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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Kim Aug 17. 2020

지식과 경험의 중요성

호주에서 바리스타 수료증따기

다른 호스트 가족을 찾는 대신, 현재 내게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잘 사용해 일상에 색다른 변화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하는 일의 장점을 생각해보니 낮에 남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 있는 시간 중, 목요일을 제외한 평일 10시부터 4시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그래서 충분히 투잡을 뛸 수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나는 지금 몹시 지루하다!!

  

호주에서 알게 된 마이클이라는 외국이름을 가진 한국오빠의 도움으로 내 CV(영문 이력서)와 커버레터(간략한 자소서)를 완성해 많은 양을 인쇄했다. 눈에 보이는 카페나 레스토랑에 다 들어가서 전단지 돌리듯이 ^^ 인심 좋게 뿌리고 다녔다.


아하, 그런데 나는 지금 커피 만드는 방법도 모른다. 카페에서 일해 본 경력도 없다. 영어도 별론데.

그럼 사장이 뭘 보고 날 뽑을까?


허허;; 그러게;


그래서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처럼 급히 커피 배울 방안을 모색하다가, 때 마침 수업료 반값 세일하는 학원을 발견했고, 바로 신청했다. (내게는 싼 것을 기가 막히게 찾는 더듬이가 있다.)

원데이 클래스고 수업료는 99불이다. 내가 피땀 흘려 모아둔 돈이 조금 있었는데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경험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이야!


커피학원을 눈이 빠져라 찾아다녔다. 잘 모르는 골목길에 위치 해 있어서 헤매고 헤매다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문을 열자 진한 커피 향이 코를 자극한다. 여러 대의 에스프레소 커피머신들이 나란히 진열되어있다. 마치 공장을 연상케 한다. 10명의 수강생이 먼저 와있었다. 


수업은 당연히 영어로 진행되기에 나에게는 여전히 도움이 조금(많이) 필요했다.....

내겐 강한 생존력을 위한 탐지기도 내재되어있다. 저기  끝에 눈이 왕방울만 한 예쁜 동양인 여자가 한 명 서 있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여자의 옆으로 가서 말을 걸었다.


앗싸! 한국인이다. 3년간 호주에 살았다는데, 나보다 영어 3배는 잘하겠지? 히히 

예상했던 대로 여자 선생님의 억양과 말하는 스피드를 다 따라잡기는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언니가 친절하게 다시 한국말로 알려줬다.

이론 수업 후, 우리는 직접 커피 만들기를 시작했다.  커피의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플랫화이트, 라테, 모카, 마키아토 등 뭐가 이렇게 많은지 책에 쓰인 레시피를 보고 하나하나 만들어보았다.

선생님이 내게 우유 거품을 잘 만든다고 칭찬해주셨다. 다음으로는 라테 아트도 배워서 연습을 했다. 

또 선생님이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초반부터 칭찬을 몇 번 받았더니 나는 고래가 되어 춤을 추기 시작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실력을 잃어갔다. 그 뒤를 이어 흥미도 잃고 자신감도 잃었다.


진도가 고속도로 주행하듯 빠르게 나간다. 머릿속엔 여러 종류의 커피와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가 한데 뒤섞여 내 뇌를 이리저리 꼬고 있었다.  이쯤 되니 내 고질병이 또 슬슬 올라온다.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와 울렁울렁 거리는 속이 소리친다. '영어 싫어!!!!!!!!!!!!!!!'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왔다. 대망의 필기시험이다. 문제도 영어고 당연히 답도 영어로 적어야 한다. 영작 시간이니 뭐니?

 이것을 제출해야만, 나는 수료증을 받을 수 있다.

 

스트레스에 눈 앞이 깜깜해졌다. 종이를 씹어먹을까^^

나 99불 버린 거니~ 

좌절하고 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영어 잘한다고 생각했던 사람 몇 명도 답을 적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었다.

비단 영어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문제가 어려웠나 보다.


선생님 퇴근시간은 다가오는데 쉽사리 답을 적지 못하는 이 불쌍한 중생들을 안타깝게 여기셨는지

아주 화끈한 돌발행동을 하셨다.

우리에게 답지를 넘겼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 듯이 답을 휘갈겨 썼다. 어쨌든 채점은 선생님이 그 자리에서 하는 것이니 수능처럼 그렇게 까다롭진 않았나 보다.

선생님의 부정행위 덕분에 나는 당당하게 수료증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내겐 바리스타 자격증 비슷한 것이 생겼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배웠기에 깊이있는 지식은 아닐지라도 기본적인 것을 안다는 이 사실에 굉장한 자신감이 생겼다.

지식과 경험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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