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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마차 Dec 22. 2020

캐나다 회사 생존기#3

우리 팀 아트 디렉터


이안이 이끄는 우리 팀에는 아직 아트 디렉터가 없었다. 때문에 아트 쪽에 관련된 결정도 오롯이 이안의 몫이었다. 처음에는 헤매기도 했지만 이안이 아트 작업 중 어떤 부분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에 대해 익숙해지고 난 후부터는 작업이 쉬웠다. 그가 싫어하는 부분만 피해 주면 되는데 아무래도 이안은 아티스트는 아니기 때문에 미적인 부분에 대해서 까다롭게 구는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트 디렉터의 빈자리는 분명 컸다.

매일 아침 갖는 짧은 미팅 자리에서 곧 아트 디렉터가 온다는 전달을 받게 되었다. 오타와에 살고 있고 몬트리올에 일을 구하게 되면서 이 곳으로 곧 이사를 올 예정이라고 했다. 미팅이 끝나고 자리에 앉으며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트 디렉터가 오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나를 포함한 다른 디자이너들은 이미 이안의 아트 디렉팅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새 아트 디렉터의 등장은 재정비를 의미했다. 그 사람만의 작업 방식이 있을 것이고, 유독 신경 쓰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것에 익숙해지려면 또 시간이 필요했다. 

아트 디렉터가 첫 출근을 하는 날은 유난히 더 긴장되었다.
[오늘 아트 디렉터가 오는 날인가?]

나보다 늘 일찍 출근하는 JS 가 밖에서 전자 담배를 피우고 들어 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응.]
책상 위에 내 가방을 올려놓으며 내가 대답했다.
[오늘 첫날이니 같이 점심 먹겠지?]
[아마도, 우리가 늘 가던 곳에 가는 거지? 그 아이리쉬 바?]
식당 이름이 금세 떠오르지 않았다.
일종의 축하 의식 같은 건데, 새로운 팀 원이 첫 출근을 하면 팀원들은 나가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우리는 늘 회사 근처 걸어서 5 분 거리에 있는 아이리쉬 스타일의 바 에가서 점심 특선 메뉴를 시켜 먹었다. 내가 첫날 출근을 했을 때도 의식은 마찬 가지였는데, 이 사실에 대해 알 리가 없던 나는 점심 도시락을 간단히 준비 해 갔다. 첫날이니 어디 가서 사다 먹기도 뭐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가서 점심을 먹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첫날 출근 후 오전 업무가 끝나고 자리에서 점심을 꺼내려 가방에 손을 넣는 순간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뒤를 돌아봤다. 그때 팀원으로 있던 사람들 전부 내 뒤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미리엄이 그 큰 눈으로 나를 보며,
[우리 점심 먹으러 나갈 건데. 같이 갈래요?]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아……. 아니요. 난 점심을 싸 가지…..]
멋쩍게 도시락을 꺼냈지만 사람들은 계속 그 자리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게 네 점심 도시락인 건 알겠는데 우리 지금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어서 자리에 일어나서 따라왔으면 좋겠네 라는 압박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 무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도시락을 가방에 집어넣으며,
[도시락을 싸 왔지만 같이 가죠.]
벌떡 일어났다.
그날 같이 먹는 점심이 어찌나 어색하고 긴장이 되든지, 주문한 버거와 감자튀김을 거의 먹지를 못했다.

잠깐 회상에 젖어 있는 동안 새 아트 디렉터는 출근을 해 우리와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는 키가 190cm는 훨씬 넘어 보였고, 까만 턱수염과 콧수염이 얼굴의 절반을 덮고 있었다. 머리에 희끗희끗 새치가 많은 것으로 보아 나이가 좀 있어 보였다. 아니다. 솔직히 서양인들의 나이는 가늠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남자들의 경우 어려 보인다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 해 수염을 기르는 경우가 많아 더욱 어려웠다.  팀원들과 돌아가며 인사를 주고받고 나와 JS의 자리에 온 그는,
[안녕하세요. 안드레입니다. 당신 둘이 가장 경력이 많은 3d 디자이너들이라고 들었어요.
잘 부탁드려요.]
그는 보일락 말랑한 옅은 미소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악수를 청했다.

안드레는 지금 까지 내가 만난 아트 디렉터 중에 가장 업무 능력이 뛰어난 상사였다. 그가 내린 업무 지시는 명확하고 간단했다. 프로젝트의 규모가 크건 작건 아트 디렉터의 업무량과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안드레는 모든 아트 파트의 일을 세세히 지시했고,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아침에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동시에 사람들은 일제히 그의 이름을 여기저기서 부르기 시작한다. 너도 나도 그의 확인이 필요한데 하루 종일 안드레는 너무 바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그가 시간이 빌 때 먼저 자신의 일들을 그와 함께 처리하고 싶어서였다. 하루하루 매일이 전쟁터 같은 상황에서도 그는 항상 무표정한 얼굴로 차분하게 하나씩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했다. 아무리 바빠도 사람들에게 짜증 한 번을 낸 적이 없었고 지친 내색을 하지도 않았다. 마치….. 로봇 같았다.  사람들과의 갈등도, 바닥나는 체력도 감정의 동요 조차 없이 맡은 일을 척척 해 내는 로봇.


그는 영상 쪽에서의 경력이 더 많았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이펙트, 렌더링, 모델링, 심지어 게임 엔진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아는 게 많아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가 팀에 합류하기 전 걱정 가득했던 마음은 그와 함께 일한 지 얼마 안가 존경으로 변해 있었다.

다를 것 없이 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옆자리에 있던 JS 가 말을 걸었다.
[안드레가 몇 살 일 것 같아?]
[글쎄….. 30살? 아마도 34살?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이 많아 보이진 않아.]
그는 나의 대답을 듣고 씩 웃어 보였다. JS는 나는 모르는 정보를 본인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몹시도 행복해 보였다. 
[26 살]
순간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나는 입을 벌린 채 JS 쳐다봤다.
[놀랍지?]
그런 반응 나올 줄 알고 얘기했다는 듯 그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띈 채 유유히 전자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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