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박마차 Dec 29. 2020

캐나다 회사 생존기#4

당신은 나이 들어 보여요.

보통의 출근 날 아침, 사무실로 들어가는 빌딩 입구  10M 앞쪽에서 안드레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한 껏 과장된 몸짓과 함박웃음으로 안드레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 아는 척을 했다. 그렇지만 안드레는 아무 표정 없이 그 긴 팔을 살짝 올렸다 내리는 인사를 끝으로 빌딩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나도 멋쩍게 그의 뒤를 이어 빌딩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뭐야. 인사를 저렇게 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의 인사가 꽤나 당황스러웠다. 안드레는 이미 계단을 이용해 사라져 버린 후였다.

자리에 앉아 일 할 준비를 하는데 영 께름칙했다. 내가 뭘 잘 못했나? 아니면 무슨 일이 있나? 그렇게 일 하는 내내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안드레는 평소처럼 로봇 같이 일을 하고 있었다. 몇 번 일 과 관련해서 그와 얘기를 잠깐씩 나누었지만 나에게 불만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웃지도 잡담을 나누지도 않았다. 업무시간 내내 딴짓 한 번 하지 않은 채 일을 마치고는 일이 끝나면 슬며시 일어나 인사도 없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정확한 시간에 사무실로 들어와 점심이면 맥도널드로 향해 늘 같은 메뉴를 주문해 와서 먹었고 내가 아무리 멍청하게 질문을 하고 그의 업무 지시를 잘 못 알아 들어도 단 한 번의 짜증이나 감정의 동요 없이 같은 표정을 유지하며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그런 그의 태도 때문에 쉽게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그는 나의 왼편에 앉아 일을 했기 때문에 나는 그야말로 숨이 턱턱 막혔다.

어느 날  카페테리아 커피머신 앞에서 내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줄리엣(합류한 프로그래머)과 잠깐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때 다 싶어 안드레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사람들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줄리엣, 안드레는 좋은 사람 같은데 …. 흠 뭔가.... 늘......]
나는 그를 표현할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버벅거렸다.
[너무 진지하다고?]
[맞아! 맞아! 고마워! 그래 그 말을 하려고 했어.]
나는 줄리엣에게 그날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ㅎㅎㅎㅎ 참 안드레처럼 인사하네.]
줄리엣이 나의 말에 웃어 보였다.
[너에 말대로 안드레가 로봇처럼 굴지. 그런데 얘기를 좀 해보니 좋은 사람 같아. 의외로 수다스럽더라고.]
[안드레가 수다스럽다고?]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응. 어려워하지 말고 말 걸어봐. 좋은 사람 같아.]
줄리엣은 싱긋 웃어 보이며 먼저 커피를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자리로 돌아가면서 카페테리아 한가운데 놓여 있는 긴 식탁에서 어지럽게 널려 있는 맥도날 쿠폰북을 보았다. 직원들이 종종 간식이나 음식 또는 필요 없는 물품들을 자유롭게 식탁 위에 올려놓고 가면 필요 한 사람들이 가져가기 때문에 나도  입맛에 맞지 않는 과자나 사탕들을 올려놓기도 했다.  쿠폰 북 하나를 집어 들어 자리로 돌아왔다.

점심시간, 아침에 챙겨 놓은 쿠폰 북을 들어 안드레에게 건넸다.
[안드레, 이거 내가 주는 선물이야. 보니까 맥도널드를 엄청 좋아하는 것 같아서.]
쿠폰 북을 받은 안드레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짧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 후 안드레와 조금씩 어색함의 간격을 줄여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줄리엣의 말대로 안드레는 좋은 사람이었다. 시간이 흘러 팀원들끼리 서로 좀 더 가까워졌을 때  그의 성격과 행동은 좋은 놀림거리가 되었다.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칭찬으로 시작을 해도 그 끝은 그가 감정이 없다느니, 로봇이라니 뱀파이어(루마니아 인)라서 그렇다느니 하는 농담으로 결국 끝이 났다.

어느 날, 나는 벼르고 벼르던 그의 나이 이야기를 안드레에게 용기 내서 물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JS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편이 가장 정확할 듯했다.
[안드레, 사람들이 네가 26 살이라는데 정말 그래?]
[응. 왜 그러는데?]
그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나와 안드레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팀 동료들도 놀랐다는 듯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심지어 매튜는,
[뭐라고! 나보다 고작 한 살 많은 거야?!!]
라며 이런 대화는 놓칠 수 없다는 듯 우리 곁으로 옮겨와 대화를 듣기 시작했다. JS  역시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돌려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 과한 주목은 원하지 않았는데 , 안드레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까 하여 나는 서둘러 말을 이어 나갔다.
[괜찮아 안드레, 너처럼  젊었을 때 늙어 보이면 나중에 나이가 들어 그 모습이 그래도 유지되면서 상대적으로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사실 넌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지도 않아.]
말을 하면서도 나 지금 뭐라고 지껄이고 있는 건가 싶었다. 아.... 진심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괜히 말을 꺼냈나 후회가 됐다. 안드레를 위한 나의 적극적인 위로를 듣고 있던 js 가,
[미아..... 저 멍청이......]
라며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드레는 나의 말에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무슨 소리야? 난 괜찮은데.]
[그럼! 그럼!  넌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아.]
[아니 난 괜찮다고, 어려 보이고 싶지 않아. 내 예전 동료들은 내가 40 살인지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어.]
[어려 보이고 싶지 않아? 정말? 누구나 자기 나이보다 어려 보이고 싶어 하지 않나? 나만 해도 내 나이보다 어려 보이고 싶은데?]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난 내 모습에 만족해. 어려 보이고 싶지도 않고 나이 들어 보여도 상관없어. ]
나의 기준으로 그를 생각해 위로한 다시고 떠들어 댄 것이 순간 부끄러웠지만 그보다 그가 불쾌해하지 않는 모습에 안도했다. 하마터면 회사 생활이 가시밭길이 될 뻔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서양문화권에서 특히 남자들은 본인의 어려 보이는 얼굴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듯했다. 확실히 동양 문화권의 친구들은 외모와 나이를 많이 신경 쓴다. 나만 해도 어려 보인다는 상대방의 말은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이었으니까. 이 일 이후로 나는  남자 동료들에게 어려 보인다는 말을 칭찬으로 하는 일은 삼가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캐나다 회사 생존기#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