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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마차 Jan 19. 2021

캐나다 회사 생존기#7

직장 상사의 눈이 퍼렇게 멍든 이유

 

대부분 캐나다의 게임 회사는 크리스마스 날을 전 후로 새해까지 대략 2주간 긴 연말 휴가를 가진다.  A 회사에서도 연말 휴가를 마치고 새 해 새 마음으로 회사를 출근했을 때였다. 그 날 아침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스탠드 업 미팅을  알리는 이안의 메시지가 단체 창에 전달됐다. 나는 가장 먼저 일어나 미팅 자리로 가서 이안의 얼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짧은 순간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왜 하필 오늘 첫 번째로 가서 섰을까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이안의 왼쪽 눈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고 찢어진 상처 자리에 꿰맨 자국을 볼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때 나는  이안이 같이 살고 있는 여자 친구와 싸움을 하다 여자 친구가 뭔가를 던졌고 그것에 정확히  맞았을 거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 됐다. 도대체 뭘 던졌을까? 왜 싸웠을까? 전에 크리스마스 파티 때 사이가 좋아 보였는데……. 이안과 나만 그 자리에 멀뚱하게 서 있는 동안 나는 마치 그의 눈을 그렇게 만든 사람이 나 인양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와 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물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냉큼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대답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어쩌나 싶어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았지만 그때 당시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 물어보는 것에 적잖이 부담감이 있었다. 혹시 내가 하는 질문이 그 사람에게 실례되는 질문이면 어쩌나 하는 위축감이 있었고, 더욱이 이안과는 일전에 문화 차이에 따른 에피소드도 이미 가지고 있었던 터였다. 문제의 그날도 간단한 아침 미팅이 끝나고 유달리 피곤해 보이는 이안을 향해 나는,
[이안, 오늘 엄청 피곤해 보인다. 좀 쉬는 게 좋겠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야 동료들끼리 서로 걱정해 주며 하는 인사 치례로 하루에도 여러 번 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별 뜻 없이 그에게 한 말이었지만, 이안은 유난히 슬퍼 보이는 얼굴로,
[내 얼굴이 그렇게 거지 같아?]
라고 물었다.
잠시 후에 그런 표현은 상대방의 외모가 형편없어 보인다는 말로 그다지 좋은 표현이 아니라는 사실을 줄리엣 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나는 곧바로  한국인에게 그런 표현이 어떤 의미 인지를 그에게 설명해 주어야만 했다.

어쨌든 나는 어색한 눈동자를 굴리며 다른 동료들이 빨리 미팅에 참여 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안드레와 줄리엣이 도착했다.
안드레는 이안의 얼굴을 보고 나와는 다르게 어떤 동요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 눈은 왜 그렇게 된 거야?]
옆에 서 있던 줄리엣 역시 거들며 물어봤다.
[아. 연말에 올드 포트(몬트리올의 유명한 구 시가지)에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축하 공연을 하고 새 해 카운트 다운을 한다는 거야. 그래서 여자 친구와 친구들 몇 명과 함께 공연을 봤지. 공연은 정말 재미있었고 카운트 다운도 하고 정말 신났어. 그렇게 공연이 마무리되고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데 누군가가 맥주 캔을 위로 높이 던졌고 마침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내 눈에 정확하게 떨어진 거지. ]
여기까지 이안의 설명을 듣고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물어봤다.
[설마 맥주 캔 안에 맥주가 들어 있던 건 아니지?]
[왜 아냐. 완전 새 맥주 캔이었다고. 맞고 나니 눈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거야. 그래서 바로 응급실로  가서 꿰매고 집으로 돌아왔지. 하하하하!]
듣기만 해도 화가 나는 상황에 이안은 남 일 이야기하듯 신이 나서 웃고 있었고 심지어 병원에서 치료가 끝나고 난 후 우스꽝 스러운 포즈로 찍은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무용담처럼 자랑을 하고 있었다. 나는 도무지 이안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아 미팅이 끝난 후 그에게 물었다,
[이안,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했는데 던진 사람은 잡았어? 경찰에 신고는 했고?]
[아니, 사람들도 너무 많아서 누가 던졌는지 알 수가 없었고 경찰에 신고해 봤자 던진 사람을 어떻게 잡겠어.]
[나 같으면 그 미친놈을 기를 쓰고 잡았겠다. 아니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사람들 위로 맥주가 가득 찬 캔을 던질 수 있지? 그건 흉기야.]
흥분한 나와는 다르게 이안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씩 웃어 보였다.
그의 말처럼 그 난리통 속에 던진 사람을 찾을 리 만무했고 지나간 일 어쩔 수 없지만, 나 같으면 몇 날 며칠을 분에 못 이겨 상처 난 눈을 보며 씩씩 거렸을 거고, 그 안에 있던 범인을 향해 온갖 저주의 말을 퍼부었을 것이며 덧붙여 이상한 놈들이 득세하는 이 거지 같은 세상을 두고두고 한 동안 원망했을 것이다.

 자리로 돌아오기 전 나는 이안에게,
[나도 예전에 눈 윗부분이 심하게 찢어진 적이 있어서 꿰맨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상처가 심하게 남아. 상처 회복에 좋은 연고를 바르면 그나마 나으니까 연고를 발라 봐.]
어렸을 때 비슷한 자리를 다쳐서 꿰맨 적이 있던 나는 남 일 같지 않아 걱정스럽게 말했다.  
[오. 고맙지만 연고는 됐어. 안 바를 거야.]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었다.
[뭐? 왜?]
[지금 악당 같아 보이고 좋아. 나중에 흉터가 남는다면 터프한 남자 같이 보이고 좋을 것 같아.]

나는 그의 얼굴을 잠시 조용히 쳐다보다 곧,
[그래...... 행운을 빌어.]

달리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겠는가? 쎄 보이고 싶다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싶었지만 보스의 말에 일일이 토를 달고 싶지 않았다. 아무쪼록 상처가 터프한 남자처럼 멋들어지게 생기길 바라며 내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을 끝으로 자리로 돌아와 일을 시작했다. 

참고로 그날 이안이 눈에 맞은 맥주캔은 아사히 맥주 500 ml 짜리였고, 팀원들은 종종 점심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면 이안을 위해 아사히 맥주를 시켜 주며 그를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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