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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Kim Aug 24. 2020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이는 세상

호주 카페에서 트라이얼

약속대로 8시까지 카페에 도착하기 위해선 가족들의 협조가 필요했다.

할머니가 벌린 일이니ㅋㅋㅋㅋㅋㅋ 아들과 며느리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를 도와줘야만 했다.

보통 8~9시 사이에 내가 도보로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줬는데 오늘은 7시 30분에 데려다줬다. 아이들의 아빠 차량으로. 세상 편하다 ^_^


일단 오전 업무는 잠깐 미루고 카페까지 걸어갔다.

오늘 카페에서 내가 2시간 동안 어떻게 하냐에 따라 내 미래가 달려있다. 

최근 새로운 장소, 사람들을 많이 만나온 덕분에 이전만큼 떨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떨렸다.


할머니와 함께 걸어갔던 길을 나 혼자 걸었다. 정확히 15분이 걸렸다. 

카페에는 사장님과 사모님 그리고 3명의 백인 직원들이 미리와 있었다.


사장님의 이름은 토니라고 했다. HOT 토니처럼 생기지 않았다 당연히. 

미안하지만 정말 그 이름이 안 어울린다. 

군인을 연상시키는 숱이 많은 까만 까까머리를 하고 그에 깔맞춤이라도 하려는듯 숱 많은 까만 눈썹을 가졌다.

그리고 키와 체격은 조금 왜소하다. 그에 반해 아주 우렁차고 강인한 목소리를 가졌다.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성인이 되고 난 후 호주로 이민을 왔는지, 그의 영어에는 여전히 강한 중국식 억양이 베여있었다. 

그래서 유독 그가 말할 때 더욱 화가 난 듯 들리고 (경상도 사람들 대화하는 듯한 느낌?) 딱딱하다.

게다가 그는 절대 돌려 말하는 법이 없었다. 아주 직설적이다. 약간 차가운 듯한 눈빛을 가졌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진 것 같다. (나에게 이 기회를 주었으닠ㅋㅋㅋㅋㅋ)

그러고 보니 좀 츤데레 군대 조교 같은 느낌이다.

 

일단 이곳에 일하는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좋았다. 첫 느낌이 나쁘지 않다.


토니는 조교처럼 나에게 여러 가지 일을 시켰다. 나는 막 입대한 어리바리한 이등병이 된 기분이다. 기초를 단단히 하려면 바닥부터 갈고닦아야 하니, 나는 정말 바닥부터 열심히 쓸고 닦았다. 창문도 닦았다. 

그러다가 주방으로 들어와 설거지를 도맡았다. 승진한 느낌이다...^^ 


약속했던 2시간의 트라이얼이 금방 끝이 났다. 나는 '이제 집에 가야 되겠군. 오늘도 좋은 경험이었다.' 생각하고 제대(?)하려 했는데 토니가 나를 불렀다. 12시까지 일해줄 수 있냐는 것이다.

쩌억-


입이 벌어졌다. 이게 무슨 의미야..?^_^ 

그렇다. 내가 고용이 되었다...........!!!!!!!!!!!!!!!!!!!!!!!!!!!!!!!(군대 같다고 표현해서 그렇지만 사실 엄청 기뻤다)

정말 별 기대 없었는데, 그가 내게 물었다. 


"시급 얼마 받길 원해?"


아 이것도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머뭇거리다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카페 시급을 보니 12불이 평균이었다. (사장이 동양인일 경우)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최저임금($15~16) 대신 'Twelve(12) dollar'라고 하려고 했는데 (사실 호주 기본시급과 비교했을 때 조금 적은 돈이지만 그때 당시 호주 1달러의 가치가 지금 미국 달러와 비슷하게 천 원을 넘었으니, 시급 만삼천원 정도면 꽤 괜찮은 금액이다.) 

실수로 아주 깊은 내 속마음이 나와 버렸다. "Twe... nty(20)!" ..


토니가 기겁을 한다.

딱 부러지는 성격대로 그는 일초의 고민도 없이 바로 

"NO!"라고 했다. 어후 바로 잘릴 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멋쩍게 웃으며 '저스트 키딩!'이라고 농담한 척하며, 쿨하게 12!!!라고 했다.

토니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금요일에도 8시부터 3시까지 일을 해달라고 했다.


시험에 통과한 이후, 나에게는 드디어 커피 만들 기회가 주어졌다. 그 외에 밀크셰이크도 만들어보고, 샌드위치에 쓸 빵과 토마토도 자르고 초콜릿 케이크에 가격을 붙이는 등 여러 가지 임무가 주어졌다.

남들에겐 시시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마치 소꿉장난을 하는 듯 재미있었다.

특히 다국적 동료들과 영어를 쓰며 일을 한다는 것이 제일 좋았다.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하게 웃으며 퇴근할 수 있었다. 

"금요일에 또 봐요!"

신이나 어린아이처럼 폴짝폴짝 뛰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껏 들뜬 목소리로 

"할머니! 나 그 카페에서 일하기로 했어요~!!!!!!!"


"OH! 콩글레츌레이션" 축하한다 제시카 ㅎㅎㅎㅎㅎㅎ 

할머니도 너무 기뻐해 주셨다.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다. 피하고만 싶었던 뜨거운 태양이 오늘따라 내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것 같고, 지루하다고만 느꼈던 이 동네도 오늘따라 더 평온하고 아늑하게 느껴진다.  여기저기 나무에 앉아 기괴한 원숭이 소리를 내는 호주의 대표적인 텃새'쿠카 바라'의 시끄러운 웃음소리 같은 울음소리도,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 마냥 너무 우습게만 들린다. 산책 나온 강아지들이 나에게 축하한다고 꼬리를 흔들어주는 것 같고, 그들의 주인들은 나에게 미소 지으며 친절하게 눈인사를 건넨다. 문득 천국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6개월 동안 이 곳에 살면서 왜 몰랐을까?


그랬다. 나는 여태껏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그때그때 내 마음 상태에 따라 그에 맞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고,

그렇게 보이는 것들을 단순히 믿고 판단해왔나 보다.

늘 먹구름 낀 것만 같던 이 곳, 호주가 오늘은 그렇게도 화창할 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이 세상은 거울에 반사된 우리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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