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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Kim Aug 01. 2020

이상한 가족 2

아빠 데미안편


데미안. 아이들의 아빠는 다혈질에 이기적이었고, 마마보이에다가 변태 같은 성향을 가진 쫌생이이자 찌질이었다.


원래 대형마트 울월스에서 일을 하다가 마흔이 넘은 늦은 나이에 대학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수학선생님이 되고싶다고 했다.


내가 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그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아이들이 유치원 가 있는 시간에 나는 아침 일과를 마치고 내 방에서 공부 중이었다.


그런데 문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음~~~ 


아~~~


헉 헉 헉




?????????????????????????????????????


무슨 소리지?




처음엔 누가 비명을 지르는 줄 알고 뛰어나가려고 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신음소리였다.


내가 집에 있는 줄 뻔히 알면서 자기 공부방에서 야동을 볼륨 최대로 해서 보는 건 무슨 수작이지?


아... 저 대머리 놈 진짜 역겹다.


공부방으로 뛰어가서 "What the fuck are you doing?"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똥이 더러워서 피하기로 했다. 집에는 아저씨와 나 둘 밖에 없으니까 무슨 변이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에 그를 자극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그 뒤로 나는 그런 소리를 3번 정도 더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집을 뛰쳐나왔다. 




내게 이 집은 포근한 쉼터가 아니라 감옥 같은 곳이었다.






오페어는 원칙상 먹을 음식과 편히 쉴 수 있는 집을 제공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이 적은 것인데 나는 사실 이 집에 살면서 음식을 제대로 제공받아본 적이 없다. 




장 보는 것은 데미안 담당인데, 같이 슈퍼에 갔을 때 내가 원하는 것을 넌지시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러면 그는 못 들은 척 무시하거나, 안된다며 단칼에 잘랐다. 




우리 집은 주방이 아주 작은데, 구석에 작은 식탁이 벽에 붙어있다. 1~2인용이다. 단 한 번도 가족과 다 같이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




이 식구들은 요리를 전혀 못했다. 


내게 밥솥에 밥을 안치게 하고, 브로콜리와 당근을 썰어 스팀기에 찌게 했다. 


그렇게 우리의 식사가 완성된다.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매일 먹었던 군만두가 차라리 낫겠다.










아이들의 할머니, 즉 데미안의 엄마는 구세주와 같았다.


매일 저녁 아이들을 위해 간단하게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요리하셨다.


가끔 우리가 먹을 고기도 여분으로 싸주셨는데 그때 할머니는 분명히 내게 가족들과 다 같이 나눠먹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집에 가서 보면 데미안이 눈코 뜰 새 없이 그 많은 양의 고기를 혼자 다 먹고 치운 뒤였다. 


돼지 같은 새끼.... 진짜 서러웠다.


진공청소기 같은 놈이 눈앞에 보이는 음식은 다 먹어치운다.


심지어 내가 해놓은 음식까지도 내게 물어보지 않고 다 먹었다.


먹는 것 가지고 치사하게 굴기 싫어서 그냥 참았다. 




꼬르륵꼬르륵 배가 울고 난리다. 굶주린 나는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초콜릿(팀탐)이나 과자를 먹어댔다.


그 달콤 짭짤한 것들이 내 허기짐뿐만 아니라 우울함까지도 달래주었다.





넘쳐나는 집안일에, 괴팍한 아이들 돌보느라 찌들 때로 찌든 날이다.


나는 주 40시간 일을 하기로 계약을 했는데 주어진 시간보다 업무가 많으니 잔업의 연속이다. 그런데 자꾸만 요구 사항이 늘어난다.


데미안이 내게 장을 봐달라는 것이다.


본인들이 하던 일까지도 내게 다 넘기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정말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가 내 요구를 단칼에 자르듯이 나도 싫다고 했다.




재앙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내가 거절한 것에 대해 화가 났지만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건덕지를 찾기 위해, 내가 잘못한 것이 없나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아직도 자고 있는 막내 그레이스가 그의 눈에 포착되었다. 그때 시각 아침 8시 45분이었다.


그는 하이에나처럼 그것을 덥석 물고 늘어졌다. 




"왜 그레이스가 아직까지 자고 있는 거야!?!?!?!?!?!?!?!?"




목요일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지 않는다. 대신 발레학원에 갔다가 바로 앞 도서관에서 매주 아이들을 위한 스토리 타임이 열리기에 그곳으로 간다.


그레이스가 늦잠을 자도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런데 그가 아이들 앞에서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너무 당황스럽고 화를 내는 그가 무서워서 Sorry라고 했다. 뭐가 미안한지도 모른 채..




그랬더니 내 약한 모습에서 더 힘을 얻었는지 갑자기 더 언성을 높여 


미안하면 다야?라며 나를 윽박질렀다.


이 아이들은 안 그래도 나를 무시하는데 지금 이 아이들의 아빠가 아이들 앞에서 나를 이렇게 대한다. 


아빠가 애들에게 이렇게 본보기가 되어 큰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 어떤 식으로 나를 대하면 되는지.^^


너무 수치스러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제 빨아놓은 그레이스의 발레복이 여전히 축축했다.


그걸 놓칠 리가 없던 그는, 아직 분이 덜 풀렸는지 2차 공격을 했다.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이다. 분명한 것은 나는 이런 취급을 받아도 될 만큼의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그레이스가 수업을 받는 30분 안에 벨라와 함께 슈퍼마켓으로 달려가서 그 짧은 시간 안에 장을 봐야 했다. 


마음이 너무 급했다. 이것저것 대충 필요한 것들만 사서 금액을 지불하려 했는데 


데미안이 내게 준 금액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여분의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또 발레가 끝나고 나면 아이들에게 간식거리를 사줘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 본 것 중 몇 가지를 빼서 돈을 겨우 맞췄다.




정말 되는 것 하나 없는 날이다.


마음이 어지럽고, 속상하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만두고 싶다. 이 거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나도 다른 곳에선 충분히 존중받고 사랑받던 존재였는데... 지금 여기선 자존감이 바닥을 깨고 들어가서 영영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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