모두 아이였고, 또 노인이 되어간다.


성장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우리는 많은 일을 겪는다. 그런데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겪게 되는 것 같다. 단지, 아이여서. 아줌마여서. 노인이어서 말이다.


물론, 특이한 사람들도 많다. 뉴욕의 길거리만 가봐도 독특한 사람들이 많고, 강도도 많다. 하루에도 몇십만 명이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남편은 가끔 한국 노래를 들으면 “한국인의 한”이 느껴진다고 한다. 우리는 ‘한’이 많은 민족이다.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 역사를 봐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지금까지 살아낸 민족이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는 너무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에 구미 라면축제에 다녀왔다. 경북에는 처음으로 가봤는데, 내 인식과는 너무 다른 경험을 했다. 말투는 세지만 친절하고, 열려있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느꼈다.


세 가지 일이 있었다. 한 번은 서서 공연을 보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옆 벤치에 앉아 나를 보면서 “더운데 여기 앉아서 봐.”라고 하신 일.


두 번째로는 일행과 라면을 먹고 나서 그릇 놓는 곳이 어디인지 이야기하고 있는데, 옆에 분이 “뒤에 놓는 곳이 있어요.”라고 알려주신 일.


세 번째로는 호두과자를 사 먹으려는데, 가격이 쓰여있지 않아서 “얼마지? “라고 했더니 옆에 분이 망설임 없이 ”3천 원이요. “ 라며 알려주신 일.


이 모든 게 하루에 일어난 일이다. 서울에서는 내가 뭐라고 하던지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또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도와주지 않는다.


나는 미국도 아닌, 한국에서도 스몰토크가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느끼고 좋은 인상을 얻게 됐다.


회사 점심시간에 가끔 버거킹을 간다. 그곳은 1호선 신설동 앞이라 노인분들이 많다. 어느 날은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있는데 한쪽 손은 못 쓰시고 한쪽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은 걷기 불편한 80대 할아버지가 버거킹 문 앞에서 직원을 애타게 불렀다.


직원은 나가보더니 안으로 들어와서 주문을 하시라고 하고는 다시 매장으로 들어왔다. 하필이면, 점심 피크 시간이라 할아버지를 도와줄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주문을 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내내 문 앞에 서계셨다. 우리는 주문을 마치고 할아버지 주문을 대신해 주기로 했다.


할아버지는 현금 13,000원을 주시며 아무거나 시켜달라고 하셨다. 매장에서 드실 건지, 포장하실 건지 물어봤더니 “몸이 불편해서 못 들어가요. 포장으로 해주세요.” 하셨다.


우리는 카드로 결제를 한 후에 남은 현금을 다시 돌려드렸고, 햄버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할아버지에게 건네드렸다.


그리고 한참 버거를 먹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잘 걷지 못하셔서 인지 겨우 역 앞으로 가셔서는 역 앞 난간에 서서 감자튀김을 하나씩 꺼내어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봤다. 콜라도 야무지게 드시는데, 배가 많이 고프셨던 것 같다.


매장 안으로 들어와서 편하게 드시면 좋겠지만 한 손은 불편하고, 한 손은 지팡이를 짚어서 쟁반은 들 수 없을뿐더러 다 먹고 나면 컵이랑 쟁반을 치울 수도 없다.


그리고 매장에 들어왔을 때의 사람들의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차라리 밖에 서서 먹는 게 마음 편했을지 모른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아무도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같이 있던 직원은 이런 말을 했다. “저분은 평소에 가족들한테 잘 못했을 거야.”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에게 그런 말까지 하다니. 너무 야속하게만 들렸다. 듣는 내가 다 마음이 아팠다.


내가 노인이 되어 도움이 필요할 때, 나를 도와줄 젊은 청년들이 있을까. 생각하게 됐다.


한 번은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팡이를 짚은  걸음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땀을 뻘뻘 흘리며 탔는데, 마침 노약자석 자리가 꽉 찼다.


할아버지는 가운데쯤 서려고 자리를 이동했다. 그 순간 할아버지가 오는 것을 본 앉아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눈을 감아버렸다. 그들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에게 그 정도의 배려와 양보를 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나 역시도 힘들고, 겨우 자리에 앉았을 때는 양보가 쉽지 않으리라. 또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의무도 아니기 때문에 자유가 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 마음의 여유가 없다. 매일 이리치이고, 저리 치인다. 또 너무나 잘 참는다. 너무 잘 참아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다.


이런 와중에 혐오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우리나라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한국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도우면서 살아간다면 세상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도 충분히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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