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의 메커니즘은 어떻게 보면 간단합니다.
요새 삶의 형태가 많이 바뀌면서 철학적 고찰을 자주 하게 되면서 얻은 결론입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결국 '돈'이겠죠.
특히나 2024년 현재 완전한 선진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과 같이 자본주의가 성숙기에 들어간 사회는 너나 할 것 없이 심한 고충을 겪는 것이 필연적인 현상으로 보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는 돈을 버는 것입니다. 돈을 번다는 것은 결국 가치의 교환입니다.
1) 노동력을 모아서 응집해 다 같이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나누는 노동소득
2) 커피, 치킨, 강의, 컨설팅 등을 팔아 가치를 교환해서 얻는 등가교환식 자영업 소득
3) 기업이나 동산/부동산 등 유동, 고정 가치에 자본을 투입해 발생한 이익을 얻는 자본소득
어떤 형태이든 본질은 사회에 특정 가치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방식이죠.
즉 본질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떠한 가치만 제공하면 된다는 것이며,
다시 말해 지속가능한 특정 가치만 제공한다면 소위말하는 '먹고사는 것'에는 지장이 없게 된다는 결론입니다.
히지만 인간은 모두 다른 유형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쪽으로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죠.(국영수 공장형 시스템의 결과물일지도요)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성숙기에 진입한 한국의 대다수가 방황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대는 20대 나름의, 30대는 30대 나름의, 그리고 40대도, 50대도, 끝없이 다른 형태의 방황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방황의 본질은 결국 적합한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과 예상치 못하게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예상치 못한 직업 혹은 직무의 변화, 예상치 못한 퇴직, 예상치 못한 사업의 실패, 투자실패, 시험 낙방 등등.
갑작스러운 사고처럼 발생하는 일로 인한 상실감 때문에 스스로를 무가치한 존재로 규정하는 상황까지 오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특유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원석 같은 가치를 발견해 내는 것이 우리 인생의 중요한 미션입니다. 다만 그 가치의 형태가 시대상에 부합하느냐 아니냐의 '운의 영역'도 분명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므로 논하지 않겠습니다.
요새 돈돈돈돈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자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자본주의의 표면적인 핵심이자 원료니까요. 하지만 거기에서 관점을 바꿔, 돈돈돈돈 버는 일에 매몰되고 집중할 것이 아닌 내가 사회에 알맞은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향한 탐구가 중요합니다. 사회가 원하는 가치를 제공한다면 당연히 사회는 응답할 것이며 그 후에 돈은 친구로 줄줄이 따라오게 되는 구조. 그것이 자본주의의 메커니즘 속성입니다.
이만큼 노력하는데 사회가 몰라준다. 열심히 하는데 잘 안된다. 자신이 다른 높은 가치를 갖고 있는데 이를 못 찾고 사회에 낮은 가치를 주는 일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 혹은 줄 수 없는 가치에 동경하여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찰이 필수적인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한국사회가 자본주의를 도입한 지는 고작 10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레이달리오의 '변화하는 세계 질서'라는 책에서 언급된 바를 보자면 모든 사회 시스템(크게는 국가에서부터 작게는 작은 제도까지)은 사이클 이론을 적용할 수 있고 이 사이클 이론은 쉽게 말해 '태동-성장-성숙-쇠퇴'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재시점의 한국사회는 성장에서 성숙단계로 가는 시점이 아닐지 조심스럽게 판단해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 번도 본적 없는 세상을 매일 아침 보고 있고 앞으로도 미지로 점철된 그런 세계를 매일같이 마주할 것입니다. 그러니 잘 모르고 어설프고 실수하고 실패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닐까요?
작은 사이클의 동요에 너무 스스로를 문책할 것도, 자책하고 슬픔에 빠질 것도 없습니다. 본질로 돌아가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내가 세상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명확히 있는지, 없다면 찾으면 되고 있다면 강화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본주의 사회는 아주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