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활의 매력에 빠져 열심히 국궁장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활의 강도와 화살의 각도 그리고 손과 시선의 위치, 그리고 타이밍. 모든 것들이 맞아떨어져야 명중에 이르고야 마는 매력이 있는 행위였습니다. 재밌는 점은, 똑같은 연습 조건으로 활을 쏜다고 해도 어느 날은 멀리 나아가지만 또 어느 날은 택도 없는 사정거리를 보여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본능적으로 날씨 탓이나 바람의 방향 등을 원인으로 삼곤 했습니다.
조금 익숙해질 무렵이 되니 깨달았습니다. 활의 본질은 ‘무기’이며 무기라는 것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스스로를 보호해 줄 유일한 동반자라는 사실이죠. 그렇다면, 환경 탓 날씨 탓을 한다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행위가 되는 것일 겁니다. 왜냐면 날씨 때문에 내 목숨을 잃었다고 한탄해 봐야 이미 떠나간 배이며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고 난 후 소모적 뒷북 밖에 되지 않는 판단일 테니까요.
전쟁사를 읽으면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중에서 저에게 가장 와닿는 말은 손자병법 제5편에도 언급되는 ‘전쟁은 기세다’라는 말입니다.
뛰어난 장수의 기본조건은 이 ‘기세’를 조성하고 잘 다룰 수 있는가로 꼬집고 있습니다. 즉 어차피 병법이나 전술의 훈련은 다들 목숨이 걸려 절박하니 도긴개긴이요, 실패의 탓을 외부 작용에서 찾지않고 내부의 ‘기세’ 부재에서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를 일상생활에 적용하여 쉽게 보자면 조직생활에 적용할 수도 있겠지만 더욱 개인적인 삶에 적용하자면 결국에는 사소한 일상도 모든 것은 기세요, 마음가짐이라는 것이 되겠습니다.
읽었던 책중에 최근 가장 흥미롭고 몰입해서 읽었던 책으로 '빅터 프랭클'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이라는 심리학자이자 의사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직접 겪은 일을 기록한 실화 기반의 수기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해당 수용소에서 글이나 말로 담기에도 어려운 심한 행위를 한 독일군이나 독일에 대한 욕설이나 증오, 적개심, 비판이 기록된 책이 아닌, 수용소 내 유대인 개개별의 심리적 변화를 의사의 입장에서 지극히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해당 책에서 언급되는 내용 중 눈을 사로잡은 내용이 있습니다. 수용소 내에서 인간으로서 도저히 견디기 힘든 일들을 매일 겪다 보면 사람이 희망을 잃게 됩니다. 우리야 1945년에 2차 세계대전이 종전이 되었다는 결말을 알고서 정보를 접하지만, 당시 상황에 처했던 유대인들은 대체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는 그저 영겁의 절망뿐인 상황 속에서 머리카락보다 얇은 희망을 붙잡고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지독한 고통 속에 인간이 끈을 놓아버리면 아무것도 먹지도, 자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누워서 자신이 가진 담배 몇 가치도 모두 다 태워버리고, 삶의 의미를 상실해 가는 소멸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때 프랭클 박사가 한 행동은 수용소 인원 한 명 한 명에게 삶의 의미 즉 마음가짐의 전환을 줍니다. 작은 일들에 의미를 주고 목적성을 부여하고 하나씩 성취하고 미래에 사랑하는 이를 다시 볼 날을 그리며 마음의 기세와 희망을 높여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게 만듭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미지의 전쟁이 끝나고 남은 수용소 인원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죠.
활시위를 당기는 간단한 상황에서도, 인생의 중대사를 결정짓는 무거운 상황에서도, 또는 어쩌다 마주한 상황에서도, 모든 것은 마음가짐이요 ‘기세’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강하고 의연하고 부드럽고 도도하며 깨끗하게 혼연의 길을 묵묵한 기세로 가다 보면 모든 일은 자연스레 해결되지 않을까 합니다.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